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큰 원을 세워 길잡이 삼으라..

 

 

불교의 의식은 삼귀의에서 시작해 사홍서원으로 끝맺음 한다. 사홍서원

이란 네가지 큰 서원을 말하는데,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세운 서원

에서 공통으로 들어가는 원력이다. 예를 들면 석가모니부처님의 10대

원, 아미타불 48대원, 약사여래 12대원, 보현보살 10대원 등이 있다. 이

서원의 공통적인 내용을 선별한 것이 사홍서원이라 할 수 있다.

 

 

사홍서원은 현재 찬불가 형태로 부르는데, 간혹 스님들만 모인 법회에서

는 전통식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중생무변서원도(衆 生 無 邊 誓 願 度) : 모든 중생을 빠짐없이 건지겠습

                                                         니다.

 

번뇌무진서원단(煩 惱 無 盡 誓 願 斷) : 끝없는 번뇌를 다 끊겠습니다.

 

법문무량서원학(法 門 無 量 誓 願 學) : 한없는 법문을 다 배우겠습니다.

 

불도무상서원성(佛 道 無 上 誓 願 成) : 더할 것 없는 깨달음을 성취하겠

                                                        습니다.

 

 

 

서원은 부처님을 향해 맺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그런데 사홍서원은 너무

크다. 일반인이 언뜻 생각하기에 엄두가 나지 않는 크기다. 왜 이리 불교

에서는 실천하기 벅찬 큰 서원을 말하는 것일까. <화엄경>에 보면 “큰 원

을 일으켜라. 큰 원을 일으키지 않으면 마의 무리에 끼기 쉬우므로 도를

구하려면 반드시 큰 원을 세워 길잡이로 삼으라”는 가르침이 나온다. 즉,

대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역경과 시련이 닥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게

되고, 게으르거나 교만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사홍서원의 특징은 세상 그 어느 서원보다 크다는데 있다. 한 생에 이루는

서원이 아니라, 오랜 세월 세세 생생을 이어가면서 이뤄야하는 서원이다.

우리는 꿈을 세운다. 초등학생의 꿈은 선생님, 의사, 대통령 등등 다양하다.

그런데, 점점 꿈의 형태가 바뀐다. 선생님이 되는 것이 궁극의 삶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야가 넓어지면서 꿈은 인류를 위한 과학문명을 창조한

다던지, 난치병을 극복할 연구를 한다던지, 사업가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

을 주는 형태로 변화된다. 목적인지 알았던 대상이 수단이라는 점을 깨닫고,

궁극적인 모두의 행복을 꿈꾸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홍서원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겠다, 출가 수행해 큰 선지식

되겠다는 수단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어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목적성

에 방점을 찍고 있다. 깨달음과 수행, 경전 공부의 근본적인 목적은 바로 중생

구제인 것이다.그런 점에서 사홍서원은 나를 위한 서원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이타행, 즉 보살행의 표현이기도 하다. 서원을 세우는 형식은 대승불교의 특징

이기도 하다. 소승불교가 깨달음의 성취를 주로 말하지만, 대승불교는 깨달음

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어떻게 사회에, 중생에 모든 생명에게 실천하느냐

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다. 그 실천자가 바로 보살이다.

 

 

“중생을 건진다고 함은 내가 그대들을 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저마다 자기 마

을 스스로 건지는 것, 이것이 참된 건짐이다. 그럼 어떻게 자기 마음을 스스로

것인가. 자기 마음속의 그릇된 소견과 번뇌, 무지를 바른 견해로 건져야 한

다. 그릇됨이 오면 올바름으로, 미혹이 오면 깨달음으로 어리석음은 지혜로 건져

야 한다. 번뇌를 끊는다 함은 자신의 지혜로 허망된 생각을 없애는 것이요, 법문

을 배운다 함은 스스로 성품을 보아 항상 바른 법을 행하는 것이다. 또 불도를 이

룬다고 함은 항상 마음을 낮추어 참되고 바르게 행동하며 불성을 보는 것이다.

 

 

” 육조 혜능선사가 <육조단경>을 통해 사홍서원의 가르침을 설한 내용이다.

의식은 그 자체로 법문이다. 삼귀의례에서 찬불가, 반야심경, 청법가, 정근,

그리고 사홍서원으로 이어지는 의식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한다면 바로 불교의 기

본 교리를 모두 알게 된다.무의식적이고 습관적으로 법회의식을 따라하지 말고,

하나하나 의미를 되새기며 법회에 참석하기를 바란다.

 

- 불교신문 / 안직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