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詩
여승(女僧)
— 백 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모두 4연으로 된 이 시에는 한 여인의 생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사적으로는 2―3―4―1로 이러한 구성을 역순행적이라 한다.
시 속에 표현된 여인의 생애를 따라가 보자.
시 속에 서정적 자아는 여승과 인사를 나눈다. 그런데 그 여승을 만난 적이 있다. 바로 평안도 어느 금전판에서 옥수수를 팔던 여인이다. 여인의 옆에는 (말을 듣지 않는, 혹은 자꾸 칭얼대며 장사를 방해하는 나이 어린) 딸아이가 있었다. 그 딸을 때리고 눈물을 보이던 여인이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편은 아내와 딸을 두고 일벌처럼 나간다. 그리고 여인은 딸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옥수수 장사를 하여 연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록 남편의 소식은 없다. 설상가상으로 딸아이도 죽었다. 삶에 지친 여인은 삭발을 하고 중이 된다. 그리고 오늘, 여승이 된 그 여인을 만나 합장하며 인사를 하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여승은 으레 인사를 하듯이 합장을 했을 것이다. 산 속 생활이 오래였는지 산나물(가지취 - 취나물의 하나) 냄새가 난다. 그 얼굴은 예전에 본 얼굴 그대로이다. 나 역시 그리 좋은 신세가 아니기에, 여승이 되어버린 여인의 삶이 서러울 수밖에 없다.
여인이 삭발을 한 것은 분명 과거의 일이다. 그런데 시인은 시간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역순행을 택하여 여승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하여 그녀가 과거 어느 날 중이 되기 위해 머리를 깎는 장면으로 마무리를 한다. 머리카락과 그녀의 눈물이 함께 떨어진다. 3연까지 읽어온 독자는 마지막 연에서 여인의 삶에 동화되어 슬퍼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시 속에는 소설에서나 읽음직한 이야기가 담길 수도 있다.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 여인의 생애도 담아낸다. 소설과 다른 것은 압축과 절제된 표현이다. 다른 비유도 많지만 딸이 죽었다는 사실을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는 부분은 시이기에 가능한 표현이다. 아마 아이가 묻힌 돌무덤이 있는 곳에 도라지꽃이 피었던 모양이다. 마지막 연에서는 ‘~~ 날이 있었다.’가 반복되는데 첫 행의 이유가 2행에서 구체적으로 그리고 심화되어 있다.
백석.
많은 현대 시인들이 필사를 했다는 백석의 시.
시 감상하기에 좋고 시 쓰기 공부에도 좋은 시 ― 바로 백석의 시이다. ♣
첫댓글
백석의 여승도
부천 이선생님의 시평도 잘 읽었습니다.
링크된 것도 없고
시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 없으니
읽기가 훨씬 부담스럽지 않아서
잘 하신 것 같습니다.
백석 시인과 같이 사진 찍었을 정도로 늙지 않았는디유.
ㅎㅎㅎㅎㅎㅎ
다시 읽어도 뭉클합니다.
짧은 시 안에 여자의 일생이
담겼네요.해설 고맙습니다.
한 여인의 삶이지요.
^(^
늘 슬픈 마음으로
읽었던 시.
해설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모티콘으로 답글을 대신하시는 것보다
짧지만 한 줄 글이 서로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습니다.
좋은 시는 공통으로 느끼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
길상사 시주한 김영한이 "천억원이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고 했다지요.
그 귀한 가치를 생각하며 찬찬히 읽었습니다.
며칠 지나 한번 더 읽어보리라 마음 귀퉁이에 메모해 두었습니다.
좋은 시 만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시의 가치를 잘 아시는 분인가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