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창시자 예수 그리스도.(2)
중보자는 당대의 특성과 삶의 질서를 대변한다.
이는 중보자에게 속한 백성과 세상의 어떠함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따라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언약은 중보자를 통한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계약이다.
언약의 내용은 언약 당사자의 책무를 담고 있다.
여호와와 그의 백성이 행해야 할 역할을 규정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하나님으로서 행해야 할 바와 그들이 여호와의 백성으로서의 행해야 할 바를 규정한다.
그런데 언약은 수시로 갱신된다.
언약의 갱신은 이전 언약으로의 회귀나 반복이 아니다.
이는 언약의 내용을 발전적으로 수정하고 보완하는 갱신이다.
그리스도 언약을 향하여 발전적으로 나아가는 갱신인 것이다.
이러한 언약의 갱신에 따라 하나님 사역의 내용이 달라진다.
따라서 언약의 구속력은 과거에로 소급되지 않는다.
모세언약은 아브라함 시대에로 소급되지 않으며
그리스도 언약의 효력은 구약시대에 적용되지 않는다.
언약의 효력은 언약을 체결한 당사자와 그 이후 세대에 미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고 말씀하신다.(창17:7)
언약의 효력은 언제까지 유지되는가?
언약이 갱신될 때까지 지속된다.
아브라함 언약은 모세 때까지 미치고 모세언약은 그리스도 때까지 지속된다.
왜냐하면 언약은 하나님의 통치질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으로 당대와 그 이후의 세상을 경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옛 언약의 목표는 그리스도 언약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언약은 하늘의 질서를 도입하는 언약이기 때문이다.
첫 창조를 하늘의 질서로 온전케 하기 때문이다.
땅에 속한 옛 경륜을 하늘에 속한 영원한 경륜으로 완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약의 역사는 이어달리기와 같다.
각 시대의 중보자들은 계주의 주자들이다.
그들은 바톤을 주고받으면서 결승점을 향하여 달린다.
결승점인 그리스도 언약을 향하여 달리는 것이다.
주자들이 주고받는 바톤은 무엇인가?
각 시대의 언약이다.
구약에서의 결승점은 모세의 언약이다.
이는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 언약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모세를 통해서 나라가 설립되기 때문이다.
아담 이후의 옛 경륜은 모세를 통해서 나라가 설립함에서 종착점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다윗왕국은 옛 경륜의 열매이다.
모세의 율법은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 시대의 경륜이 발전적으로 진행되어서 구체화된 것이다.
이는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에 대한 경륜이 문서로 기록된 것이다.
문서로 기록된다는 것은 죄로 인한 오염과 훼손을 방지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는 기록된 대로 시행하겠다는 확정이며 선언이다.
개혁신학(개신교 신학)은 율법이 하나님의 지고한 구원의 기준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여 율법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언약은 하나님께서 각 시대 중보자와 세상에서 체결하신 일이다.
시내산 언약이 체결되는 과정을 살펴보라.
이는 부동산을 매매하는 과정과 같다.
중개인은 모세이며 계약 당사자는 여호와와 그의 백성이다.
중개인은 매도자의 물건을 매수자에게 설명한다.
이를 매수자가 수납하면 이를 문서로 작성한다.
문서로 기록된 내용을 계약 당사자에게 다시 확인하게 한 후에 인감도장으로 서명하고 날인한다.
이처럼 계약에 성사되면 서로 간에 축하의 악수를 한다.
이는 계약이 성사됨을 인한 기쁨의 잔치이다.
이처럼 모세는 여호와와 이스라엘 간의 계약을 체결한다.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들에게 고한다.(출24:3)
이스라엘은 한 소리로 응답하여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라고 수납한다.(출24:3)
이에 모세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산 아래에 단을 쌓고 제물의 피를 단에 뿌린다.(출24:6)
이는 먼저 여호와께서 계약서에 인감도장으로 날인하는 일이다.
이어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기록된 언약서를 낭독한다.
이에 그들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라고 수납한다.(출24:7)
그러자 모세는 남은 피를 백성들에게 뿌리며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운 언약의 피니라.”
고 선언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인감도장을 날인하는 행위이다.
이처럼 계약이 성사된 후에는 기쁨의 악수를 한다.
계약이 성사됨을 인하여 잔치가 배설되는 것이다.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이 산에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먹고 마신다.(출24:9-11)
이처럼 옛 경륜은 아담에게서 시작되어서 노아와 아브라함을 거친 후에 모세에게서 완성된다.
옛 경륜은 율법의 나라가 설립됨에서 완성이 된다.
그러나 옛 경륜은 죄 아래에서 시행된 경륜이다.
옛 백성의 완악함에 조절되어 시행된 경륜이다.
옛 백성의 종과 어린 아이와 같음에 맞춰진 경륜이다.
휘장 밖 세상에 세워진 종과 같음에,
휘장 밖 죄 아래에 세워진 종과 같음에 맞춰진 경륜이다.
따라서 구원역사는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는 것과 같다.
부모는 자녀가 태어나면 그가 성장하는 과정에 맞추어서,
어린 자녀의 수준과 눈높이에 맞추어서 대화하며 교제한다.
이러한 양육 기간은 자녀가 장성한 자녀로 성장함을 목표로 한다.
부모 자신을 온전히 대리하는 장성한 자녀가 될 때까지 진행된다.
따라서 구약시대는 종이며 어린아이를 양육하는 기간이다.
아담이나 노아, 아브라함과 모세는 휘장 밖에 세워진 종과 어린아이이다.
아브라함과 다윗, 솔로몬의 아내가 몇이던가?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칭하신다.
이는 그들이 안방에 들어오지 못하는 종이나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종과 어린아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옛 백성을 종과 어린아이로 대하신다.
따라서 모세의 율법은 종과 어린아이의 도리이다.
모세의 율법은 완성된 하나님의 경륜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온전한 뜻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온전케 됨을 바라보고 진행되는 과정에 있는 경륜이다.
따라서 옛적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다.(히1:1)
옛 경륜의 열매는 모세 시대이다.
이는 아담과 노아, 족장 시대의 종착점이다.
따라서 아담과 노아, 족장들에 대한 경륜의 열매가 모세율법이다.
모세 이전의 경륜이 발전하여 세부적으로 나타남이다.
구약시대는 휘장의 장벽이 주어진 시대이다.
성전제도를 생각해 보라.
지성소는 여호와의 처소이다.
이는 사도들의 설명대로 하늘의 영역이다.
그러나 지성소 밖은 인간의 영역이다.
이는 죄가 지배하는 세상이며 땅의 영역이다.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드리워져 있다.
이는 죄로 인한 장벽이다.
따라서 구약의 여호와는 휘장으로 가리우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휘장을 두시고 세상을 대하신다.
따라서 하나님 안의 영원한 경륜은 구약에서는 감춰진 비밀이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온전한 뜻도 봉인된 비밀이다.
이러한 휘장의 장벽으로 인하여 휘장 밖의 세상,
이스라엘이 몸담고 살아가는 세상에는 여러 장벽과 간격이 존재한다.
날과 땅, 사람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여러 장벽이 존재한다.
날에는 거룩한 날과 그렇지 않은 등급이,
땅에는 지성소와 성소, 예루살렘과 유대 땅, 이방 땅의 순서로 거룩의 차등이,
사람 사이에는 대제사장과 제사장, 레위인과 유대인, 이방인의 순서로 거룩의 차등이 존재한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성소에 들어가지 못하며
이방인들은 성소의 출입이 금지된다.
만일 무할례자가 성소에 들어간다면 죽임을 당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을 침범하고 더럽혔기 때문이다.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율법 아래에 보내신다.
이는 휘장 밖의 영역, 곧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에 하나님께서 오셨다는 말이다.
휘장의 장벽이 없는 관계로 오셨다는 말이다.
이는 모세율법 아래에서는 생각할 수가 없는 일이다.
유대인들로서는 이해될 수 없는 획기적인 사건이다.
모세율법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하나님 조치이다.
이는 모세가 제시한 성전제도와 율법 아래의 하나님 임재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일이다.
히브리서는 모세율법이 육체만을 상관하는 육체의 예법이라고 말한다.(히7:16, 9:10)
따라서 모세제도에 의거한 정결의식은 온전한 정결을 주지 못한다.
율법이 명한 바를 따라 물과 피의 씻음은 온전한 정결을 제공하지 못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겉만을 씻는 정결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율법을 따라 이스라엘과 교제하신 것이다.
따라서 모세제도는 이스라엘을 율법 아래의 교제에로 부르심이다.
종과 어린아이의 수준에 합당한 교제에로 부르심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종말에 보내신 아들이다.
그는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다.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은 아버지의 뜻에 의거한 일이다.
예수의 말은 하나님의 음성이고 예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통해서
율법 아래에서는 생각할 수가 없는 획기적인 일을 시행하신다.
율법 아래에서는 결코 누릴 수가 없는 교제를 행하신다.
예수께 나아오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옴이다.
휘장의 가리움이 없는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께 나아옴이다.
예수와 교제하는 일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고 교제하는 생명을 누리는 일이다.
따라서 신약의 세례는 복음의 질서에 합당한 교제에로의 씻음이다.
세례는 말씀의 유형적인 선포이며 복음의 질서에 합당한 자로 씻음이다.
세례의 약속과 은혜는 성찬을 통해서 누린다.
이는 종말의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옮겨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례와 성찬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의 교제에 참여한다.
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