부처님 오신 날과 나
부처님은 오시는 가, 가시는 가? 태어나실 때는 오시는 것,열반하실 때는 가시는 것이라고 해야 맞다. 하지만 태어나실 때는 부처님이 아니므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열반하실 때도 이미 열반에 드셨기에 가시는 것인가 살펴야 할 것이다. 남방인 인도,태국,스리랑카,미얀마,라오스 등의 나라에서는 나시고,깨달으시고,열반하신 날이 같다고 생각한다. 중국,한국,일본,대만 등 북방에서는 나시기는 4월 8일에,깨달아 되시기는 12월 8일에,열반하시기는 2월 15일에 하셨다고 한다.
남방불교 혹은 테라와다(장로)불교권의 영향을 받아 유엔이나 미국 등에서도 부처님오신날을 웨삭 또는 베삭(vesak)데이라고 해서 기린다. 남방불교국가에서는 웨삭(베삭)데이라고 한다. 북방불교권에는 불교국가는 없고 축일을 기리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중국은 공산사회주의이니 그렇다고 하고,한국은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계략아래 그리스도교의 크리스마스는 국가공휴일로 1948년에 일찌감치 지정해놓고 불교 공휴일은 재판을 통해서 그것도 1975년도에야 공휴일로 지정했다.
좀 널리 퍼진 것 같은 웨삭데이의 뜻은 인도력 2월이라는 말이다. 1월도 아니고 2월이라는 것이 무슨 말일까? 인도력은 2월에 시작하니 1월이라는 뜻이란다. 1월의 달이 둥그런 보름에 무엇이든지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시고,되시고,가신 날이 같은 것이다. 요즘 남방 달격으로는 4월 또는 5월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그런 이야기는 숨어들고 꽃축제(花祭)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꽃 속에 부처님이 앉아계시는지 숨어계시는지 모를 일이다. 일본의 부처님오신날은 그래서 양력 4월 8일이다. 그런 줄만 알았는데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라고 한다.
재일교포들이 지은 사찰인 일본 나가노 금강사의 주지를 2017년 6월에 맡았다. 한 때는 2백여 명이 모여서 초파일 행사를 진행할 때도 있었다는데 2017년에는 7명만이 모였다고 했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되살리려고 커다란 이벤트를 겸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주지 진신식(취임식)과 초파일 봉축행사와 조상님 천도재를 1,2,3부로 나누어 봉행하려고 하였다. 동참자를 다양하게 하고 규모를 키우기 위해 일본 최고 사찰이며 국가사찰이라고 하는 나가노 선광사(젠꼬지) 주지이신 후쿠시마스님을 2017년 8월 중순에 만나서 2018년 4월 8일에 참석해 축사해달라고 부탁하였더니 선선히 그러마고 하였다. 일본 양력 4월 8일에 한다던데 괜찮으시냐고 했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나가노는 기온이 쉬 오르지 않아서 양력 5월 8일에 하나마쯔리(花祭) 진행하므로 문제없다고 하였다. 정말 2018년 4월 8일 150여명이 모인 금강사 행사에 참석하여 축사를 살갑게 해주었다. 그 스님이 지금 병마를 겪고 있다하니 약사여래의 가피가 함께 하기를 축원한다.
이렇게 부처님오신날 행사는 지역마다 다른 행사기 되어있다. 남방은 물축제와 함께 한다고 한다. 물축제,꽃축제 그리고 부처님이다. 하나의 지역문화가 되어있는 것이다. 나라마다,지역마다 달라보여도 부처님이 들어있고,나라마다 지역마다 같아보여도 문화에 따라 다르게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출가하여 승려가 되어있지만 고등학교시절과 대학시절의 부처님오신날 봉축 연등축제 또는 봉축제등행진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에는 경기도 평택에 있는 명법사라고 하는 자그마한 절 불교학생회 회원으로 참석하였다. 그저 회원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기도 했고,지도자로서 행사를 이끌기도 했다. 속가의 아버지께서 민간의 화전놀이 약주에 취해 아들이 다닌다는 사찰 봉축행사기 떠올랐는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오셔서 기쁘게 맞이해서 대웅전과 시설들을 안내하고 스님들께도 일일이 인사소개를 드린 기억이 있다. 대개 그런 경우에는 부끄럽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승려도,목사도 바람직하지 않게 보고 점쟁이는 제 앞도 가리지 못한다는 분석을 하고 있었던 아버지가 부처님오신날 사찰에 나타나셨기에 마냥 즐거웠던 기억이다.
대학시절에는 기독교의 배경 속에 세워진 학교인 중앙대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더욱 뜨거운 불교 신앙심을 가지고 봉축행사에 참석했던 기억이 좋다. 중앙대학교는 전체불교에서 진행하는 부처님오신날봉축법회와 제등행진에 열심히 동참하였다. 초파일을 한 달 이상 앞두고 행진에 가져갈 상징등을 만드는 작업이 바빴다. 중앙대학교의 상징인 청룡을 커다랗게 만들어 학생회원들이 밀고 가는 행렬은 장엄스러웠다.
만들어 가는 과정은 더더욱 신앙심을 키워가는 좋은 도량이었다. 써클룸(동아리방)에 모여서 연꽃잎을 비벼 만들어 수만장을 비벼놓아야 했다. 매일 수업 중간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 저녁시간이나 토,일요일에 모여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들었었다. 연꽃잎 비비기가 진행되는 동안 나무와 강철 그리고 철사들을 활용해서 거대한 용의 몸체를 만들어두어야 했다. 꽃잎 비비기를 마치면 용 몸체에 연잎붙이기를 했다. 그야말로 신심이 용트림을 하는 시절이었다. 어떤 때는 학교 내의 이교도들이 거의 다 만들어놓은 연꽃용등을 밤사이 부숴버려 난리가 났던 때도 있었다. 그날도 그 다음날도 교내 곳곳을 다니며 이교도들 들으라고 시위를 해댔지만 부서진 용등은 돌아오지 않았었다. 눈물을 삼키며 며칠 동안 완전 날밤 새기를 해야만 했다.
가톨릭의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의 아픈 추억도 떠오른다. 가톨릭교황에게는 김포에서 시청앞까지 모든 차선을 제공했지만 연등행진에는 한쪽 차선 밖에 제공하지 않아 난감했다. 마침 당시에는 내가 대학생불교연합회 서울지부장 시절 대학생그룹이 맨 앞에 서서 행진하도록 해 두었기에 대응하기가 그나마 좋았다. 경찰에서 차선을 막아버리면 대학생들이 앞에서 행진하지 않고 연등을 놓은 채 도로에 드러누워 버렸다. 아니 버텼다. 경찰은 최루탄을 쏘기도 했지만 대학생불자들의 버티기를 이기지 못하고 전 차선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공권력의 종교편향과 제 몫은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종교와 달라서 제 스스로 또는 사람이나 동물과 식물 등을 온전한 자격체로 보고 있는 유일한 종교인 불교도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 이 시대에도 서울시나 나라를 하나님에게 바친다는 종교편향 현상을 겪고 있는 이 때 더더욱 정진하고 깨달음의 사회화에 매진하여야 한다는 다짐을 하는 까닭이다.
이번 5월 4일에 개최할 부처님오신날 봉축 연등축제에서도 나를 비롯한 불교 승려와 불자들이 부처님 오신 기쁨을 스스로에게서 우러나는 기쁨으로 맞이하리라 바라본다. 모두에게 다시 태어남이 없는 열반이나 보살행의 서원으로 중생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삶을 누리는 날이 성큼 오도록 축원한다.
( 이 글은 미주현대불교 2019년 5,6월호와 화엄사상 2019여름호에 함께 실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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