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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촌 일기-농막에서 부른 노래
8년 전쯤인가 싶다.
내가 고향땅 문경에 ‘햇비농원’이라는 이름으로 텃밭은 가꾸기 시작했던 그 초입이었다.
그 텃밭에서 생전 처음으로 가을걷이를 했었다.
나와 아내가 씨 뿌려 가꾼 김장용 무와 배추가 그 수확이었다.
배추는 한 아름이나 됐고, 무는 여인의 장딴지처럼 뽀얬다.
그렇게 잘 자라 준 것이 신기하기도 해서, 주위에 자랑이라도 좀 할 요량으로 하나씩 뽑아들고 서울로 왔다.
서초동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의 인근인 단골 음식점으로 찾아가서, 그 배추와 무를 자랑스럽게 내놓았다.
그러면서 내 그 집 주인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잘 자랐지요? 이거 절반 잘라서 나눠 먹읍시다.”
주인의 답도 선선했다.
이랬다.
“하이고, 농사를 참 잘 지으셨네. 배추는 속이 꽉 찼고, 무도 굵직한데다가 단단하기까지 해서 맛이 있겠어요. 덕분에 우리도 좀 얻어먹게 됐네요.”
잠시 뒤에 절반으로 토막을 낸 배추와 무가, 주문한 저녁 밥상 위에 같이 차려져 나왔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반찬 삼아 배추와 무를 먹었다.
그런데 먹다 보니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알고 봤더니 배추 고갱이가 하나도 없었다.
그 식당 주방에서 다 빼돌린 것이 분명했다.
얻어먹겠다고 한 그 말과는 달리, 아예 통째 먹은 것이나 진배없었다.
노기가 치솟았다.
그러나 치솟는 그 노기를 꾹 눌러 참았다.
원래 없었다는 둥 거짓 변명을 늘어놓을 것이 분명했고, 그 변명으로 다투다보면 끝내 큰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예상되어서였다.
내가 ‘형님’하고 ‘형수님’하면서 지내온 지난 세월의 친분도 한 순간에 깨질 판이었다.
그 둘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부끄러운 기색조차 없었다.
엊그제 하고도 그 하루 전인 2019년 11월 10일 일요일의 일이었다.
우리들 텃밭인 햇비농원에서 점심 밥상을 받았다.
흰 쌀밥에 조기 한 마리에 무나물에 무채에 생배추에 된장 해서, 조촐하게 차려진 밥상이었다.
그 중에서도 생배추에 시선이 더 많이 갔다.
지난날 배추 고갱이 빼먹은 지난날 그 단골 식당의 부끄러움 모르는 부부의 얼굴이 떠올라서였다.
또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그 연세로 봐서, 이제는 좀 안 나섰으면 좋겠다 싶은데도, 무슨 미련이 그리나 많은지, 남의 제상에 감 놔라 배 놔라는 식으로, 이 일 저 일에 자꾸만 나서서 간섭하는 고향 선배들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들을 생각하면서, 노래 한 곡 불렀다.
윤동주의 시에 조영남이 곡을 붙이고 스스로 부르기까지 한 ‘서시’(序詩)라는 그 노래였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면서 보니, 내 얼굴이 그 얼굴들 위에 오버랩 되고 있었다.
아내는 가마솥에 우거지를 삶고 있는데, 나는 기타 들고 노래나 부르고 있으니, 그 영문 모르는 남들 보기에는 아무래도 부끄러운 모습으로 비쳐지겠다 싶어서 그랬다.
첫댓글 고 마싯는거를 쌲~!빼묵어!?
쳐묵는거 가이고 삐지능게 맞아!~
그래도 잘 참었네!^^어른이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