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에 최씨 성을 쓰는 보따리 짊어지고 돌아다니며 점 처서 먹고사는 민초지식인이 있었다. 성품이 바르고 따듯한 사람이었고, 좀 신끼가 많았다. 동네 사람들은 이 아저씨를 '최보따리'라 불렀다.
철종 때... 1860년 봄,... 중국 태평천국의 난이 양자강 이남을 다 휩쓸고 이제 강을 건너 남경(강소성)을 먹었다는 뉴스가 최보따리에게 들렸다. 그리고 곧 서양 오랑캐들이 신식 군대로 청을 박살냈다는 소리가 들렸다. 최보따리는 갑자기 몸살이 들었다. 꿈에 헛것이 보이고...열에 시달렸다. 최보따리는 나중에 이일에 대해 이렇게 썼다.
"경신년(1860) 봄에... 천지가 뒤집히고... 기기묘묘한 기술과 신식무기로...."
이 날 이후 최보따리는 "사람은 다 존엄하다. 개개인이 존엄하다. 여자나 노비나 아이에게 모진 짓 하지 말거라. 착하게 살자" 대충 이런 소리 하고 돌아다녔다. 관아에서 최보따리를 잡아서 '반란의 수괴'라 하여 목을 잘라 죽였다. 1864년의 일이다. 새로 들어선 임금 및 그 애비(대원군)에게 잘 보이려고..
최보따리의 아내와 어린 아들도 잡아 죽이려 들었다. 최보따리보다 학식이 많지만, 최보따리의 인품과 예지력에 반해, 최보따리의 제자를 자처했던 인쇄공(활자를 뽑고, 교정을 보는 사람)이었던, 또다른 최씨(이를 '또최씨'라 부르자, 둘이 친척관계가 아니다.)가 스승인 최보따리의 아이를 업고, 최보따리의 아내와 함께 태백산맥 화전민 촌으로 튀었다. 그리고 평생 이 아내를 '스승의 부인'으로 깍듯이 수발들었다.
최보따리가 수운 최제우이고 또최씨가 해월 최시형이다.
호에 '물'을 뜻하는 '수' '해'를 쓴다는 것은 '음' 사상--즉 여성, 아이, 노비 등을 존중하는 사상계보를 뜻한다.
더 황당한 것은, 1860년에.... 시골 보따리 점쟁이가 느낀 위기의식을 ... 지식층이 안 느꼈을리 없음에도...별다른 기록이 없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소화'탈레반들 때문이다. [청이 지배하는 중국은 이미 중국이 아니다. 중국의 정신인 성리학은 조선에 와서 실현됐다]는 신앙으로 중무장하고 사람 잡아죽이는 놈들이 지배하는 세상이어서...
"야! 위기야!"란 소리 조차 못 꺼낸 것이다. '소화 천국'에서는 '바깥으로부터 무엇인가 거대하고 새로운 것이 닥치고 있다"라는 소리 자체가 사문난적이요 국가반역이었기 때문에 못 꺼낸 것이다.
그래서...1860년 위기의식을 기록한 거의 유일한 문건은.... 최보따리가 남긴 [동경대전] 앞 부분이다. 한국의 지식인은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악마같은 소화탈레반]--지금 아프간에서 보이는, IS에서 보이는 극악무도한 자들--만 설칠 뿐, .... 쓸만한 지식인이 거의, 거의, 거의 없이... 현대문명 속으로 끌려들어갔다.
지금 국사학자들은 이 사정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나?
소화탈레반이 저지른 위정척사, 척화비 같은 극악무도한 일에 대해 '민족 주체성'을 위한 노력이었고, ... 대원군의 학정에 대해 '개혁'이었다고 평가한다.
첫댓글 똑 같군요.
지금의 우리나라와...
즐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