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3편(by Nell)
글쓴이 수문
"······."
"······."
기묘한 침묵이 방안에 감돈다. 얀 씨도, 제피러스라는 이름의 저 남자도, 할 말을 잃은 듯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당신이 바로 그 길드 장이 보낸 정령사라구?"
조용히 말문을 연 남자는 차갑게 가라앉은 서늘한 눈으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내게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그 새까만 눈동자가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런 그의 태도가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내 입에서는 저절로 차가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지금 날 의심하는 건가요? 엘프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글쎄, 나는 한번도 엘프를 만난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 걸?"
"···뭐···!"
이 남자가 정말···!!
간신히 가라앉힌 화가 다시금 치밀어 올라, 내 스스로도 느낄 만큼 얼굴에 핏기가 확 올라왔다. 화를 내든 말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태연하게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는 그가 정말이지 밉살스럽기 그지없다. 아무리 인간을 미워하는 나라도 이렇게까지 감정적으로 인간을 대한 적은 없었는데, 대체 뭐가 잘못인 걸까. 설마··· 이 남자,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일부러 그러는 건가?
"자자, 두 사람 다 이제 그만해요."
갑자기 얀이 어색하게 웃으며 남자를 노려보고 있던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와 나의 팽팽한 신경전을 내내 옆에서 지켜 보다 결국 참지 못하고 나선 것이다.
"샤이, 당신이 이해해요. 원래 우리 대장이 좀 의심이 많은 성격이거든요."
순간 담배를 깊이 빨며 막 연기를 내뱉던 남자가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를 살짝 노려본다. 잠시 움찔하긴 했지만, 그녀는 그것에 기죽지 않고 오히려 책망하는 시선을 주며 남자의 앞에서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았다.
"대장도 할 말 없어! 이건 대장이 먼저 잘못한 거야. 대체 일주일이나 기다려서 간신히 얻은 정령사한테 왜 자꾸 시비를 거는 거야?! 그것도 죄 없는 엘프 아가씨한테! 거기다 대장이 평소에 그렇게 만나고 싶어하던······."
"······?"
응? 평소에 만나고··· 싶어하던···?
퍼뜩 들려온 이상한 내용에 저절로 관심이 쏠려 귀를 기울이는데, 움찔한 남자가 할 수 없다는 듯 푸욱 한숨을 내쉬며 더 이상은 듣기 싫다는 듯, 그녀의 말을 잘라 버렸다.
"아아, 알았어, 알았다구. 다 내 잘못이고 내가 나쁜 놈이니까 이제 그 잔소리 좀 그만해. 귀가 따갑다구."
문득, 가볍게 인상을 쓰며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그를 지켜보자니 갑자기 누군가가 겹쳐 떠오른다. 눈가에 이슬을 잔뜩 머금은 채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끄집어내려 무던히도 노력하던······.
벌컥-
"어어, 대장. 여기 있었네. 난 또 어디 갔··· 어어?"
갑자기 노크도 없이 문을 열어젖힌 덩치 큰 남자가 성큼 안으로 들어서려다 말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생각지도 않던 낯선 방문객, 그것도 보기 드문 엘프라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
"에, 엘프···?!"
그리고는 당황한 탓인지, 그대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입구를 가로막고 어정쩡하게 서 있다. 그 자의 굵고 커다란 어깨 너머로 또 다른 남자의 얼굴도 얼핏 보였다. 다섯인가··· 모두 일행인 모양이군.
"···일단은·······."
다섯 명이 모인 와중에도 누구 한 사람 입을 열지 않는 묘한 분위기 속에서 그가 입을 떼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밤이 꽤 깊었으니, 자세한 얘기는 내일 하도록 하지. 그리고 당신은 얀과 같은 방을 쓰도록 해."
"좋아요."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까만 눈동자가 가만히 나를 응시한다. 그것도 그 아이와 너무나 닮은 눈으로.
나로 하여금 엘프의 축복을 내리게 할 정도로 진한 그리움의 감정을 흘렸던 그는,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의 문을 단단히 닫은 채로 휙 돌아서서 좀 전의 문간에 서 있던 일행들과 함께 말없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
그런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대체 누굴 그토록 그리워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동안 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잠이 오지 않는다.
이미 하늘에 별이 총총 뜬지 오래인 깊은 시각, 그녀-얀-는 벌써 잠든 지 오래이건만 나는 어떻게든 자기 위해 억지로 이불 속에 몸을 묻어도 오히려 정신만 또렷해질 뿐이었다.
"휴우······."
결국 몇 번씩 몸을 뒤척이다 잠들기를 포기해 버린 나는, 바로 옆에 누워있는 얀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곤 침대를 빠져나와 창가에 다가섰다.
덜컥-
엉성하게 덧 대놓은 나무창을 열자, 차갑게 식은 밤바람이 들어와 머리칼을 쓸고 지나간다. 그 바람을 타고 방안으로 들어온 몇몇 실프들이 내게 친근감을 느끼고는 금새 주위로 모여들었다. 그러더니 하나 둘씩 내 어깨며 머리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동자가 없는 진한 초록빛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쿡······."
엄지손톱 만한 작은 얼굴에 3분의 2나 차지하는 커다란 눈으로 연신 깜빡이는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내 감정에 곧바로 동화된 실프들이 곧 환한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위로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그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바람을 일으키는 정도의 힘 밖에 발휘하지 못해 인간에게서는 정령 취급도 받지 못하는 가엾은 친구들이었지만, 그 역시 자연의 일부임에는 틀림없는 것. 때문에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바람 뿐, 엄지손가락만큼도 안 되는 그 작은 몸으로 날개 짓을 하며 끊임없이 바람을 일으키는 그들을 위해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인간이 정령과 계약을 맺고 마나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들을 자신의 뜻대로 부리는 것과 달리, 엘프는 자연과 하나가 되기 위해 눈을 감고 그들의 존재를 느낀다. 즉, 정령-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그들과 하나가 될수록 더더욱 친화력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저 인간들이 술에 취하듯 나도 바람에 취하고 싶었다.
쏴아아-
그런 생각에 가만히 눈을 감자 제 1의 감각, 시야가 차단된 대신에 느껴지는 다른 감각들이 깨어나 내게 바람의 존재를 알려 온다. ···바람의 냄새와 바람의 느낌, 바람의 촉감, 그리고 바람의 소리. 내 온 몸에 휘감겨 나와 함께 노래하는 실프, 바람이여······.
"샤이···?"
흠칫-
그러나··· 그들과 오랜만에 한 몸이 되어 바람을 노래한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나를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아마도 그녀일 것으로 짐작되지만-곧바로 바람과의 공명을 중단하고 눈을 뜨자, 잠시나마 나의 일부가 되어 주었던 실프들이 깜짝 놀라 열린 창을 통해 황급히 달아나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어느새 잠에서 깼는지 몸을 반쯤 일으킨 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나는 잠시 그녀의 존재를 잊고 있던 자신을 탓하며, 내 곁의 바람이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해 그저 잔잔한 아쉬움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오늘 따라 바람이 좀 세게 부는 것 같아서."
스스로도 어색하다고 생각되는 궁색한 변명과 함께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나는 활짝 열어 놓았던 창문을 닫아 버렸다.
덜컥-
"통성명부터 하지."
아침 식사를 끝낸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 이윽고 자리를 잡자, 그런 그들을 한 차례 둘러보고도 잠시 말이 없던 그는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무엇 때문인지 슬쩍 내 눈치를 봤지만, 가벼운 두통에 시달리던 나는 미처 그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잠 좀 늦게 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님에도 이토록 머리가 아픈 건, 아마도 어젯밤 바람을 노래하려다-엘프는 정령과의 교감을 그렇게 표현한다-실패한 때문이리라. 어쨌거나 예민하게도 내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걸 금세 눈치 챈 그는, 가벼운 헛기침을 통해 주의를 환기시키곤 먼저 자신의 이름부터 밝혔다.
"그럼, 나부터 시작할까. 우선, 나는 칸터나이젠 용병단의 단장 ‘제피러스’로 알다시피 당신의 의뢰주이기도 하지. 그리고 이들은 모두 내 충실한 부하들로, 이번 일에 동행할 사람들이고. 자, 각자 한 사람씩 자기 소개하도록."
"···라곤 해도, 나야 이미 샤이 양과 하룻밤을 같이 보낸 사이니깐 패스- 쿠쿡-"
"에, 난 제프라고 하고··· 엘프는 정말 머리털 난 후론 생전 처음 보는데, 뭐랄까··· 음··· 아무튼 잘 부탁해, 엘프 아가씨."
"스캇."
가벼운 농담을 던지곤 키득거리는 그녀, 얀과 쑥스러운 듯 뒤통수를 긁적이는 덩치 큰 남자, 그리고 무뚝뚝하게 자신의 이름만 내뱉곤 곧장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검푸른 눈의 남자를 보니 대충 어떤 성격의 사람들인지 알 것 같다. 그래, 이 사람들과 어울려 적어도 한 달은 함께 지내야 한단 말이지······.
"샤이라고 해요."
서로 이름만 밝히는 것으로 간단하게 인사를 끝내자,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작은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고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가 조금은 신경에 거슬린다.
"좋아, 샤이. 당신은 특별히 비싼 돈 내고 길드 장한테 직접 부탁해서 데려온 귀하신 몸이니까, 앞으로 잘해주길 바래."
대체 저 은근슬쩍 비꼬는 듯한 말투는 원래 그의 버릇인 걸까.
"걱정 마시죠, 제피러스씨. 내 할 일만 가르쳐 주면 누구보다도 잘 해낼 자신이 있으니."
"······."
"······."
뭔가 얘기를 잘못 꺼낸 것도 아닐텐데, 갑자기 기묘한 정적이 감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아무 말이 없다니. 설마 이 남자, 눈치가 둔한 건가···?
"이봐요, 지금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은 거예요?"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남자는 그런 나를 비웃듯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날 바보로 아는 건가?"
"그럼 뭐라고 말 좀 해봐요!"
"······."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남자는 나의 당연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그러더니 말없이 담배를 피워 입에 문다. 마치 설명하기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봐요, 제피러스 씨! 도대체!"
"당신에게······."
입에 물린 담배에 혀가 눌려 어눌한 발음으로 남자는 겨우 입을 열었다.
"할 말은 없어."
"뭐라구요···?!"
"못 들었나? 당신에게 할 말은 없다구. 해 줄 말도, 그리고 해야 할 필요성도 모르겠어."
하···!
"지금 그러니까··· 나더러 아무것도 묻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얘긴가요?"
"흠, 제대로 알아듣는 걸 보니 다행히 머리가 나쁘진 않나 보군."
"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예요?!"
벌써 몇 번째인가! 난데없이 어깨를 붙잡곤 이름을 물으며 시비를 걸었을 때부터, 나는 이 남자가 내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봤어야 했다. 태연한 표정으로 다 피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곤, 다시 하나를 꺼내 입에 무는 남자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밉다.
"하하, 이봐 엘프 아가씨. 뭘 그리 열을 내고 그러시나. 우리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고, 그 정도는 이해해 줘야지. 하핫-"
건드리면 터질 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무마하려 했는지, 누군가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그렇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와 동시에 어깨를 통해 느껴지는 두툼한 손의 묵직함이 너무나 거슬린다. 그것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이 손, 치워주시겠어요······."
"······."
고개는 그대로 앞을 향한 채 조용히 시선만을 돌리며 말해도 그 손의 주인은 눈치가 둔한 것인지, 이제는 아예 마음놓고서 내 어깨를 툭툭 쳐대고 있었다. 그것도 어제 남자에게 잡혀 시퍼렇게 멍이 든 그 부분을.
화가 난다. 아니, 이제는 단순히 ‘화’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울분이 치민다. 아무리 인간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나라 해도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으며 불변과 안정을 모르는 그들을 받아들이려 애를 쓰고 어떻게든 좋게 지내보려는데, 이들은 오히려 그런 나로 하여금 손을 놓게 만드는 것이다. 하아. 역시, 아무리 다급했어도 애초에 인간의 도움을 받아선 안 되는 거였는데.
"아아, 됐어. 그만들 하라구. 좋아, 샤이. 당신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바로 그때였다, 내내 가만히 있던 그가 입을 연 것은. 그렇게 끝까지 버티더니만 이대로 인간에게 진 빚이고 뭐고 돌아가 버릴까 하고 잠시 고민하던 나를, 결국은 붙잡고 싶었던 모양이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꿎은 바닥을 노려보다 고개를 들어 그를 향하자, 내 시선을 받은 그가 조용히 입을 뗐다.
"드래곤."
"······??"
무슨··· 난데없이 드래곤이라니···?
"후우··· 말 그대로. 드래곤이야. 우리는 드래곤 카나렌의 레어로 간다."
"······!!!!"
드, 드래곤 카나렌이라니···? 설마, 그 카나렌···?!
대체 무슨 소리인가 하고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 그가 말을 잇는다.
"카나렌의 레어에서 조사할 것이 있어. 당신은 만약 전투가 일어나면 우릴 후방에서 지원해 주기만 하면 돼."
카나렌, 카나렌이라······. 기억이라는 상자 속에 꼭꼭 묻어 놓았던 반가운 이름이, 생각지도 않은 사람의 입을 통해 튀어나왔다. 아아, 그러고 보니 그때로부터 벌써 10여 년이 지났구나······.
"왜, 두려운가?"
"······!!"
"두렵다면 여기서 그만두고 돌아가도 상관없어. 물론 보수는 그대로 돌려줘야겠지만."
마치 도발이라도 하려는 듯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띄우곤 삐딱한 자세로 쳐다보는 그에게 또다시 울컥한 난 빳빳이 고개를 들고 외쳤다.
"두렵다뇨?! 뭐가요?! 지금 고귀한 엘프를 겁쟁이 취급하신 건가요?! 불쾌하군요!! 전 단지 뭔가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랬던 것뿐이에요."
"아아, 됐어. 아니라면 된 거지. 웬 과민 반응이야. 그럼 이야기는 끝난 건가? 당신 궁금증도 풀린 듯하니······."
흥···! 이야기가 끝난 게 아니라 더 이상 설명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어서 나가 달라는 티를 드러내놓고 하는 그였지만, 물론 나는 그것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런데 당신, 제피러스 씨."
두통을 느끼는 듯,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는 그를 부르자, 그가 귀찮다는 표정이 역력한 얼굴로 돌아본다.
"근데 당신, 왜 아까부터 자꾸 반말이에요!"
"······."
정곡을 찔린 듯, 여태껏 꼬박꼬박 대꾸하며 한 마디도 지지 않던 남자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문 채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한참을 머뭇거리다 더듬더듬 입을 연다.
"미안··· 미안하게 됐군··· 요······."
조금은 기가 죽은 듯한 그의 표정을 보니 갑자기 기분이 날아갈 듯 했기에, 나는 처음으로 그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주며 담배 연기가 진하게 배인 그 방을 나섰다. 이어 그녀의 방으로 돌아오자, 곧장 내 뒤를 따라왔던 그녀가 웃으며 말을 건다.
"우리 대장을 이기다니, 대단한데요? 샤이."
"후후··· 당신 가슴이나 훔쳐보는 그런 파렴치한을 내버려 둘 순 없잖아요."
"······!!"
그새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듯, 그녀는 내가 그 얘기를 꺼내자마자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 그러네요. 그런 불한당을 그냥 내버려 둘 수야 없죠. 호호호호···!"
얀은 그렇게 한참을 웃어 제끼다 겨우 멈추고는, 다시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띄웠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정의의 엘프 아가씨."
"쿡···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얀 씨."
"‘씨’자는 빼래두요."
"그럴게요, 얀."
그럼 이제··· 그녀도 조금은 경계심을 푼 것 같으니, 슬슬 얘기를 꺼내볼까.
"저, 그런데 얀."
"네?"
"대체··· 드래곤의 레어에 가서 뭘 하려는 거죠?"
멈칫-
순간, 침대 머리맡에 두었던 자신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던 그녀가 잠시 멈칫거리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게 다시 가방 속을 뒤적이며 대답했다. 애써 태연한 척 가장하고 있지만 조금 굳은 표정이 그녀 역시 뭔가 알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글쎄요? 그건 저도 대장에게 못 들었는데."
"···네? 그럼······."
"예에, 못 들었어요. 원래 용병이란 직업이 비밀이 많거든요. 으음, 이건 비밀인데 사실 우리도 누가 시킨 걸 돈 받고 하는 거라 자세한 건 몰라요. 뭐, 대장이야 알지도 모르지만 우리 용병단의 신용이 걸려있으니, 그런 걸 부하인 우리들한테 쉽게 가르쳐 줄 리도 없구요."
"···그래요······."
휴우··· 그녀조차 대답을 피한다니, 대체 이들은 무엇 때문에 드래곤의 레어를 찾는 것일까. 그것도 다름 아닌 카나렌, 그 제멋 대로이고 흉포한 레드 드래곤을.
나는 점심까지 그녀와 함께 하며 그 외의 다른 정보에 대해서도 어떻게든 알아내려 했지만, 끝까지 대답을 피하는 그녀도 집요하게 캐묻던 나도 서로 지치기만 했을 뿐, 결국은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
.
.
*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 특별뽀너스!
시점이 왔다 갔다 하는 라티엘(;;)이 이해하기 어려우신 분들을 위한 현재까지의 줄거리!
[프롤로그] 라티엘, 네프리아의 시점 -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소년(라티엘)과, 인간들에 의해 고향을 잃은 엘프(네프리아)의 짧은 만남으로 그 인연이 시작된다.
[1편] 라티엘의 시점 -
그로부터 12년 후, 칸터나이젠 용병단의 수장이 된 그는 어느 날 수수께끼의 인물에게서 기묘한 의뢰를 받는다. 그것을 바로, '달의 눈물'이라는 보석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 그러나, 부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뢰를 받아들인 그는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 용병길드의 길드장을 직접 찾아가 유능한 정령사나 마법사를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그 때문에, 엘 일행은 미리 약속해 놓은 여관에서 시간을 허비하며 꾹 참고 기다리지만, 일주일이 다 되도록 길드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1편] 네프리아의 시점 -
한편, 인간들의 도시 "아테나이"로 들어선 그녀, 네프리아(넬)는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 인해 진 빚을 청산하기 위해서 용병 길드로 향한다. (지난 12년 간 대륙을 떠돌며 많은 일을 겪는 사이에, 그녀는 인간에 대한 편견으로 성격이 많이 변해 있었다) 그리하여 만나게 된 용병 길드 장으로부터 몸으로 빚을 갚으라는 말을 듣게 된 그녀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길드 장이 가르쳐 준, 여관 "아테나이의 봄"에 있는 "제피러스"라는 이름의 인간을 찾아간다.
[2편] 라티엘, 네프리아의 시점 -
마침내 여관에서 마주친 두 사람. 과거의 인연에 사로잡혀 넬을 내내 잊지 못하던 라티엘은 우연히 옆을 스쳐가던 엘프를 보고는 억지로 붙잡고 이름을 묻지만, 인간에게 함부로 이름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그만 가명(샤이)을 대고 만다. …비록 그렇게 서로를 알아 보진 못했지만, 서로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그들이었기에 라티엘은 시비에 휘말린 샤이(넬)를 구해주려 하지만, 그러나 그는 소란을 듣고 온 부하 얀에게 선수를 빼앗기고, 넬은 얀에게 도움을 받게 된다. 이후, 잠깐의 저녁식사로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 그녀들은 좀 더 얘기를 나누기 위해 2층에 있는 얀의 방으로 올라가고… 넬은 그곳에서 조금 전 자신의 어깨를 붙들고 이름을 마구 다그쳤던 그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사소한 오해와 작은 다툼 끝에 그 자가 바로 자신이 만나야 할 상대 "제피러스"라는 걸 알게 된다.
[3편] 네프리아의 시점 -
그 남자, 제피러스에게 자신이 길드에서 보낸 정령사라는 걸 밝힌 넬. 그러나 시간이 늦어 자세한 얘기는 내일로 미루기로 하고, 일단은 얀과 같은 방에서 묵기로 한다.
[2편] 라티엘의 시점(끝부분) -
하늘에 별이 총총 뜬 깊은 밤, 제피러스(라티엘)과 그의 충실한 부하 스캇이 대화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샤이(넬)는 그저 도구로 이용될 뿐이라며 스캇에게 조용히 속삭이는 라티엘. 그러나 문득 샤이를 떠올리는 그의 마음은 그다지 편치 못했다.
[3편] 네프리아의 시점(중간부분) -
같은 시각, 내내 뒤척거리다 결국 이불 속에서 빠져 나온 샤이(넬)는 오랜만에 바람과의 공명을 시도하나, 바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얀에 의해서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엘프는 정령과의 공명 등을 통해 친화력을 키워나가며, 친화력은 곧 정령력이라는 설정..;;)
[3편] 라티엘, 네프리아의 시점 -
다음날, 아침식사를 막 끝내고 엘 일행과 한 자리에 모인 그녀, 샤이(넬).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묻지만, 무엇 때문인지 제피러스(라티엘)는 마지못해서 몇 가지 사실을 알려줄 뿐, 끝내 자세한 대답은 피한다. 그러나 그 내용 중, 레드 드래곤 카나렌의 레어로 간다는 사실이 계속 마음이 걸렸던 샤이는 나중에 얀에게 좀 더 자세히 묻지만, 그녀 역시 대답하길 꺼리기에 그녀(넬)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갈 뿐이다.
[3편] 라티엘의 시점(끝부분) -
본격적인 여행을 떠나기 전, 장을 보러 온 제피러스(라티엘)과 얀. 비상 약을 사기 위해 상가를 지나치던 중, 그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과거, 넬이 배고픈 자신을 위해 직접 따다 주었던 포르 열매. 만류하는 과일장수의 말에도 그 떨떠름한 맛의 설익은 열매를 씹는 엘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일주일만이지요? 하지만 극악의 연재속도(평균 한 달에 한편 꼴)를 자랑하는 저에게 있어서 15시간 만에 9페이지를 써낸 라티엘 3편은 대단한!! 수확이랍니다아~. (다시 보니 엄청나군요. 묘사도 없고 그저 대화로 주욱~ 이끌어가는..-_-;) 그나 저나 저 줄거리는 레인님 동의도 안 받고 올려버렸는데, 난 몰라. 에잇~! 투다다다닷..!! (도망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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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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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아지겠지요. 전 편보다 읽기도 쉽고요. 건필하세요:)
조금 길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정말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건필입니다.
기대해도 될런지'-'a 건필하세요.
건필하세요:)
흉포한인지... 아니면 흉폭한인지... 흐음... 헷갈립니다아... @.@ 어쨌든 건필하세요.
예에, 힘내겠습니다. ^^ 에.. 그리고.. 저도 찾아봤는데, 흉폭한 -> 흉포한이라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