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 25: 13. 깨어 있으라.
마 25: 13. 깨어 있으라. -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대로 다시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을 믿고 소망하는 성도들, 곧 모든 그리스도인이 명심해야 할 교훈이 여기 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날과 시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깨어 있는 삶은 기름을 준비하는 것으로 표현되었고 기름은 우리 속에 주신 성령의 은혜를 가리켰고, 그 은혜의 증거는 참된 신앙고백과 거룩과 사랑의 실천이다.
그것은 한두 번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평소의 생활을 가리킨다. 날마다 성경 읽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거룩과 사랑을 행하는 자가 깨어 있는 자이다.
그러나 무지와 죄악 속에서 육적 즐거움을 누리는 자는 영적으로 잠든 자이거나 죽은 자들이다. 만일 우리가 참으로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자라면, 우리는 믿음과 사랑의 삶으로 우리의 구원을 증명해야 한다. 경건하고 거룩하고 선한 삶은 참된 믿음의 증거이다.
1] 그런즉 깨어 있으라.
* 막 13: 34 -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이 구절은 본 비유의 주제를 강조하는 말로서(24: 36, 42, 44, 50) 예수의 비유 뒤에 자주 쓰이는 관용적 표현이다.
미련한 처녀들과 마찬가지로 슬기로운 처녀들도 졸고 있다는 5절의 내용은 본 구절과 모순되므로 예레미야스와 같은 학자들은 이 구절을 후대의 삽입문으로 본다.
그러나 이 견해는 3절이 의도하는 바를 간파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Keep watch)는 말은 육신적으로 '자지 말고 눈을 뜨고 있으라.' (Keep awake)는 말과는 다르다.
후자는 졸음을 쫓아내고 전혀 잠자지 말라는 뜻이므로 본 구절의 의미에 부합되지 않는다. 오히려 비유들이 뜻하는 바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 마태는 예수께서 이 강화에 말씀하시는 주요한 권고를 반복한 것이다.
2]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이와 같은 문장은 24: 36, 42, 44, 50에 똑같이 나타난다.
이 어투는 마태복음 기록자가 종말의 때를 나타내는 일관된 방법이자 항상 '깨어 있어야'할 이유를 말한 것이다.
13절은 열 처녀 비유의 의미를 한 문장으로 압축, 요약하고 있으며, 종말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항상 긴장되고 준비해야 될 삶의 자세를 암시하고 있다.
재림을 믿고 다시 오시는 날을 소망하는 모든 성도들이 명심해야 할 교훈이 여기 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는 삶은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는 것으로 표현되었고, 기름은 성령의 내면적 은혜를 가리켰다고 본다.
그것의 외적 증거는 진심의 신앙고백과 거룩과 사랑의 실천으로 그것은 한두 번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평소의 생활을 가리킨다.
날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되새기며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고, 거룩과 사랑을 행하는 자가 깨어 있는 자이다.
그러나 무지와 죄악 속에서 이 세상의 쾌락에 빠져 육신적 즐거움을 누리는 자들은 영적으로는 잠든 자들이거나 혹은 영혼이 죽은 자들이다.
만일 우리가 참으로 구원받은 자들이라면, 우리는 믿음과 사랑의 삶으로 우리의 구원을 입증해야 한다. 경건하고 거룩하고 선한 삶은 참 믿음의 증거이다. 열 처녀들의 비유의 핵심은 지혜로운 자가 되라는 것이다.
주께서는 비록 더디게 보일지라도 반드시 오실 것이다. 주께서 자신의 재림을 약속하신 지 벌써 2천 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그는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다.
* 계 1: 7 -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저자의 요한계시록에서 발췌. 강해 참조)
재림의 방법 :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1) 구름 : 수레
구름은 하나님이 타고 다니시는 수레다.
* 시 104: 3 -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 살전 4: 17 -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① 구름은 무지개를 담고 있다.
* 창 9: 13 -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 계 10: 1 -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② 구름은 허다한 증인들 곧 믿음의 사람들로 믿음의 선진(조상)들을 말한다.
* 히 12: 1 -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③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
* 마 24: 30 - 그 때에 인자(人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人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④ 다른 천사가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다.
* 계 10: 1 - 내가 또 보니 힘 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⑤ 순교했던 두 증인들이 부활하여 승천 할 때 구름을 탄다.
* 계 11: 12 -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2) 하늘 구름을 타신다. - 주님 전용
* 사 19: 1 -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 마 24: 30 -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 오시리라 - 재림.
* 마 26: 64 - 예수께서 이르시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 행 1: 9-11 -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 계 22: 20 -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1) 진실로
재림의 확실성을 나타낸다.
(2) 속히 오리라
① 영원한 현재 진행형.
② 현재 오는 중이다.
본문은 본 장 내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세 번째 확증이며(7, 12절) 동시에 그 재림의 확증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응답을 나타낸다.
본서의 마지막에 '내가 속히 오리라'는 그리스도 자신의 재림에 대한 언급은 이제까지 진술해 온 본서의 예언 말씀을 보장함과 동시에 고난과 핍박 속에서 인내하는 구속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위로를 준다.
(3)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는 초대 교회의 예배 의식에서 자주 사용되던 기도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을 시사한다(Morris).
이것은 고전 16: 22에 나타난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마라나 다)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 고전 16: 22 -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이 '마라나다'는 아람어 '마라나타'(*)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과 모든 인간사를 주관하시는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고백을 나타낸다.
주께서는 한밤중, 대환난 후에 갑자기 오실 것이다. 우리는 준비하고 지혜로운 종들과 성도들이 되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참된 믿음을 가지고 계명을 순종하는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
3] 기회를 놓친 신부들
본문은 신랑을 맞이하지 못한 불행한 신부들에 대한 말씀이다.
이제 이러한 말씀을 통해 신랑을 만나지 못한 불행한 신부들의 모습과 신랑을 만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신부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보자.
(1) 닫힌 문은 열리지 않는다.
① 지금은 은혜를 받을 만한 때다.
지금은 구원의 문이 열려 있는 때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그 문을 드나들 수 있다. 지금은 누구나 그 문을 열 수 있고 그리스도에게로 들어 갈 수 있다.
말씀을 듣고자 하면 언제든지 들을 수 있으며, 기도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기도할 수 있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금은 그리스도와 막힌 담이 없으며, 지금은 그리스도께 나아가려는 우리를 붙잡는 자도, 그리고 가로막는 방해물도 없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우리 앞에 계시며, 우리를 맞을 준비를 하고 계신다. 지금은 구원의 때요, 은혜의 날이기 때문이다.
* 고후 6: 2 –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② 구원의 문이 닫힐 날이 있다.
지금은 은혜의 때이며 지금은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때다. 그러나 그 문은 언제까지나 열려 있지 않다. 그 문은 때가 되면 닫힌다.
그 때가 되면 구원의 때가 아니라 그때는 심판의 때다. 구원의 문이 닫히는 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은 차단되고 구원으로 향하는 길에는 넘지 못할 절망의 벽이 생긴다.
멸망의 때가 되면 반드시 닫힌다.
* 창 7: 16 -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그러나 '그때'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는 언젠가는 꼭 올 것이다.
③ 한 번 닫힌 문은 열리지 않는다.
한 번 닫힌 구원의 문은 다시는 열리지 아니한다. 그 문은 어느 누구도 열 수 없다. 문이 닫힌 후에는 그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소용이 없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열리지 않는 그 문을 하나님께서는 다시 여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문을 열어 두고 있을 그때 뿐이다. 지나간 버스 뒤에서 손을 흔드는 것이 아무 소용없듯이 구원의 문이 닫힌 후의 울부짖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
(2) 심판주로 오시는 주님께는 긍휼이 없다.
① 그리스도의 초림은 구원을 위한 것이다.
* 마 11: 28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리스도의 초림은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 그의 오심은 죄인을 위한 것이었고, 죄인의 회개를 위한 것이었다.
때문에 그에게는 긍휼과 사랑이 충만했으며, 모든 죄인이 그에게 나아갈 수 있었다.
* 마 9: 13 -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② 그리스도의 재림은 심판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초림이 구원과 회개의 선포를 의한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심판과 멸망의 선언을 위한 것이다.
* 마 3: 12 -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눅 3: 17 -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그리스도의 재림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심판의 재림이다. 때문에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에게는 긍휼이 없다. 그에게는 오로지 공의로운 심판과 엄위만이 있을 뿐이다.
그 때에 죄인들은 그에게 나아갈 수가 없다. 죄인을 그분은 더 이상 용납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한 편의 즐거움과 환희의 찬송, 그리고 또 다른 한 편의 회한과 눈물로 갈리는 두 종류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3) 깨어 있어야 합니다.
①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판의 주님, 공의로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시는 하나님, 그분의 재림이 언제 있을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그분의 재림 후에 있을 회한의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없을 구원의 때를 놓치지 않으며 주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② 사망의 잠을 자지 않기 위해서다.
신랑이 나아올 때 잠들어 있음으로 그를 맞이하지 못하는 신부는 불행한 신부다. 주의 재림이 있을 때 신앙의 잠을 자다가 그를 맞이하지 못하는 성도 역시 불행하다.
우리는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잠들어 있을 때 주의 재림이 임하는 불행을 막기 위해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재림하는 승리의 주님을 잠든 상태로 맞이하는 불행한 신부가 되지 말고 신랑을 맞기 위해 등과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고 깨어 기다림으로 기쁜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슬기로운 신부들이 됩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천국은 혼인잔치와 같이 기쁘고 즐거운 세계이다.
이 세상은 죄가 많고 죄로 인해 슬픔과 눈물과 질병과 죽음이 있다.
그러나 천국은 죄와 슬픔과 눈물과 질병과 죽음이 없는 복된 세계이다.
천국은 성령 안에서 의와 평안과 희락이다.
* 롬 14: 17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둘째, 우리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과 같이 등과 기름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형식적인 신앙고백, 입술만의 신앙고백을 하지 말고, 바른 지식과 심령에서 나오는 바른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
그와 더불어 성령의 내면적 은혜가 있어야 한다.
그 은혜를 받은 자들은 오직 믿음으로 살고 경건하게 살며, 계명을 순종하여 의와 선을 행할 것이다.
셋째, 우리는 주의 재림을 준비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는 생활은 실상 앞에서 말한 등과 기름을 준비한 생활이다.
예수께서 자신의 재림을 약속하신 지 벌써 2천 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그는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다.
* 계 1: 7 –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 계 22: 20 -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는 한밤중에 갑자기, 그러나 24장에서 말씀하신 대로 대환난의 징조들 후에 오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