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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죄는 불법, 곧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반대하고 거부하고 어기는 것을 가리킨다.
1)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본문은 영지주의자들을 염두에 둔 진술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과 분리하여 자신들은 죄가 없으며 불법을 행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요한은 죄를 짓는 사람은 모두가 예외 없이 불법을 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 영지주의의 거짓 가르침을 배격하고 있다.
2) 죄는 불법이라.
여기서 '불법'(아노미안)은 문자적으로 '율법을 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요한이 '율법'(노모스)이란 용어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본문의 '불법'은 율법을 범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배반하려는 인간의 본성적인 불법을 의미한다(Barker).
요한은 자기 자신들이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영지주의자들이 사실상 하나님을 배반하는 무서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3:5 -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없이 하시기 위해서이었다. 그의 성육신(成肉身), 즉 말씀이 사람의 본질을 취하여 사람이 되신 목적은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하시기 위함이었다.
그에게는 죄가 없으셨다.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가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 그러므로 그가 우리의 죄를 없이 하기 위해 오셔서 대속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을진대, 우리는 더 이상 범죄치 말아야 한다.
1)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나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죄'(하마르티아스)는 복수형이다. 이는 죄악 된 모든 행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Smalley, Stott).
'나타내신'(에파네로데)는 부정과거 시상이다. 이것은 과거의 특별한 역사적 사건을 나타내는 것으로 예수의 성육신이 역사적 사건임을 암시함과 동시에 이러한 역사적인 실재 사건을 기반으로 해서 예수의 '죄를 없애는 사역'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셨다.
* 요 1:29 -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모든 죄를 친히 자기 몸에 짊어지심으로써 우리 죄를 없이 하셨다(Stott).
* 사 53:11,12 - ⑪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⑫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 히 9:28 -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 벧전 2:24 -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죄가 없다'는 말씀은 3절의 '깨끗하심'과 2:29. 3:7의 '의로우심'과 동일한 의미이다. 예수의 무죄성은 초대 교회의 케리그마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신약 성경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 고후 5:21 -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히 4:15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 벧전 1:19 -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한편 본문에서 사용된 헬라어 동사는 '에스틴'(~이다)으로 현재형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지상 사역 기간 동안만 죄로부터 자유로우셨던 것이 아니라 영원히 무죄하심을 암시한다(Smalley).
3:6 -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 하지 아니하나니 범죄 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 하지(하마르타네이. 계속 범죄 하지) 아니하나니 범죄 하는(하마르타논. 계속 범죄 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주 안에 거한다면 우리는 죄를 범치 않아야 한다. 원문에 ‘범죄 하지,’ ‘범죄 하는’이라는 단어는 다 현재시제이다.
신약성경의 원어인 헬라어에서 현재시제는 계속적 행위를 의미한다. 즉 이 단어는 구원받은 자가 계속 범죄하고 계속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뜻을 가진다(NIV).
만일 누가 계속 죄 가운데 머물러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일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법적으로, 이론적으로만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또한 실제적으로 구원받은 것이다.
주께서 주신 구원의 새 생명은 거룩한 성향이다. 예수님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실제로 행동과 삶에 변화가 일어난다.
본문은 1:8,10의 진술과 모순되는 듯이 보인다. 이에 대해 네 가지 견해가 있다.
Ⓐ 주 안에 거하는 자의 인격에 주목하여 그리스도인은 고의적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아니하는 것으로 해석한다(Wesley).
Ⓑ 요한이 신자의 삶의 원리를 선포한 것으로 보고 '범죄치 아니함'을 신자의 이상적 특징으로 해석한다(Alford, Calvin).
Ⓒ 습관적이고 지속적인 범죄를 저지르지 아니하는 것으로 해석된다(Lange, Smith, Barker, Westcott, Stott).
Ⓓ 주 안에 거하는 자는 원리상 이미 범죄 하지 않는 자이지만 실제상 아직 범죄 하는 자라고 본다. 즉 그리스도인이 현재 긴장과 역설의 관계 속에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Smalley, Schna ckenburg).
네 견해 중 마지막 두 견해가 타당성을 지닌다. 세 번째 견해의 경우 '범죄 하다'(하마르타네이)는 현재형으로서 동작의 습관적이고 지속적인 상태를 묘사해 주기 때문이며, 네 번째 견해의 경우 루터(Luther)가 '그리스도인은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라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주 안에 거하는 자는 범죄치 아니하는 동시에 범죄 한다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Smalley).
앞 절에서 진술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죄와 상관없는 깨끗한 분이시기에 그분 안에 거하는 자는 죄와 상관없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만약 죄를 범한다면 그는 회개하여 용서함을 받고 불법의 생활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그가 지속적이며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향하기보다 죄를 좋아하며 죄 안에 거하길 즐겨한다면 그는 완전히 깨끗하신 그리스도를 알거나 본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알지도, 보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Stott, Barker).
* 요 5:37,38 - (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 요 8:19 -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 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 요 14:7,9 - ⑦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⑨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 요삼 1:11 -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본문은 우리가 죄를 범치 말아야 한다고 교훈한다. 우리가 죄를 범치 말아야 할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장차 영광스런 주의 형상을 본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 예수님의 재림 때 일어날 영광스런 부활을 소망하는 자일진대 우리는 모든 죄와 불결로부터 우리 자신을 깨끗케 해야 한다.
또 우리가 죄를 범치 말아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주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이루신 일이 바로 우리의 죄를 없애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우리의 더러운 죄 때문에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을 죽으셨다. 그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깨끗케 하는 대속(代贖)의 죽음이셨다.
우리가 주를 믿고 구원을 받아 주 안에 거하는 자가 되었으므로, 우리는 계속 죄 가운데 머물 수가 없는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결코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마땅히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의와 거룩을 행해야 한다.
3:7 -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성도는 누구에게든지 미혹 받지 말아야 한다. 교회 안팎에는 성도를 속이고 잘못 인도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잘못된 교훈을 하고 잘못된 행동의 본을 보인다. 그들은 죄를 짓는 자들이며 죄 짓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들이다. 그러나 의인은 의를 행하고 의를 행하는 자는 의롭지만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
'마귀에게 속한다'(에크 투 디아볼루 에스틴)는 '마귀에게서 난 자이다'라는 뜻이다. 그것은 죄를 짓는 자의 근원을 나타낸다.
마귀는 처음부터 죄를 범한 자요 인간을 죄를 범케 한 자이다.
* 요 8:44 -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마귀가 인간을 속여 죄를 범케 함으로 죽게 만들었으니 그것이 살인인 것이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서 난 자이며 마귀에게 속한 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이라는 말은 성육신(成肉身)을 가리킨다. 태초부터 계셨던 아들, 신성을 가지셨던 그가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즉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의 본질을 취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뱀에게 '내가 너[뱀=마귀]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였었다.(창 3:15).
그것은 메시아의 오심과 하실 일을 보인 것이었다.
1)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본문은 수신자 내에 있던 영지주의를 전파하는 거짓 교사들을 염두에 둔 진술이다. 요한 당시의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비밀스런 지식, 즉 영지(靈智)를 깨닫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였으며, 영지를 깨달은 자는 육신에서 자유로워져 도덕적인 방종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영지주의자들의 신학과 윤리의 가르침은 요한 당시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미혹시켰다. 그래서 요한은 사도들이 전하여 준 복음 이외의 것을 가지고 미혹하는 자들을 멀리하며, 거절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2)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본문은 2:29의 반복이다. 여기서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의로움의 동기와 근거를 나타낸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서 의로워질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가능함을 시사한다. 따라서 본문은 의를 행함이 조건이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 자로서 그의 의로움을 행위로 보여 주어야 함을 의미한다(Br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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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