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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자유롭게 글쓰기 日本の古代船
자이수 추천 0 조회 265 13.08.03 15:18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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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3.08.03 19:53

    네 그렇습니다

  • 작성자 13.08.04 09:18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시기의 <백제>와 <왜>는 <백잔>과<이잔>, 그리고 <온조백제>와 <구태백제>로 나누기도 합니다.
    제가 <왜>라고 쓴 것은 광개토왕릉비에 <왜>라고 쓰여있기 때문인데,
    이로인하여 <왜>라는 용어자체가 이미 오염된지 오래이이고 <왜>라는 실체가 끊임없이 변하며 왜의 역사적 종주권이 일본이라 의식적 무의식적 세뇌를 불러오고 역사적 왜곡을 시킬 수다고 하신 말씀에 참으로 동감합니다. 사실 <왜>가 부여에서 왔기때문에 <왜>보다는 <부여>가 더 적합한 명칭으로 보입니다.
    이로 인하여 유감이라하시니 이후의 글에서는 <왜>의 명칭을 <부여>로 고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13.08.05 13:56

    당시 일본이 바다를 건너오기 위한 대규모 선박건조 기술이 없었던 것으로 있고, 대개 우리나라의 선박을 수입하거나,(이 경우 쿼터제?가 있어 수량제한이 있음) 훔치거나, 우리와 공모한 경우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광개토대왕때 고구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던 일본계 임나인들은 남당유고에 의하면 백제와 공모하여 해마다 유민들을 받아들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던 일본출신 임나인들이 일본 조정의 명령을 들을 것인가 독립화되었는가를 연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 같습니다.

  • 13.08.05 14:00

    남당유고의 내용에서 우리학계의 정설이 된 것이 여럿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라는 내물왕 이전, 백제는 고이왕 이전을 믿을 수 없다는 이병도의 주장보다도 박창화의 주장이 앞서 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기록과 광개토대왕릉비의 기년의 착오 역시도 남당은 설명하고 있으니 그는 시대를 앞서간 대학자?(소설가?)입니다.

  • 작성자 13.08.05 20:52

    남당유고에 혹시 광개토왕비문과 관련한 내용이 들어 있나요?
    있다면 원문과 함꼐 소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13.08.06 03:53

    <왜>의 명칭을 <부여>로 하다니. 무슨 가당치도 않은 말씀을ㅎ. 백제인들이 왜(현 일본)를 분국으로 다스리고 문물 전파도 많이 하고 왜로 많이 건너갔지만, 부여는 우리 고리(코리)민족의 부여일 뿐. 왜와는 무관합니다. 부여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한국의 고유 지명이자, 고대 국명이며, 북부부여였던 고구리(고리), 남부부여였던 백제의 모국입니다.

  • 작성자 13.08.06 07:28

    비문에 적혀있는 왜는 일본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비문을 또다른 시각으로 해석해 보았는데, 놀랍게도 왜가 백제와 신라 가야까지 신민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는 왜가 부여가 아니고는 해석하기 어려운 점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작성자 13.08.06 07:31

    조세핀님 말씀대로 백제인들이 현 일본를 분국으로 다스리고 문물 전파도 많이 하고 왜로 많이 건너갔다고 하신 말씀도 맞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는 <왜> 즉 <부여>가 일본으로 건너간 400년경 이후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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