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토요일입니다.
오늘의 모든 일정과 만남 위에 은혜를 주시옵고
주일을 잘 준비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정결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허락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15.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16.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본문 주해)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었고 지혜가 많았으므로 스스로 여기기를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 낫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그 자부심으로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써서-최선의 노력으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여 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유는 헛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전도자가 알게 된 것은 그런 모든 노력 자체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다.(12~15절)
전도자는 세상의 지혜롭다는 자들이 연구하지 못한 새로운 분야까지 알아보았다고 한다. 즉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까지 알고자 하였지만 그런 것도 결국은 바람은 잡는 것과 같았다는 것이다.(16~17절)
“나는 또 무엇이 슬기롭고 똑똑한 것인지, 무엇이 얼빠지고 어리석은 것인지를 구별하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처럼 알려고 하는 그것 또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은 일임을 알게 되었다.”(17절, 새번역)
18절 :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더라.”(새번역)
이는 인간의 지혜로 해 아래 헛된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전도자가 깨달은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수고하게 하셨다는 것이다.(13절)
이것은 창세기 3장을 반영하는 것으로,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내려진 징계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 아래 죄인의 인생이기에 누구나 괴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둘째, 그렇게 해 아래서 애쓰고 노력하는 것이 바람을 잡으려는 헛된 것이다.
그 이유는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기 때문이다.
구부러진 것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간들의 삶을 가리킨다. 모자란 것은 타락한 인간들이 일구어 내는 사회적인 모순이다.
그런 결핍과 부족함을 인간의 지혜로 해결할 수 없더라는 것이다.
셋째, 그래서 얻은 결론이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지식을 더하면 더할수록 번뇌도 함께 늘어가고 근심도 커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인간의 지혜로 헛됨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노력은 바람을 잡으려는 어리석음이라는 것이다.
(나의 묵상)
해 아래 헛된 인생들은 오직 인간의 지혜로 살아간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기에 이 헛된 삶에 마음이 묶여 살아가게 된다. 그것은 아담의 타락 이후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그렇게 살아가도록 하게 하신 것이다.
물고기가 물속에 살아야 행복하듯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할 때 가장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은 타락하게 되었고,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7~19)
그래서 해 아래의 삶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렵다.
모든 인생은 헛됨의 노예가 되어 헛된 인생을 살다가 심판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주님의 보혈을 믿는 자를 구원하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아들에게 주신 생명을 아들을 믿는 그들에게 주시는 것이다.
자신의 지혜로 헛됨을 추구하던 인생들이 이제 하나님 알기를 소망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그 어리석은 일들을 그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셨기 때문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지혜로 살게 하신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매일 주님과 교제하여 말씀을 받아먹는 자는 하나님의 지혜로 살게 된다.
말씀에서 발견하게 되는 하나님의 지혜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십자가로 나타내셨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셔서 이 십자가에 반응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십자가에 연합되는 삶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는 일이다.
아들의 생명이 없는 자는 이 하나님의 지혜를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의 지혜는 좀더 부유하고, 좀더 유명하고, 좀더 즐거운 인생이 되고자 발휘되지만,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이 모든 것들을 다 버리는 길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허무한 세상 것이 아닌, 영원한 생명에 눈을 뜨게 하여 생명 얻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 생명 얻는 일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요, 날마다 그 주님과 교제하며 사는 일이다.
물론 아들의 생명을 얻은 자들도 이 땅에서 수고하는 생존의 일들을 감당한다. 그러나 그 생존의 일이 그리스도보다 우선이 되지는 않는다. 이들의 궁극적인 삶의 방향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향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에 전도서를 읽고 묵상할 때 전도자가 말한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지만, 하나님이 내 인생을 충만하게 하신다는 것은 실감할 수 없었다. 늘 열심을 내었지만 하나님은 내게서 너무 멀리 계셨다. 그래서 그저 지식으로 하나님을 머리에 저장했다고 할까....‘그렇겠지’ 정도로 생각하였다. 여전히 세상 것을 탐하면서......
그런 내게 주님이 찾아와 주셨다.
열심이 지극했으니 종래에는 인생의 허무함이나 탄식하다가 심판을 받고 영원히 멸망당할 자를 주님께서 구원하여 주신 것이다.
복음을 알게 하시고, 생명의 삶의 길을 열어주셨다.
열어 주신 그 생명의 길을 걷고 또 걷는다.
그것은 매일 말씀을 통해 복음을 듣고 또 듣는 것이다.
비록 이 땅에서 생존을 위한 삶을 살지만, 나는 복음으로 충만한 삶, 생명의 기쁨이 가득한 삶, 영원에 잇댄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영원에 잇댄 삶은, 해 아래에서 부는 바람을 잡으려 수고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지혜의 보고인 십자가만을 붙잡을 뿐이다.
(묵상 기도)
주님,
바람만 잡을 뿐인 헛된 인생을 구하여 주셨습니다.
매일의 말씀에서 복음을 듣고 또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보배로운 십자가를 알아보는 눈을 뜨게 하시고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쭙잖은 인간의 지혜를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의 지혜로 살기를 원합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삶,
성령님이 아니시면 살아낼 수 없는 이 삶,
십자가에 연합된 삶을 살기를 원하오니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