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전에는 책 읽어 달라던 예진이가
이젠 지가 책을 읽어 준다고, 같이 책을 읽자고 합니다.
도서관의 도서대출증을 자랑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저도 주님 안에서 잘 성장하고 성숙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2.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5.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본문 주해)
1~3절 : 사울로 인하여 사무엘이 슬퍼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뿔에 기름을 채워 베들레헴 이새의 아들 중에 기름을 부으라고 하신다.
그런데 사무엘이 왕을 세우기 위하여 가면 사울이 가만히 있지 않고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한다. 사울은 하나님께는 이미 잘렸지만, 인간의 역사 속에 그의 재위 기간은 아직 남았고, 왕의 권력도 여전히 강성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제사를 드린다고 하고, 그 제사에 이새를 청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알려주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으라고 하신다.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는 것은 백성을 위한 것이거나 왕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위한 왕을 세우시는 것이다.
4~5절 : 사무엘이 베들레헴에 오자 성읍 장로들이 떨며 맞이한다. 왕을 세우는 그 유명한 사무엘 사사가 왔으니 두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평강을 위하여 왔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사무엘이 평강을 위하여 왔다고 하며 하나님께 제사하자고 하며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제사에 청한다.
6~7절 : 이새의 아들들이 사무엘 앞으로 나아온다.
첫째 아들 엘리압은 용모와 신장이 뛰어난 인물이라 사무엘의 마음에 들었다. 사무엘조차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나는 중심을 본다’고 하신다.
중심이란 마음, 영혼, 의지, 심장 등으로 번역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의 선함을 보시고 택하신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다(창6:5)고 성경은 말한다. 다윗도 예외가 아니기에 간음하고 살인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그것은 사람들이 보는 식으로 하나님은 보지 않으신다는 말씀이다.
8~12절 : 엘리압과 아비나답과 삼마 그리고 나머지 4명의 아들들을 다 보아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아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버지 이새가 아예 제사에도 부르지 않은, 양이나 치는 어린 소년 다윗이 불려오자 그가 기름 부을 자라고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시지 않는다고 하셔 놓고는 12절에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하며 외모를 말한다. 이는 하나님은 다윗의 중심을 보셨지만 사무엘은 다윗을 만날 때에는 외모를 통해서 만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외모에 대한 묘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무엘이 기름이 담긴 뿔병을 들고, 그의 형들이 둘러선 가운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그 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 사무엘은 거기에서 떠나, 라마로 돌아갔다.”(13절, 새번역)
(나의 묵상)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고 다윗에게 기름 부으시면서,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사울 때는 외모를 보았기에 실패했는데 이제 중심을 보시겠다는 말씀이 아니다. 사울 때도 중심을 보셨으리라.
다만 사울은 변질되었다.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삼상9:2)
사울이 왕으로 세워질 무렵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우실 때 사람들은 그의 용모와 신장을 보았지만, 하나님은 그때도 그의 중심을 보셨을 것이다.
사울의 중심은 어떠했을까?
난데없이 사무엘이 자기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에도 그는 자신을 작게 여겨 짐보따리들 사이에 숨었었다(10:22). 또 불량배들이 사울을 업신여겼을 때도 잠잠하였다(10:27).
사울의 중심은 사람 앞에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겸손’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자 그는 변하여, 하나님보다도 사람의 눈을 더 의식하였다. 그렇게 된 이유는 왕의 자리에 대한 집착과 탐심이었으니, 처음과 나중이 너무도 다른 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다.
외모를 보는 것은 인간들이 하는 짓이다.
사실 인간은 외모를 볼 수밖에 없다. 그 중심을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사무엘조차 사울의 실패를 겪고도 용모와 신장으로 눈길을 끄는 엘리압에게 기름 부으려 하지 않았는가?
외모를 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시각은 에덴 동산의 범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 같아지려 했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같아지기는커녕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어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가지는 죄인이 되고 말았다.
이 죄인의 시각이 바로 외모를 보는 눈이다. 그래서 무슨 옷을 입었는지, 무슨 차를 탔는지, 무슨 학교를 나왔는지, 3A(Appearance, Achievement, Affluence)의 소위 무화과잎으로 치장한 것만을 보게 되는 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쓸데없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며 살아가는 우리도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는 자가 되길 원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된 상태에서는 절대 가능한 일이 아니다.
어떻게 중심을 보는 하나님의 시각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 품속에 안길 때 가능하다.
십자가에 연합됨으로 허망한 세상 것에 끌리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아버지 품속에 안겨 아버지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매일의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시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남들 앞에 외모로 보이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남들을 외모로 판단했던 마음을 회개하게 된다.
다윗이 처음부터 마음이 선한 자라서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신 것이 아니라, 사울처럼 똑같이 잘못을 저지르는 보통 인간이지만 늘 회개하는 마음을 가진 자임을 보신 것이 아닐까 싶다.
사울은 사무엘이 그렇게 직언을 하여도 듣지 않았지만, 다윗은 선지자의 말 앞에 늘 고꾸라지는 자였음을.....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실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으로 보내시기로 작정하실 만큼이니, 죄 중에도 회개하며 늘 정결하기를 사모하는 그의 중심을 보신 것이다.
나는 늘 죄를 짓는 존재이다. 다만 그 가운데서도 속히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보일 만한 중심’이라는 것이 있는 자가 되길 소원한다.
(묵상 기도)
주님,
저는 주님께 보일 만한 중심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빈껍데기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제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 빈 껍질을 걷어내는 자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언제나 정결함을 입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렇게 아들의 이름을 힘입어 나아갈 때마다
아버지께 보실 만한 중심이 만들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