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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2일(수)
* 시작 기도
주님...
마지막 때에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144,000명이 시온 산에 섰는데 그들의 이마에 어린 양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이들은 속량을 받아 구원받은 자들로서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않고 순결한 자이며 어린 양을 따라 어디든지 가고 거짓과 흠이 없는 자들입니다(계14:1-5).
이들이 구원받은 것은 자기들의 선한 행위로 인함이 아니요 어린 양의 보혈의 은혜로 인함입니다.
선한 행위로는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자가 없으나 오직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인함은 그들이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것이 바로 주님의 보혈의 옷이요 이를 가리켜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계 19:8).
이 연약하고 부족한 자를 자녀 삼아 주시고 신부로서의 자격이 전혀 없음에도 그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주님의 은혜 앞에 그저 두 손으로 입을 가릴 뿐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이 하루도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벧후 1:12-21
제목 :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성경)이 있습니다.
12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 나의 묵상
성도들이 이 진리를 이미 알고 그 위에 굳건하게 서 있지만, 베드로 사도는 자신이 살아 있을 동안에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이것을 일깨워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미 알려주신 것처럼 자기도 자신이 곧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기가 죽어 이 세상에 없을지라도 성도들이 이 진리를 잊지 않고 잘 생각나도록 하기 위하여 살아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말해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능력과 다시 오실 것을 말하였는데 그것은 교묘하게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그는 예수님의 위엄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영광중에 변화되신 사건을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소리를 이렇게 말한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 음성이 들릴 때에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다.
이 소리는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거룩한 산에서 하늘로부터 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이제 그들 앞에 놓여 있는 가장 확실한 예언의 말씀, 즉 성경은 어두움을 환히 밝혀 주는 빛과 같은데, 이것은 새벽별이 떠올라 비추는 것처럼 그들의 마음을 환히 밝혀줄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풀거나 해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어떤 예언의 말씀도 선지자가 자기 마음대로 쓴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서 쓴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자신이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변화 사건을 예로 들면서까지 자신이 말한 내용들이 거짓이 아닌 사실이며, 그 말씀이 바로 진리임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면서 구약의 선지자들이 쓴 성경을 함부로 해석하거나 대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 성경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쓴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성경은 자신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물론 구약 성경에는 예수님의 이름이 한 번도 거론되지 않지만, 그러나 성경 곳곳에서 예수님을 예표하는 기사와 사건들이 증거되고 있다.
우리는 왜 구약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이다.
구약의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이 세상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구원을 받는 것은 예수님을 오실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1장에서는 구약의 수많은 인물들의 믿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등등...
이들의 믿음은 다름 아니라 오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여기서 바라는 것들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마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 약속은 다름 아니라 구약에서는 오실 그리스도요, 신약에서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이다.
바로 그 오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일컫는 것이다.
그런데 나를 비롯한 오늘날 많은 성도들과 목회자들은 이 말씀을 자신이 소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기도할 때 붙드는 무슨 주문처럼 사용하고 있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기 원하시는 것을 주시도록 구하는 것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주실 때 그것을 받는 것이 나에게 가장 귀하고 복된 것이다.
그런데 말씀 붙들고 기도한다면서 기도할 때 말씀을 인용하는 것은 자칫 말씀을 도둑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오늘 본문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성경은 사사로이 풀지 말라고 했다.
더욱이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기에 사람의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데 말씀을 이용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성경은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하기 위함이라고 했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것에 엄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 앞에서 불경죄를 짓는 것과 다름없다.
(약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그동안 내 기도의 내용 중 대부분이 정욕을 위한 기도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육신의 정욕이 주류를 이루었던 기도, 즉 목회의 성공을 위한 기도, 자식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 달라는 기도, 자녀나 성도들 아프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 성도들 사업에 성공하게 해달라는 기도, 암이나 질병을 고쳐달라는 기도.....
열거하자면 셀 수가 없을 정도다.
기도를 하는 것은 좋은데,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응답이 없을 때가 많았다.
물론 이런 기도가 다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신앙의 정도에 따라서 구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목사의 기도라고 한다면 이런 육신의 정욕을 위하여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여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런 기도를 하고 응답이 없으면 또 응답이 없는 대로 또 포기하고 만다.
‘역시 응답이 없으시군.’ 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응답 받는 기도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한다고 하면서 성도들에게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라고 가르치기도 했다.
이런 처사야 말로 내가 무식해도 어쩜 이렇게 무식할 수가 있는지 모를 정도다.
결국 말씀을 붙들고 기도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대부분 내 뜻이요 나의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것들이다.
그러니 기도의 응답이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응답이 없으면 또 응답해 주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시험에 들기도 한다.
그러면 목사까지 합세해서 함께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런 기도에 사용되는 약방의 감초 같은 구절들이 바로 이것이다.
렘 33:2-3, 빌 4:13, 욥 8:7, 사 41:10, 삼하 7:29 등등...
성경은 역사성과 진리성을 가진다.
성경은 역사와 상관없이 쓰여진 것이 아니라 역사의 특정한 상황 속에서 특정한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따라서 이 말씀이 역사의 어떤 상황 속에서 기록되었는지를 살피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기록된 말씀이 또한 오늘 현재 우리들을 비롯한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진리여야 한다.
그런데 그 역사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아무 말씀이나 나의 상황에 적용시키면 그 말씀은 진리의 말씀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 그동안 말씀을 이용하고 도둑질 했던 죄를 회개한다.
베드로 사도는 신약 성경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예수님과 함께 자신이 경험한 일들이 무수히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구약 성경이 더 확실한 예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 말씀을 날마다 생각나게 하기 위하여 그는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기를 쉬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말씀을 이용하였고 또 성도들에게도 그렇게 이용하도록 가르쳤던 영적으로 아주 악랄한 도둑놈이 아닐 수 없다.
정욕으로 구하는데 말씀을 이용했던 나는 주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자이다.
말씀을 소홀히 여겼으며, 소설책보다 더 하찮게 여겼던 자가 바로 나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처음에는 송이꿀처럼 받아 먹었는데, 나중에는 기름 섞은 과자 맛이라고 하더니 급기야는 박한 식물, 하찮은 식물 취급하면서 쳐다보기도 싫다고 한 것처럼, 내가 바로 그런 자였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불뱀으로 심판하셔서 물린 자마다 다 죽게 만드셨다.
그런 그들이 죽는다고 아우성칠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높이 달고 그것을 보는 자마다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민 21:8-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나 역시 말씀에 대한 불신앙으로 날마다 먹고 마셔야 하는 그 말씀을 하찮게 여겨 내 맘대로 이용하고 때로는 세상의 지식을 전해주는 그런 책보다 못한 것으로 여겨 읽기를 귀찮아하기도 하였다.
그런 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내가 바로 불뱀으로 인하여 죽어야 할 자이다.
주의 심판은 공의로 내게 임하였다.
그러나 그 심판은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세워서 살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었다.
불뱀으로 죽어가던 자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 불뱀을 바라보므로 살게 된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제 매일 이 말씀을 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이 말씀은 날마다 내게 영의 양식을 공급하는 일용할 만나이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께 나아갈 때 성령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감당하길 원한다.
살리는 것은 영이기에 항상 성령 안에서 말씀을 먹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 뜻대로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나의 기도는 오직 한 가지다.
“내가 원하는 것은 없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주십시오.”
주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만이 나를 살리는 것임을 알기에 이제 더 이상 정욕으로 구하는 기도를 할 수 없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주님이 주신 진리의 복음으로 교제와 사귐을 가질 때 누리는 기쁨은 내게 양약이 된다.
이 기쁨을 누가 알랴?
하늘의 기쁨을 서로 더 많이 알 수 있도록 이 복음을 전하여 기쁨의 풍성함이 내 안에, 그리고 우리 생명의 공동체, 영생의 공동체 안에 충만하기를 기도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십니다.
베드로 사도 시대는 구약 성경만 완성되었어도 그 말씀이 확실한 예언의 말씀임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증거하는 신약 성경이 완성되어 그 말씀을 날마다 먹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구약의 성도들이나 초대교회 성도들보다 영적 복을 많이 받았음에도 그것이 복인 줄 몰랐던 이 우매한 종을 용서하여 주소서.
그리고 이제 주님이 주신 참된 복을 날마다 만나로 먹어 나의 영이 주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저는 말씀을 이용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던 자였습니다.
그런 제가 이제 복음을 통하여 주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주의 뜻을 알게 하셨사오니 날마다 그 말씀으로 살게 하시고 나의 경험이나 꿈을 이야기 하는 자 되지 않게 하소서.
완성된 계시인 주의 말씀만이 나를 살리는 진리의 복음임을 믿습니다.
그 말씀과 함께 오늘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