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원리: 의료는 기본적으로 불확실하다. 2번 원리: 환자 잘못되기를 바라는 의사는 단 하나도 없다.
마치 내가 경영하는 기업이 망하기를 바라는 경영자나, 전쟁에서 패배를 원하는 장군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경영자나 장군이 선하고 인성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이게 존재와 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경영을 잘해도 망하는 기업이 있고, 아무리 전략을 잘 짜도 전쟁에서 늘 승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럴 때마다 경영자와 장군을 처벌하면? 전쟁에서 지면 그 후과는 한두 명이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는 것이 아니다. 기업도 망하면 자살하는 사람들 여럿 나올 수 있다.
To err is human. 심지어 실수를 저지르지 않아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의료다. "의사라는 특별한 지위"는 거기에서 나온다. 누군가는 어쨌든 결정을 해야 하니까. 그 결정이 사망이나 불구로 이어지더라도...그것을 완화하는 장치가 결정을 환자에게 미루는 "동의(consent)"라는 것이지만, 모든 환자가 그걸 원하는 것도 아니다.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 그게 의사다. 의사를 가지고 싶으면 그 위험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 주어야 한다. 일일이 모두 책임을 묻게 되면 아무도 의사를 하지 않는다.
무통 약제를 쓰는 문제도 그러하다. 마취과학회와 산부인과학회의 의견이 갈리는 거 같은데, 모든 임상 가이드라인은 가이드라인일 뿐. 의사의 판단과 재량에 따라 합리적 이유가 있으면 바꿀 수 있다. 확실한 금기사항 말고는-그러나 확실한 금기라도 어떤 때는 써야 할 때도 있다. 이것이 임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라는 존재가 필요한 것이고, 의술이 정밀과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예술(art)이 되는 것이다. 누가 봐도 확실한 잘못을, 고의로 저지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당 의사의 판단과 결정을 믿어주는 편이 더 생산적이다.
왜?
2번 원리 : 자기 환자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의사는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p.s.한가지 더 추가하면 그래서 의학교육이 어려운 것이고, 아무나 받을 수도 없고, 교육과정을 아무렇게나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의료는 의사의 인성이 아닌 의사의 질과 수준에 달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