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앞서 자유게시판을 통해 간단하게
1面이 정면이고, 왼쪽이 2面, 뒤가 3面, 오른쪽이 4面이다라고.. 짧게 살펴 보았습니다.
호태왕비문을 오래도록 연구한게 아니라서..간단하게 부담없이 살펴 봅시다.
1面의 세로줄을 行이라 합니다.
*1面= 11行 으로 되어 있죠.
사서가 오른쪽 => 왼쪽으로 넘기게끔 되어 있으므로..비문도 자연스럽게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며 써 있는걸 알 수 있습니다.
이해가 되시죠?
일본인들은 1面 1行 1字, 이렇게 (1-1-1)로 표시하더군요.
비문의 1행을 해석해 봅시다.
惟昔 始祖 鄒牟王之創基也, 出自北夫餘 天帝之子, 母河伯女郞, 部卵降世 生而有聖德, #####命駕
옛날에 시조 추모왕이 기초를 만들었다. 북부여에서 나왔다. 천제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하백여랑이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내려와 태어나서 성덕이 있었다........................
*惟昔=유석,
惟=유 ㉠생각하다 ㉡오직 ㉢생각건대 ㉣이(伊, 是)/ 오직, 다만, [조사]【문어】 연월일(年月日) 앞에 오는 문어조사(文語助詞).
昔=예 석, ㉠예, 옛 ㉡접때 ㉢저녁 ㉣밤, /지난 옛날의 뜻
*첫번째 글자, 惟昔유석를 '생각컨데 옛날에' 이렇게도 해석해도 되겠지만..
그렇게 비문을 해석하는 걸 보기가 어렵죠.
惟유는 위에서 보다시피, 조사로 사용되므로 '~에'로 해석하는게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유석=옛날에'로 해석합니다.
*出自北夫餘
自=~로부터'
'북부여에서 나왔다'
'스스로 북부여에서 나왔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렇게 해석할려면..
自出北夫餘 이렇게 글자의 순서가 바껴야 합니다. 自 다음에 出이 나와야 '스스로'로 해석될 수가 있는거죠.
*鄒牟王之創基也
여기서 '之'는 주격이죠.
'추모왕이 (나라의) 토대를 만들었다'
也가 끝에 나오므로, 완전한 하나의 문장이 완결됩니다.
基=터 기 ㉠터 ㉡근본 ㉢사업 ㉣자리를 잡다 ㉤기인하다 / 기초. 터. 토대.
*母河伯女郞
'어머니는 하백여랑이다'
여기서 郞이 문제시 됩니다.
郞=랑 ㉠사내 ㉡남편 ㉢낭군 ㉣아들 ㉤주인 ㉥행랑 ㉦벼슬 이름
랑에 '사내'라는 뜻이 있어서,
母河伯女 郞部卵降世
이렇게 뒷문장과 붙여서 해석이 가능합니다.
'사내가 알을 까고 세상에 내려왔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河伯女郞이란 단어가 바로 2行에도 똑같이 반복해서 나오기 때문에..
대개 여랑으로 붙여서 해석하는거죠.
河伯女郞이 한번만 나오면, 郞을 뒤에 붙여서 해석해야 된다는 말이 많이 나오겠지만.. 2번 나오니까 그런 해석이 적습니다.
또한, 전체주어가 '추모왕'이므로 部卵降世로 끊어 읽어도 상관없는거죠.
*女郞=여랑, 사내 같은 기질(氣質)과 재주가 있는 여자(女子)
또한, 위와 같이 女郞이 '사내같은 여자'라는 사전적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母河伯女郞, 部卵降世
'어머니는 하백여랑이다' '(추모왕은) 알을 까고 세상에 내려왔다'
문장내 주어가 생략되었다고 보고, 대개 이렇게 해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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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部卵降世生而有聖德
다음은 1행부터 문제가 되는 世가 되겠죠.
*部卵降出生子有聖德
이렇게 초기탁본 쌍구본처럼 되면,
'알을 까고 내려와 아들을 낳았다. 성덕이 있었다.'
'알을 까고 내려와 태어났다. 아들은 성덕이 있었다'
해석이 어색하게 됩니다.
*德 또한 논란이 있는것을 아실것입니다.
두인변이냐, 다른 글자이냐...저도 몰라요^^
참모본부의 밀정 사코 가케노부가 쌍구가묵본을 만들어서 '조작했다'는 설을 이진희교수가 설파해서..
그 문제는 여전히 논란이 많죠.
저는 일제의 조작은 있었다라고 봅니다.
까짓껏, 탁본 조작이 쉬운 일이죠. 석고 반죽 만들어 비슷하게 다시 두드려 만들면 그만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탁본을 만들어서 팔았던 '탁본 업자' 두 父子에게 문제가 제일 많았다고 봅니다.
초기탁본은 '出生子'로 나와 있는데
탁본업자가 비문을 적어 놓은 종이에 '出生子'로 적혀 있으니...
초장부터 문제의 발단은 탁본을 뜨는 무식한 중국인에 있었던 것이죠.
왕건군이 1981년에 비면을 세밀하게 조사하면서 보니까 出이 아니고 世라고 합니다.
초기보다 나중이 더 정확하니 이런 아이러니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첫댓글 호태왕 비문의 논란은 일차로 조선시대에 탁본을 뜨는 일에 무관심하여, 일본에게 주도권을 넘겨준게 첫번째 죄악이고, 압록강 넘어 코 닿을데 지리적으로 제일 유리한 위치에 있는 북한이 많은 연구를 하지 못했다는 점. 1980년대 이후에 직접 우리학자들이 가서 사진도 많이 찍고 현지조사를 했는가 의문이 듭니다.학자들이 연구를 많이 했다 해도 아직도 비밀은 많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