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죽음
원제 : Love and Death
1975년 미국영화
각본, 감독 : 우디 알렌
출연 : 우디 알렌, 다이안 키튼, 제시카 하퍼
올가 게오르크 피코트, 해롤드 굴드
제임스 톨캔
'사랑과 죽음'은 우디 알렌의 초기작에 해당하는 영화입니다. 즉 '애니 홀' 이전의 작품이지요. 우디 알렌의 초기 작품들은 재미난 슬랩스틱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다가 '애니 홀'과 '맨하탄' '한나와 그의 자매들' 을 통하여 멏 차례 업그레이드 되면서 각본의 질이 높아지고 스랩스틱 보다는 재치있고 기발한 각본의 수준으로 승부를 보는 감독이 되었습니다. 물론 초기 작품에서도 특유의 수다스러움은 넘쳤죠. '안경쓴 채플린' 이라고 불리웠던 그가 채플린과 상이하게 다른 점은 수다스럽다는 점입니다. 그는 채플린식 슬랩스틱과 자신의 방식인 수다스러움을 결합시켜서 코미디 영화를 연출했는데 후기로 갈수록 슬랩스틱은 사라지고 수다스러움은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면 초기 작품들은 '보는 재미'가 많이 높은 반면, 후기의 작품들은 수준은 더 높아졌지만 편안히 보는 즐거움은 좀 낮아졌지요. '애니 홀' '맨하탄' '한나와 그의 자매들' 같은 영화가 크게 전환점이 된 것입니다.
'사랑과 영혼'은 처음부터 굉장히 수다스러운 영화지만 엉뚱한 슬랩스틱도 많습니다. 쌩뚱맞게도 평생 뉴요커를 지향하고 살아온 우디 알렌 영화중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내용입니다. 그것도 나폴레옹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지요. 나폴레옹에 맞서는 러시아 군인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영화입니다. 우디 알렌은 소심한 겁쟁이지만 나폴레옹에 맞서는 민중의 봉기 때문에 강제로 군에 끌려가게 되는 인물입니다. 그런 와중에 보여지는 그의 여성편력과 소심함, 엉뚱함, 그리고 운이 좋게도 삶이 술술 풀려나가기는 내용입니다.
러시아 농민의 아들 보리스(우디 알렌)는 사촌인 소냐(다이안 키튼)를 사랑하지만 소냐에게 보리스는 그냥 편안한 남사친일 뿐입니다. 소냐는 보리스의 형 이반을 오히려 사랑했지요. 그런데 이반이 다른 여자와 결혼을 선언하자 소냐는 홧김에 마음에도 없는 청어장수와 결혼합니다. 나폴레옹의 침공에 맞서 민중들이 궐기하여 참전을 하고 보리스는 부모가 떠밀어서 억지로 군대에 끌려가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문관 병사가 됩니다. 그런데 운이 좋아서 공을 세우고 영웅이 되어서 돌아오죠. 이후 이런저런 이야기가 펼쳐지고 백작부인과 놀아나다가 결투신청을 받는데 또 운이 좋아서 살아나고, 그렇게 삶의 행운이 계속되면서 결국 미망인이 된 소냐와도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겁많고 소심한 보리스라는 루저가 용케 계속되는 행운을 만나 삶이 술술 풀리는 내용입니다. 억지로 끌려간 전쟁터에서 부대가 몰살했지만 용케도 살아남았고(제대로 싸우지 않고 숨어다녔으니) 대포에 숨었다가 본의 아니게 공을 세워 영웅이 되고 유부녀 귀족과 놀아나다 죽을 뻔 하지만 용케 목숨을 건지고 짝사랑하던 소냐와 결국 결혼하고..... 하지만 그냥 이렇게 행복하게 살면 되는데 보리스와 소냐 부부는 엉뚱하게도 나폴레옹 암살계획을 시도합니다. 물론 성공할리가 없죠. 실존 인물인 나폴레옹이 암살당하는 것으로 하면 세계 역사가 바뀌니까요. 뭐 그래서 결국 붙잡혀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입니다.
단순히 스토리로 표현하는게 의미가 없는, 익살스러운 내용이 가득합니다. 장면장면 풍자와 해학, 위트가 넘칩니다. 수다스러움도 넘치고요. 마치 관객을 향해 말을 하듯이 스크린 정면을 응시하며 이야기하는 장면도 많고 위기 상황에서 겪는 내용도 아주 코믹하게 다루었습니다. 다만 너무 수다스럽다 보니 횡설수설 장황한 수다가 별 의미도 없이 불필요하게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디 알렌은 유태인 혈통인데 유태인 차별을 은근 비꼬는 듯한 대사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대놓고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제 7의 봉인'을 오마쥬한 작품입니다. 끝장면은 아주 대놓고 흉내내고 있고, 죽음의 신을 만나는 장면이 초반에 나오는 등 그 영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걸 서슴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죽음의 신도 흰 색 천으로 꾸미고 진지함은 1도 없이 코믹스럽게 변형한 것이지요. 평소 잉그마르 베르히만이나 페데리코 펠리니를 존경한 우디 알렌의 기질이 드러난 영화인데 펠리니의 대표작 '8과 1/2'을 암시하는 대사도 등장합니다. 우디 알렌의 잉그마르 베르히만에 대한 존경은 '처녀의 샘' '침묵' '페르소나' '늑대의 시간' '수치' 등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여러 작품에서 촬영을 담당한 스벤 닉비스트를 나중에 자신의 감독작품 '또 다른 여인' '범죄와 비행' 등에서 기용하는 것으로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사랑과 죽음'의 촬영은 다른 사람이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초기작 중 스랩스틱적 재미가 풍부했던 '돈을 갖고 튀어라' '바나나' '슬리퍼' 등에 비해서는 재미나 완성도가 근소하게 못 미치는 작품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이야기꾼으로서의 우디 알렌의 기질은 그 영화들보다 더 발전한 작품이었습니다. 그가 이야기꾼 감독으로서 크게 점프하기 직전의 작품이고 초기의 슬랩스틱 수작과 중후기의 우수한 각본을 가진 대표작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던 작품이라고 볼 수 있지요. 펠리니나 베르히만 등의 거장에 대한 존경도 포함해서 단순한 웃기고 비트는 영화를 넘어 본인 자체도 대표적인 뉴요커의 거장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기초를 다져간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의미있는 작품입니다. 러시아 배경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자체가 그의 영화이력에서 흥미로운 부분이지요.
평점 : ★★★ (4개 만점)
ps1 : 우디 알렌의 많은 영화에서 성에 대한 해학적 묘사가 많은데 실제 그는 사생활에서도 여성 편력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그래서 구설에 오른 경우도 많지요.
ps2 : 다이안 키튼은 우디 알렌의 초기 작품들에 많이 출연한 배우입니다. 우디 알렌이 키운 대표적인 여배우지요. '애니 홀'은 아카데미 주연상을 안겨주기도 했고요.
[출처] 사랑과 죽음 (Love and Death, 75년) 우디 알렌 초기 해학극|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