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싱가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팀원들이 다 건강하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마음 한 구석에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누군가에게는 감사가 넘치는 여행이 되었고
저도 좋은 구경을 많이 하였으니 감사한 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관광보다는 더 깊은 감사, 하늘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선교여행을 다닐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멋지고 화려하고 높은 것을 보며
저도 모르게 세상의 것으로 채워진 마음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말씀의 기쁨을 회복시키는 주님을 기대하며 나아갑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4.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5.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8.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본문 주해)
1절 : “주인 된 이 여러분, 정당하고 공정하게 종들을 대우하십시오. 여러분도 하늘에 주인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새번역)
4장 1절은 3장 22절과 연관된다.
종들이 주께 하듯 주인을 대할 때, 주인 또한 공정하게 종을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기에게도 주님이라는 상전이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이다.
2절 : “기도에 힘을 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새번역)
기도가 빠진 기독교가 교만하고 사변으로 흐를 가능성이 많다면, 말씀이 빠지고 기도만하는 기독교는 무당종교화 될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는 항상 함께 짝을 이루어야 한다.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기도가 아니라, 어떤 기도내용에도 평강으로 응답하시는 주님을 기대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3~4절 : 바울 사도는 자신과 복음 전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 달라고 요청한다.
영적인 세계에서는 선생이 될수록 자신이 부족한 자임을 더욱 알게 된다. 그래서 더욱 기도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무엇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하는가? 전도할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지금 바울 사도가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혔는데 감옥에서 빠져나오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갇혔거나 아니거나 전도할 문 즉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할 문을 열어달라는 것이다. 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5~6절 :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때에 지혜롭게 행하라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들과 접촉을 영 끊을 수는 없는 것이며 그렇다고 그들에게 동화되어서도 안 된다.
지혜롭게 행한다는 것은 세월을 아끼는 것인데 때가 가까웠기 때문에 더욱더 외인에 대하여 기회를 선용해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의 말은 소금으로 맛을 내어 언제나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각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마땅한지를 알아야 합니다.”(6절, 새번역)
말에 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은혜가 넘치는 말은 외인에게도 복음을 전할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퉁명스럽든지 교만해 보이면 아무도 진리에 대하여 물어보지도 않을 것이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5)
7~9절 : 바울 사도는 편지의 끝에 여러 인물을 언급한다.
첫째, 두기고이다. 그는 골로새 교회에 바울 사도의 편지를 들고 간 사람이며, 이 외에도 에베소서와 빌레몬서도 전달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 사람이 바울 사도와 함께 동역하는 에바브로의 사정을 알게 함으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한다.
바울 사도는 두기고를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고 한다.
둘째, 오네시모이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였다가 어떤 손해를 끼치고 도망친 종이다.
그런데 로마의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서 복음을 듣고 역시 신실한 그리스도의 종이 된 자이다. 전에는 도망을 친 노예였으나 이제는 신실한 사람,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자가 된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서 역사하고 계신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나의 묵상)
바울 사도는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된 이들에게 지금 갇혀 있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부탁한다.
감옥에서 풀려나길 기도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하든지 복음이 잘 증거되기를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참 그렇다.
나는 언제나 당장 문제가 되는 일에 마음이 쏠려 그것을 해결해 달라는 기도를 할 때가 많다.
그것은 나와 생각이 다른 주님이 계신다는 것을 자주 잊어버릴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주님을 생각한다면, 상황과 환경에 문제가 있어도 그것을 사용하시는 주님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있다.
어쨌든 바울의 기도 부탁은 성도들의 기도의 교제이다.
교인들 사이에는 입에 발린 말로 기도해 주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상대를 위한 진심의 중보기도도 있다.
성도 사이에 이런 기도를 해 줄 수 있음이 성도의 참 교제 중의 한 가지이겠다.
성도들이 모여서 그저 세상살이 잡담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과 서로를 위한 중보기도야말로 가장 귀한 교제가 아닐까?
선교 여행을 다닐 때면 언제나 묵상을 하고 그 묵상을 나눔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래서 주님 주시는 충만한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하루를 시작했다.
이번 여행은 그것이 없으니 믿는 자로서 대화가 겉도는 느낌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오늘 바울 사도는 이 기도의 교제를 요청하며 또한 골로새 교회에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보내면서 대면하는 교제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지체들의 얼굴을 대하는 기쁨은 멀리 또는 장시간을 떠나보면 안다.
특히 주님의 말씀에서 받는 은혜를 나눌 수 있는 지체들이 있음은 너무도 큰 행복이다.
내 주변에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으로서의 지체들이 많게 하시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자’로 소개될 수 있는 자가 되어 주님 안에서 하나 되어 풍성한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어젯밤 공항에서 가이드에게 교회를 다시 나가기를 권면하고 또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교회만 나간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그렇게 권면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번 여행 중 가장 의미있는 순간이 아니었나를 생각하며, 그와 지속적인 교제의 길을 주님께서 열어주시길 기도했다.
(묵상 기도)
주님,
멋진 여행을 다녀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여행을 통해 진짜 멋진 여행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더 늙기 전에,
예수님을 증거하며 생명을 살리는 여행을 많이 하게 하옵소서.
그 가운데 주님의 말씀을 나누고, 서로 위해 기도해 줌으로
세상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생명의 풍성한 교제를 나누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