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대언자 (prophetess)
1. 들어가며
어느 기독교 계열의 신문을 보면 거의 매일 은사주의자들의 집회 광고가 실립니다.
방언, 신유, 예언, 축사, 계시, 입신, 영 분별, 영권 물권 인권 회복, 축복, 불세례... 등등 그 집회에 참석하면 저런 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현란한 수식어들을 동원해서 날마다 광고를 하고 있는데, 광고를 낸 사람도 참 한심해 보이고, 그런 광고를 유치해서 수익을 챙기는 신문사도 어리석어 보이지만, 저런 것에 현혹되어 찾아갈 사람들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방언(foreign language)이나 통역을 배우려면 외국어 학원에서 어학공부를 하면 되고, 마귀를 내쫓으려면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시도록 하면 될텐데 왜 저런 기독교 무당 사역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완성된 지금, 추가적인 직통계시와 대언의 말씀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말은 거짓말입니다(계 22:18,19).
영권이란 영적인 권세를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적인 권세를 가진 자들입니다. 영적인 권세는 저런 은사집회에서 나눠주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그 영권이라는 것이 사람들을 압도하고 굴복시키는 카리스마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는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계 2:6). 그들에 의하면 물권은 교회가 돈을 많이 벌게 해 준다는 말이고, 인권이란 교인 숫자가 불어나게 해 준다는 말인데, 성경 어디에도 주의 몸된 교회가 돈을 많이 긁어 모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거나 교인들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 부흥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집회에 와서 불 침례를 받으라고 하는데, 성경 말씀에 의하면 불 침례라는 것은 믿지 않는 자들이 받는 것입니다.
(마 3:11,12, 킹흠정) [11] 참으로 나는 회개에 이르도록 너희에게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능력이 더 있으시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나를 자격도 없노라.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시고 불로 침례를 주시리니 [12] 곧 손에 키를 들고 자신의 타작마당을 철저히 정결케 하사 자신의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시되 껍질은 꺼지지 아니하는 불로 태우시리라, 하니라.
마 3:11 바로 다음에 나오는 12절을 보면, 알곡은 곳간에 들어가는데 이는 성령침례 받은 신자를 말하며,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껍질은 불로 침례를 받는 자를 말합니다. 마가복음 9:43-49 말씀을 보면 지옥에 들어간 자들의 모습에 대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막 9:49, 킹흠정) 이는 사람마다 불로 절여질 것이요(salted with fire), 희생물마다 소금으로 절여질 것이기 때문이라.
한글킹제임스성경에서는 보다 적나라한 표현으로 "불로 소금치듯 함을 받으리라"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불 침례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광고에 의하면, 저 은사주의 집회에 참석하면 불 침례를 받게 된다고 주장하는데, 다른 건 몰라도 그것 하나만은 믿을만 합니다. 저런 집회를 열어서 기독교 무당 노릇하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미혹된 자들이 장차 주님의 심판을 받아 "불로 침례를 받게 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전에는 저런 광고에 나오는 강사나 주최자는 대부분 여자로서 "기도원 원장 OOO" 라고 소개했는데, 요즘에는 그 여자 기도원장들이 대부분 "기도원 원장 OOO 목사"라는 타이틀을 쓰고 있습니다. 심지어 기도원 집회 때 찬양을 하는 여자 가수들도 요즈음은 "목사"라는 직책을 달고 나옵니다. 왜 이렇게 갈수록 여자 목사들이나 여대언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아질까요? 아마도 교계 내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들보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를 숭배하는 자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여성신학자들(신학자들 중에서 여성학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여성이 목사직을 맡는 것이 시대의 대세이고,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경 말씀에서 여성이 감독이나 집사의 직분을 맡는 것을 허락하신 적이 없습니다. 성경 말씀에 의하면, 감독이나 집사는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했는데(딤전 3:2, 딤전 3:12) 이는 남자만이 이런 직분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딤전 3:2, 킹흠정) 그러므로 감독은 반드시 책망 받을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 깨어 있으며 맑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행실이 바르며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며 가르치는 재능이 있으며
(딤전 3:12, 킹흠정)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을 잘 다스릴지니라.
그런데, 여성신학자들은 "여자도 목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서 구약 시대에도 여자 대언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조선 시대에 노비 제도가 있었으므로, 오늘날도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나 마찬가집니다.
왜냐하면 목사나 집사는 대언자들이 활동하던 시대의 직분이 아니라 교회의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님께서 오셔서 성령침례를 받은 신자들이 생기기까지는 교회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거듭난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가 생긴 이후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다스리고 섬기는 직분으로서 감독과 집사를 세우셨기 때문에, 그 이전에 여자 대언자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문제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목사와 집사의 자격 요건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따라서, 성경 기록에 여자 대언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여자 목사를 세울 수 있다"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이 글은 "여자가 목사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 라는 주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미리 밝혀 둡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이미 안 된다고 하셨으므로 더 이상 재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저는 이 글에서 성경에 나오는 "여자 대언자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그녀들의 활동과 삶의 열매를 돌아봄으로써 몇 가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2. 성경에 나오는 여자 대언자들
성경에는 여자 대언자를 의미하는 prophetess 라는 단어가 모두 8번 등장하며, 이 중 훌다는 열왕기하와 역대하에 중복하여 등장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모두 7명입니다.
(1) 미리암
(출 15:20, 킹흠정) 아론의 누이 여대언자 미리암이 손에 작은북을 잡으매 모든 여인들이 그녀를 따라 나오며 작은북을 잡고 춤을 추니
성경은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여대언자(prophetess)라고 합니다. 그녀는 성경에서 3번 모습을 드러냅니다. 첫번째는 모세를 담은 갈대상자가 어떻게 되는지 숨어서 지켜볼 때(출 2:3-4), 두번째는 출애굽기 15장의 기록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지난 후 하나님께 찬양드릴 때(출 15:20-21), 세번째는 나병 환자가 되어 이스라엘 진영 밖으로 쫓겨나 얼굴을 가리고 숨어있는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의 누이로서, 백성을 이끌고 하나님을 찬양하던 그 당당하던 미리암의 말년이 왜 이렇게 비참해졌는지 성경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민 12:1,8, 킹흠정) [1] 모세가 이디오피아 여인과 결혼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가 결혼한 그 이디오피아 여인으로 인하여 모세를 비방하니라. [8] 그와는 내가 입에서 입으로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또 그는 주의 모습을 보려니와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누나이자, 여자 대언자였던 미리암은 모세를 비방하고 그의 위에 올라서서 권위를 행사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께서 세우신 권위와 질서에 대해 도전한 미리암에게 나병에 걸리게 하고 그녀를 이스라엘 진영 밖으로 내쫓아버리심으로써 엄하게 처벌하셨습니다. 모세의 누나가 아니라, 모세의 아내나 어머니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자가 남자 위에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십니다.
(2) 드보라
(삿 4:4, 킹흠정) 그때에 라비돗의 아내 여대언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을 재판하였더라.
아마도 드보라라고 하면 여성신학자들이 열렬히 환호하고 지지하는 여성 중 한 명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여자의 몸으로서 대언자가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을 재판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에 하나님이 드보라를 이스라엘 사사로 세우셨다거나 그녀를 사사로 인정하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드보라가 활동 내역이 겨우 1-3절 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사들(삼갈, 돌라, 야일, 입산 등) 중 한 명이라면 몰라도 그녀의 활동상이 사사기 4장과 5장에 걸쳐 기록되어 있는데도, 주께서 그녀를 임명하셨다거나 그녀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드보라는 그녀 자신에 대해 "나 드보라가 일어났고, 어머니인 내가 이스라엘에서 일어났도다" 라고 자기를 소개합니다. 그녀는 자기 소개에서 하나님 대신 그녀 자신(I)만을 드러내며, 자칭 자기를 "어머니"라고 칭합니다(삿 5:7).
(삿 5:7, 킹흠정) 마을들의 거주민들이 그치고 그들이 이스라엘 안에서 그쳤더니 마침내 나 드보라가 일어났고 어머니인 내가 이스라엘에서 일어났도다.
제가 보기에 그 당시에 여자인 드보라가 이스라엘을 재판했다고 해도, 이게 사사기에서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사들의 시대에는, 아들이 엄마 돈을 훔쳤는데 엄마는 그 아들을 축복하고, 그 은을 주께 봉헌하여(?) 우상을 만드는데 사용하던 시절이며(삿 17:1-4), 레위 사람이 개인 집의 우상지기 노릇을 하던 때였으며(삿 17:9-12), 레위 사람이 첩을 두고(삿 19:1), 한 마을 사람들이 집단으로 남색을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삿 19:22-25).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은 다음 한 마디로 요약됩니다.
(삿 21:25, 킹흠정)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눈에 옳은 것을 행하였더라.
이처럼 사람들이 올바른 기준이 없이 각자 자기 눈으로 보기에 옳다고 생각되는대로 막 살던 시기였으므로 여자가 나서서 이스라엘을 재판하는 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드보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셨을까요? 신약 성경 히브리서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의 명단을 열거하면서 드보라는 쏙 빼 놓았습니다.
(히 11:32, 킹흠정)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과 바락과 삼손과 입다와 또 다윗과 사무엘과 대언자들에 관하여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라.
히브리서 11:32을 보면,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같은 사사들이 나옵니다. 물론 그외에도 이름이 누락된 사사들이 더 있습니다만, 원래 바락이 나오면 그와 같이 활동하던 드보라가 함께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삿 4:6, 삿 5:1). 사사기에서는 오히려 드보라가 주도권을 잡고 바락을 불러다가 명을 내리고, 바락이 그녀에게 의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는데(삿 4:8), 히브리서에서는 하나님이 드보라의 이름은 빼 버리고 바락만 기록하셨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녀가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가 아니었거나, 바락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그녀의 태도를 하나님께서 좋게 보지 않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3) 훌다
(왕하 22:14, 킹흠정) 이에 제사장 힐기야와 또 아히감과 악볼과 사반과 아사야가 여대언자 훌다에게로 나아갔는데 그녀는 할하스의 손자이자 디그바의 아들로서 예복을 관리하는 자인 살룸의 아내더라. (이제 그녀는 예루살렘에서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구역에 거하였더라.) 그들이 그녀와 대화를 나누니라.
(대하 34:22, 킹흠정) 힐기야와 왕이 지명한 사람들이 여대언자 훌다에게로 나아갔는데 그녀는 하스라의 손자이자 디그바의 아들로서 예복을 관리하는 자인 살룸의 아내더라. (이제 그녀는 예루살렘에서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구역에 거하였더라.) 그들이 그녀에게 그런 취지로 말하니라.
요시야 왕 당시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집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하였는데, 그 책의 말씀을 읽고 왕은 옷을 찢으며 주 앞에서 낮아져서 그 책의 말씀에 대하여 주께 여쭈어 보라고 합니다. 왕의 명령에 따라, 사람들은 여대언자 훌다를 찾아갑니다. 왜 그들은 대언자를 찾아가지 않고, 여대언자를 찾아갔을까요? 아마도 요시야 왕 이전의 악한 왕 므낫세와 아몬에 의해(왕하 21장) 많은 주의 대언자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남은 자가 거의 없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요시야 왕 당시에 활동하던 대언자 스바냐가 있었겠지만, 사람들은 왕궁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아직 살아남은 여자 대언자 훌다를 찾아갔습니다.
주의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어쩔 줄 몰라하는 요시야 왕은 주께로부터 나오는 말씀을 듣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대언자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더라도 왕은 다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 오늘날 부흥사들이나 대언자를 자칭하는 자들에게는 이렇게 좋은 기회가 다시 없을 겁니다. 그들이라면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서 마음껏 자기 권위를 내세우고 이런저런 요구를 할 수 있었겠지만, 훌다는 주께로부터 받은 말씀만 정확하게 대언하고 다시 살룸의 아내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 그녀가 왕궁에 초빙을 받아서 왕의 자문을 했다거나 자기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많이 끌어모았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녀는 주께 받은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대언자의 본분에 충실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4) 노아댜
(느 6:14, 킹흠정)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대언자 노아댜와 대언자들 중 남은 자들이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으니 그들의 이 소행대로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느헤미야 6장에는 여대언자 노아댜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도비야와 산발랏과 한편이 되어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것을 방해한 여자입니다. 성경은 그녀가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다고 합니다. 여자인 그녀가 느헤미야에게 흉기를 들이대며 협박을 했을까요? 아마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녀는 자기가 여대언자 신분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주신 말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 속으로 지어낸 말을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선포하여 느헤미야를 비방하거나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말을 퍼뜨렸을 겁니다.
느헤미야가 "그들의 소행대로 그들을 기억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처럼, 그녀의 행적은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고, 그녀는 장차 이 일에 대해 주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겁니다.
(5) 이사야의 아내
(사 8:3, 킹흠정) 여대언자에게로 들어가니 그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니라. 그때에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성경은 대언자 이사야의 아내도 여대언자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대언한 내용이나 활동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6) 안나
(눅 2:36, 킹흠정) 또 아셀 지파에 속한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여대언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나이가 매우 많더라. 그녀가 처녀 생활을 벗어나 칠 년을 남편과 함께 살다가
예수님께서 태어나던 당시에 안나라고 하는 여대언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84년 동안 과부로서 살면서 주의 전에서 금식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기다가 마침내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메시야를 만나서 그 분을 사람들에게 소개하였습니다.
(7) 이세벨
(계 2:20, 킹흠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몇 가지 있으니 이는 네가 이세벨이라는 그 여자를 용납하기 때문이라. 그녀가 자기를 가리켜 여대언자라 하며 내 종들을 가르치고 꾀어 음행하게 하고 또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게 하는도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 두아디라 교회에는 자칭 여대언자 이세벨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녀가 주의 종들을 꾀어 그들로 음행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거짓 능력을 보여주며, 잘못된 교리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멸망의 길로 이끄는 거짓 여대언자들이야말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이세벨의 추종자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명시적으로 여대언자(prophetess)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대언을 한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전도자 빌립의 네 딸입니다(행 21:8-10).
(행 21:8-10, 킹흠정) [8] 이튿날 바울의 일행인 우리가 떠나서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사람 중의 하나인 복음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머무니라. [9] 그 사람에게 처녀인 네 딸이 있었는데 그들이 대언을 하더라. [10] 우리가 거기서 여러 날 머물고 있을 때에 아가보라 하는 어떤 대언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이르러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손발을 묶고 이르기를, 성령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 띠의 임자를 이같이 묶어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신다, 하거늘
바울의 일행이 머물고 있던 전도자 빌립의 집에는 대언을 하는 그의 처녀 딸이 네 명이나 있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여러 날" 동안 그 집에서 머물고 있었지만, 그녀들 중 어느 누구도 바울의 사역에 대하여 그에게 대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녀들이 바울에게 대언을 하지 못 했을까요? 하나님이 그녀들에게 대언할 말씀을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날 동안 바울과 함께 지내고 있는 빌립의 딸들이 아니라 유대로부터 아가보라고 하는 대언자를 불러서 그에게 대언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자가 남자 위에 올라서서 영적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3. 여자 대언자들을 통한 교훈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7명의 여자 대언자들과 대언을 하는 빌립의 딸들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런 성경 말씀들을 읽고 그녀들의 삶을 살펴보면서 어떤 것을 생각하고 무엇을 배우셨습니까?
각기 생각하고 느낀 점은 다르겠지만, 저는 여대언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대언자들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여자 대언자들도 하나님의 일을 행했지만, 그녀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남자의 권위에 도전하고, 그 위에 올라서서 영적 권위를 행사하거나 군림하고자 할 때에는 언제나 부정적인 열매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한 남자의 아내로서 자기 가정과 자녀를 돌보며 섬겼던 여대언자들은 외적으로 화려한 경력과 활동은 없었지만 조용하고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결코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하거나, 한국 교회에서 여자 성도들의 위치를 폄하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자 성도들은 성경 곳곳에서 아름다운 섬김과 헌신의 본을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에도 여자가 남자 위에 올라서서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허락하신 적이 없다는 겁니다.
이것은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남성 우월주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의 질서이며(고전 11:8-9),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권위이기 때문입니다(창 3:16).
(고전 11:8-9, 킹흠정) [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나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창조되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창조되었나니
(창 3:16, 킹흠정)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고통과 수태를 크게 더하리니 네가 고통 중에 자식을 낳을 것이요, 또 너의 열망이 네 남편에게 있으리니 그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성령께서 신자들 안에 내주하심으로써 교회가 생겨난 이후,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도 이런 질서가 지켜지기를 원하십니다(고전 14:34-35, 딤전 2:12).
(고전 14:34-35, 킹흠정) [34] 너희의 여자들은 교회 안에서 잠잠할지니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아니하였고 또 율법도 말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순종하도록 명령을 받았느니라. [35] 만일 여자들이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들이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니라.
이 말씀을 잘못 받아들이고 "교회에서 여자는 말을 하면 안 되는가?" 라고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 성도들이 교회에서 말하는 것(to say)을 금하신 것이 아니라, 여자 성도들이 연설(설교)하는 것(to speak, 명사형은 speech 공중연설)을 금하셨습니다(it is not permitted unto them to speak).
이는 하나님께서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 위에서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딤전 2:12, 킹흠정) 오직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와 권위를 인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남녀평등의 준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킹흠정쪽에서는 여자목사님을 인정하지 않으시군요..
저는 찬성이다 반대다를 떠나서..여쭤봅니다.
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는 '너희는' 남자들만인가요?
딤전2:11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12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
13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14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15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신다면 여자목사들이 우르르 모인 교인들위에서 설교하고 주관하고 부르짖는 광경이 과연 적절해 보이는지요??
불 침례가 믿지 않는 자들이 받는거라뇨? 말씀을 완전 잘못해석하네요ㅎㅎ
불의 성경적 용례를 잘 찾아보시면 이해가 갑니다.
님은 성령받을때 뜨거움을 느꼈습니까?
실제로 뜨거움을 느꼈다면은
성령침례에 대해서 다시 성경적으로 확인해보세요..
불은 소멸하는 것의 재료입니다.
사람인 제 마음으로는 인정하기 싫은 많은 이유들과 여러 핑게거리와 여러가지 이의제기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성경말씀에 순종합니다. (딤전 2:12, 킹흠정) 오직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 아멘~
계시록의 이세벨은 엣바알의 딸이자 아합왕의 아내로 바알신을 섬기며 나봇을 높여 모함하고 포도원을 빼앗은 바로 그 여자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10지파로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단과 벧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못하게한 대로 그 나라왕 아합도 바알신을 섬기는 이세벨을 아내로 들여 이스라엘로 한짓에 관한 예언입니다
교회가 높임을 당하니 진리를 빼앗기고(나봇이 포도원을 빼앗긴것처럼) 바알신으로 행음하게 된 두아디라 교회상태에 관한 것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새로운 설이 아니라
신앙의 노선이 다른관계로
님이 몰랐던것일 뿐입니다.
@主は愛なり 신앙은 깨달음이 아닙니다.
성경기록 통해서 알아지고 내안에서 양심이 결정을한 다음 믿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1차적인 것은 성경기록을 지식적으로 알아야 한다는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 내가 그들에게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 지식" 에 따른 것이 아니니라"" (롬10:2)
@主は愛なり 그러므로
신앙의 노선이 틀리는 것은 지식적인 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깨달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
그것이 공동의 신앙관이 될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말씀의 일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문서로 남긴 것입니다.
그문서가 바로 성경기록이고요..
@主は愛なり ㅎㅎ
종교인..
너무 무지하길래 이해 차원에서
설명을 좀 했더니 종교인? ㅎㅎ
님의 길이나 열심히 잘가시오..
그리고 종교인이란
님처럼 뭔가 영적인 깨달음을 얻을려고 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명심하시요.
세상이 크게 잘못되어 가는 현상중의 하나입니다.
성경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여자 목사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 교단들이나 신학교는 회원수나 재정을 늘릴려는 욕심으로 여성 분들에게 안수주는 일을 서슴치 않고 자행하는 데,
한국교회 무너지게 하는 일 빨리 중단해야 합니다.
동감입니다~
샬롬^^
저는 장로로서 여자목사가 장로 주장하는 것 결코 허용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