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주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그분을 기뻐하며 찬양하게 하옵소서.
오후에 있을 4여신도 모임 위에도 은혜를 부어주옵소서.
그저 잡담하는 형식적 모임이 아니라,
한 걸음씩 주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인도받는 은혜의 시간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오염된 영혼을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오늘도 진리를 알고 기쁨이 넘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미련한 자에게는 영예가 적당하지 아니하니 마치 여름에 눈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 같으니라
2.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
3. 말에게는 채찍이요 나귀에게는 재갈이요 미련한 자의 등에는 막대기니라
4. 미련한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 대답하지 말라 두렵건대 너도 그와 같을까 하노라
5.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
6.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과 해를 받음과 같으니라
7. 저는 자의 다리는 힘 없이 달렸나니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도 그러하니라
8. 미련한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으니라
9.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은 술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 같으니라
10. 장인이 온갖 것을 만들지라도 미련한 자를 고용하는 것은 지나가는 행인을 고용함과 같으니라
11.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12.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본문 주해)
1절 : “미련한 사람에게는 영예가 어울리지 않는다. 이는 마치 여름에 눈이 내리는 것과 같고, 추수 때에 비가 오는 것과 같다.”(새번역)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이다(시14:1, 53:1). 이런 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이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곳-회사든 교회든 국가든-이라면 그야말로 한여름에 눈이 오는 것과 추수 때에 비 오는 것처럼 모든 것을 망치게 된다.
2절 : “근거 없는 저주는 참새가 퍼덕거리고, 제비가 쏜살같이 날아가는 것처럼 상대방에게 미치지 못한다.”(쉬운 성경)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있는 것이 복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서 끊어진 것이 저주이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세상 기준으로 복과 저주를 생각하기에 쓸데없는 저주, 까닭 없는 저주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3절 : “말에게는 채찍, 나귀에게는 재갈, 미련한 사람의 등에는 매가 필요하다.”(새번역)
미련한 자를 다루는 데에는 징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죄인 된 모든 인간은 다 영적인 것과 생명과 진리에 대하여 미련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자는 징계를 하신다. 그 징계를 통하여 주께로 돌이키게 되는 자를 지혜로운 자라고 한다.
4~5절 : “미련한 사람이 어리석은 말을 할 때에는 대답하지 말아라. 너도 그와 같은 사람이 될까 두렵다.
미련한 사람이 어리석은 말을 할 때에는 같은 말로 대응하여 주어라. 그가 지혜로운 체할까 두렵다.”(새번역)
4절과 5절은 서로 모순되는 말씀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미련한 자에게 대답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알라고 한 것이다.
6절 : “미련한 사람을 시켜서 소식을 보내는 것은, 제 발목을 자르거나 폭력을 불러들이는 것과 같다.”(새번역)
중요한 소식(기별, 복음)을 전할 때에 미련한 자에게 보내는 것은 오히려 해를 받는 것이다.
바울도 주님께서 자신을 충성스럽게 여겨 복음을 맡겨주셨다고 한다(딤전1:12). 자신이 충성스러운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셨다는 고백이다.
그러므로 사도들도 복음을 받은 자들 중에 충성된 자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게 하였다(딤후2:2).
7절 : “미련한 사람이 입에 담는 잠언은, 저는 사람의 다리처럼 힘이 없다.”(새번역)
이 말씀은 장애인들을 멸시하는 의미가 아니라, 미련한 자의 입의 잠언이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사용한 것이다.
미련한 자도 자신의 말이 지혜롭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잠언은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라 사람의 말들이기에 아무런 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 자체가 일하시기에, 전하는 사람이 아무리 약하고 보잘것없어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참된 잠언은 사람의 지혜가 아니다.
8절 : “어리석은 자에게 영예를 주는 것은 마치 물매에 돌을 매다는 것과 같다.”(쉬운 성경)
미련한 자에게 어떤 영예로운 이름과 지위를 준다는 것은 돌을 물매에 매는 것과 같다고 한다. 물매는 돌려서 돌을 날려 보내야 하는데 거기에 묶어둔다면 오히려 그 돌이 던지는 사람이나 주변 사람을 헤칠 수 있는 것이다.
9~10절 : “미련한 사람이 입에 담는 잠언은, 술 취한 사람이 손에 쥐고 있는 가시나무와 같다.”(새번역)
“미련한 사람이나 지나가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궁수가 닥치는 대로 사람을 쏘아대는 것과 같다.”(새번역)
미련한 자에게 영예로운 자리를 주거나 미련한 자에게 권력을 주게 되면 그가 정책이라고 내놓는 것이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이 될 수 있다. 마치 술에 취한 자가 손에 든 가시나무를 휘두르는 것과 같고, 닥치는 대로 아무에게나 활을 쏘아대는 궁수와 같다.
11절 :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듯이, 미련한 사람은 어리석은 일을 되풀이한다.”(새번역)
잘못된 것이라고 해서 버린 그 행위를 다시 하는 것을 개에 빗대어 미련한 것이라고 한다.
베드로후서에서 이 잠언의 말씀을 인용하여 쓰는데 그것은 복음을 들은 자들이 거짓 선생들의 미혹을 받아서 다시 옛 더러운 행실로 돌아가는 것을 책망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벧후2:22)
12절 : “너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사람을 보았을 것이나, 그런 사람보다는 오히려 미련한 사람에게 더 희망이 있다.”(새번역)
지금까지 미련하다고 말한 내용들의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희망이 있다고 할 정도로, 자신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는 돌이킬 수 없는 미련한 자라는 말씀이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는 그 어떤 진리의 말씀도 듣지 않는다. 이런 자가 가장 미련한 자라는 것이다.
(나의 묵상)
오늘 본문은 미련한 자의 모습과 그 상태를 열거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상태는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들이고, 이들이야말로 미련한 자 중의 미련한 자라고 말씀한다.(12절)
그런데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이 복음을 잘 안다고 생각하여 더 이상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자들이다.
전자는 하나님의 지혜를 모르니 당연히 자신들의 지혜를 운운할 수밖에 없겠다.
문제는 후자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사람들에게 모든 진리의 말씀을 단번에 꿰뚫어 한번만에 다 알게 하지 않으신 것이 얼마나 은혜인지 모르겠다.
주님의 말씀은 알아갈수록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
하나는 나 자신이 정말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죄인 중의 괴수’라는 바울 사도의 고백의 표현을 나 같은 자가 쓰기에 민망한 마음이 없진 않지만, 어떻게 그런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나는 정말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되어 기뻐할 때가 많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님에 대한 나의 지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전이해는 날마다 무너지거나 새롭게 수정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에 늘 마음문을 열어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과연 그러한가를 알아가야 하는 것이다.
과거에 신앙 생활의 ‘열심’을 단단히 오해하였던 때가 있었다.
교회의 모든 예배와 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헌금을 하고, 사역을 감당하고, 봉사를 하고, 목회자를 선대하고.......
이런 내게 복 주시지 않으면 누구를 복 주시나 생각했었다. 물론 그 복이란 내가 바라고 소원했던 세상 것들이었다.
그런데 말씀을 통해 주님을 알아가면서 이 열심이 주님을 위한 열심이 아니라, 나를 위한 열심인 것을 알게 되었다.
복음을 알고 난 뒤 그 열심의 방향이 주님을 향하게 되고, 십자가를 향하게 된다.
물론 그 동안의 전이해가 아주 소용없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이 있었기에 다음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었고, 또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를 분명히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와 똑같은 과정을 지나고 있는 교우들에게도 말씀을 가지고 분명히 증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말씀 앞에 나아감은 걸핏하면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며 교만해지는 나의 모든 생각을 버리고, 오직 참 지혜이신 주님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위한 것이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4)
(묵상 기도)
주님,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가
날마다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갈망합니다.
주신 은혜를 기뻐하되
늘 십자가에 연합되게 하옵소서.
굳어지고 습관화된 믿음이 아니라
유연하고 자라가는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매일 말씀 앞에 나아감으로
미련한 자를 지혜롭게 하시는 성령님의 손길만을 사모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