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죽음에 대해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어둠이요, 두려움이요, 절망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굳게 잡은 성도에게는 주님을 대면하여 보는 기대와 기쁨입니다.
저희가 이 땅에서의 짧은 일생을 마감하고 주님께로 갈 때
감사와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허락하옵소서.
진리의 말씀으로 제 영이 춤추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본문 주해)
1~3절 : 1장 22~23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크신 능력에 대한 말씀이 2장으로 연결되고 있다.
즉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는 것이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이란 거듭나지 못한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이 되어 있던 때를 가리킨다.
그 때에 에베소 교인들의 삶이 어떠했던가를 바울이 말한다.
첫째로 이 세상 풍속을 좇았다. 이는 하나님을 반역하는 세상 정신이 가득한 세상의 길로 걸어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눈과 마음이 좋아하는 것들을 탐닉하고, 욕심이 이끄는 대로 행동함으로 가야할 곳과 가지 말아야할 곳의 구분이 없었다는 것이다.
둘째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는 것이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는 인간의 참된 행복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방해하는 초자연적인 악의 세력으로, ‘악의 영들’(6:12), ‘사탄’(막8:33)을 의미한다.
에베소 교인들은 과거에 이런 악한 영의 통치하에 살았었던 것이다.
이 사탄은 영적인 존재로서 실존한다.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지금도 수뇌 역할을 하고 있는 영적 세력인 것이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은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좇는 삶인 것이다.
바울 사도는 이런 에베소 교인들의 과거의 모습을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표현한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본질상’ 진노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본질상’은 ‘태어나면서부터’, ‘천성적인’ 것을 의미한다.
4~7절 : 4절은 ‘그러나’로 시작되는데, 개역개정 번역에는 빠져있지만 새번역에는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4~6절, 새번역)
세상 풍속을 좇았던 인간들, 공중 권세 잡은 자를 추종하고 그 통치를 받은 인간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마음과 생각이 항상 하나님을 반역한 인간들, 도무지 불쌍히 여김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한 것이 없는 존재들을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리셨고, 일으키셨고, 앉히셨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로 베풀어주신 그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장차 올 모든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시기 위함입니다.”(7절, 새번역)
그것은 성도들이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도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 즉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풍성함이 오고 오는 세대에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요, 1장 후반부에 나타난 교회의 능력이기도 한다.
8~10절 :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새번역)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즉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선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구원은 처음부터 하나님에게서 출발한 것이니, 자신의 믿음을 공로로 내세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행위의 자랑은 하나님의 의보다 내 의가 더 드러나는 시점에서 나오는 것이다.
받을 수 없는 선물을 받았으면 오직 감사와 찬양만을 할 뿐이다. 이것이 성도들이 하는 가장 선한 일인 것이다.
(나의 묵상)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나는 세상의 풍조를 따르며 살았다.
그런데 그것이 사탄의 조종 아래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담의 범죄 이후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모든 인간의 타락에 대해 몰랐고, 또 타락한 존재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이니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극히 정상적인 삶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사탄이 교묘히 속여 모든 인간들로 하여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하여 달려가게 만든 것이었지만, 이것이 죄의 모습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복음을 듣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다. 예수님의 보혈만이 나를 살리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그를 전적으로 의지하게 하시니 나는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선물로 받은 자가 되었다.
이러한 믿음조차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안다.
내게서 어떻게 이런 믿음이 나올까 말이다. 이것은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께서 보내신 성령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새 생명을 얻은 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던 나를 살리시고, 또 함께 일으키시고, 또 함께 하늘에 앉히셨음을 나는 믿는다.
이 역사 속에서 나는 여전히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존재이지만, 이미 하늘에 앉힌 존재임을 믿는다. 왜냐하면 날마다 주님과 교제함으로 영생에 잇댄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런 은혜를 내게 베푸셨는가?
그것은 나 자신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임을 알고,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먼저 주님 주신 생명으로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요, 또한 그 은혜를 오고 오는 세대에 전하는 일이다. 즉 복음을 전하고 생명의 삶을 증거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함에 있어서 나의 공로는 전혀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그 일을 하라고 다 주신 것이니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요, 모든 일은 주님께서 하시는 것임을 안다.
구원을 선물로 주신 이가 ‘이제는 네 힘으로 살아보거라’ 하지 않으시고, ‘계속 내게 붙어 있거라’ 하신다.
때때로 주님께 밀착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잡초처럼 올라오지만 그럴 때마다 그것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그것은 ‘나는 더 이상 세상 정신으로 사는 자가 아니다!’ 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니 걱정 근심이 없다.
오로지 주님과 교제하면서 주께서 하신 일의 모든 과정을 잠잠히 보면서, 주님을 찬양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를
살려주시고, 일으키시고, 하늘에 앉혀 주심에 감격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그 일에 저의 공로라는 것이 티끌만큼도 없는 것이니
장차도 저의 행위를 주님과 사람 앞에 주장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모든 것을 주님께서 주셨고,
모든 일을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주님께 딱 붙어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기뻐하는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