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외할머니랑 같이 살고 있어요.
부모님께서 맞벌이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외할머니께서 쭉 돌봐 주셨죠.
집에 있는 날엔 할머니께 과일 깎아드리면서 할머니랑 TV 보는 게 큰 낙입니다.
드라마도 보고, 뉴스도 보고...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할머니 말씀 듣는 게 참 즐겁거든요.
그런데 가끔씩 할머니께서 제게 '생각할 만한 화두'를 던져주실 때가 있어요.
제목의 질문처럼 말이죠.
매일 오전 5시에 정확히 일어나셔서, 6시면 저를 깨워서 청소를 시키시는 할머니.
("기자 취직하면 바로 시집갈 텐데 이제 신부수업도 해야 한다! 올해 꼭 취직해야지!"라고 강하게 말씀하시며 ㅜ.ㅜ...)
할머니께선 매일 아침 6시면 KBS 뉴스광장을 꼭 틀어 보세요.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세상사 어찌 돌아가는 지 궁금하다고 하시면서요.
잠이 덜 깬 눈 비비며 걸레 들고 춤을 추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거 FTA라는 게 도대체 뭔데 저렇게 난리냐? 데모하는 애들 왜 저렇게 난리쳐? 복잡도 해라. 뭐가 뭔지 알 수가 있어야 말이다." 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순간, 전 말문이 막혀 버렸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FTA는요 ~~의 약자구요, 이러이러 해서 저러저러 한 거에요~" 라고 얘기를 조직하고 있는데,
이걸 '할머니께서 분명하게 아실 수 있을 정도로' 쫘악 설명해드릴 재간이 없었거든요.
전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어요. "도대체 FTA가 뭐냐?"라는 너무도 단순한 질문에,
알기 쉽게 설명 한 번 못 해 드리고 "너는 기자 공부한다는 애가 할미한테 저게 뭔지 제대로 알려주지도 못하냐?" 라는 핀잔만 듣고... 쪽팔렸습니다.
청소를 다 끝내고 컴퓨터 켜서,
요즘 나왔던 FTA 관련 뉴스랑 신문기사들을 살펴봤습니다.
제가 받은 느낌은 "정말 요즘 뉴스들 너무 불친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FTA에 대해서 여러 가지 목소리들을 많이 담고 있고,
특히 FTA 관련 쟁점 사안을 둘러싼 시위나 충돌 같은 게 많이 강조되고 있었는데요.
정작 "FTA가 뭐냐?"에 대해 시청자,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쫙 정리된 내용이 거의 없었어요.
보도의 기본으로 그렇게 6하원칙을 강조하면서,
요즘 나라를 들썩일 정도로 큰 이슈인 FTA에 대해선 6하원칙에 따른 친절한 설명이 없더라구요.
FTA가 언제 어디서 생겼는지, 과연 무엇을 FTA라고 하는지, 전개 역사가 어찌 되는지,
FTA가 어떤 특징이 있기에 이렇게 찬반 여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는지 등등...
일반 시청자,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할 "기본적인 정보"들이 없더라구요.
각자의 주장만을 목청 높여 외치는 충돌의 단편들만이 난무할 뿐이었어요.
사안의 당사자들, 언론인들 또는 저희같은 언시생들이야, FTA에 대해 이것저것 토론할 기회가 있겠지만
시청자들과 독자들 모두가 언시생, 언론인들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FTA 보도를 보면서, 언론사들이 정작 시청자의 알 권리를 제대로 살피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FTA 쟁점이 그토록 복잡하게 느껴지는 것도 결국 "제대로 된 사실 관계"가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란 생각도 들었고요.
과연 현재 언론사들이 진정 "시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서비스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지 딴죽을 걸고 싶어집니다.
언론사 나름의 이해 관계를 가지고 그 이해관계를 뉴스의 이름으로 전달하려고 하는 욕심이 앞서는 건 아닌지 말이에요.
저희가 언론사 입사시험 공부하면서 사회의 여러 쟁점들을 갖고 토론하는 것도 결국에는
"일반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어떻게 정확하고 신뢰성있는 정보를 전달할지, 그리고 사회를 위해 어떤 화두를 던져야 할지?"를 알아 가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존재를 정확히 알아야 눈이 흐려지지 않기에, 머리 터지게 여러 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거겠죠.
꼭 FTA 관련 보도뿐만 아니라,
요즘 대부분의 TV 뉴스, 신문 기사들을 보면 "사회와 함께 숨쉬고 소통하는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언론인 자세를 찾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혼돈을 조장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도 되고요.
아직 합격도 되지 못해서 징징거리고 있는 초라한 신세지만,
"언론인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라는 화두는 늘 품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언젠가 기자가 되었을 때, 제 기사를 보고 듣고 읽을 이들은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도 있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평범한 시청자와 독자들'일 테니까요. 저희 외할머니같은 분들처럼 말이죠.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겠습니다.
꼭 "올해 합격해야 한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세상에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대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할머니의 한 마디 물음에, 많은 걸 생각할 수 있었던 아침이었습니다.
(뻘소리 때문에 글이 넘 길어져서 죄송....^^;; )
첫댓글 확~ 동감가는 글입니다~비슷한 경험이 있어봐서... ㅠ.ㅠ
저도 확 동감이 가네요 ㅇㅇ!!! 전 지금도 FTA협상에서 오가는 잘 말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_-;;
그렇죠? 좀더 쉽게쉽게 가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일텐데요. 개인적으로 신문이나 방송은 '믹서기'가 되어야 하는게 아닐까 저두 생각하고 있어요. 딱딱한거 부드럽게 먹을 수 있도록 ㅋ
제목 보고 세대공감 올드앤뉴에 대한 건줄 알았습니다.ㅋㅋㅋ
저도 동감이예요~^^ 정확한 기사 내용을 좀 더 쉽게 독자들에게 전달할 방법....공부 많이 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