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심수한(山深水寒)
〔상당(上堂)하시어 주장자(拄杖子)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고,〕
이 일을 논하건대
도독고(塗毒鼓)와 같음이니
한 번 치는 소리에
멀거나 가깝거나
다 몸을 상함이로다.
치지도 아니하고 듣지도 아니 할 때는 어떠한고?
山深水寒<산심수한>이로다.
산이 깊으면 물이 차가움이로다.
이 선(禪)이라는 것은 삼세 모든 부처님의 정안(正眼)이요, 역대 조사의 명근(命根)이로다. 불법에 있어서 선은 그만치 고귀한 진리인 것이다.
그래서 문수보살(文殊菩薩)께서도 말씀하시기를,
若人靜坐一須臾<약인정좌일수유>하면
勝造恒沙七寶塔<승조항사칠보탑>이라.
寶塔畢竟化爲塵<보탑필경화위진>이나
一念正心成正覺<일념정심성정각>이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잠시라도 고요히 앉아 참구(參究)할 것 같으면
항하의 모래 수만큼 칠보탑을 쌓는 것보다 공덕이 더 수승(殊勝)함이라.
보배탑은 필경에 티끌이 되지만
한 생각 바른 수행은 정각을 이룸이로다.
하셨으니, 가장 보람 있고 값진 일은 선을 참구하는 일이로다.
선을 참구하여 마음 바탕을 뚜렷이 밝힌 자는 진리의 법왕이 되어서 일만(一萬)경계를 임의자재(任意自在)하게 수용하고 쓸 수 있음이로다.
마음의 바탕에 팔만 사천의 지혜가 다 구족되어 있는 고로 망념(妄念)이 다한 곳에 홀연히 지혜의 눈이 열리면 팔만 사천 지혜를 다 자재하게 쓸 수 있게 되는 법이로다.
문수보살이 하루는 동자(童子)를 한 명 데리고 산에 약초를 캐러 가셨다.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며 약초를 캐다가 동자에게 이르시기를,
“약 아닌 풀을 캐어 오너라.”
하시니, 동자가 말하기를,
“약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며 풀 한 포기를 뜯어 바쳤다. 문수보살이 그 풀을 받아 들으시고,
“이 약은 천하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천하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무한한 뜻이 있음이로다.
어째서 “약이 아닌 풀을 캐어 오라” 하는데, 동자는 풀 한 포기를 뜯어다 바쳤느냐? 이것을 알 것 같으면, “이 약은 천하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천하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는 말의 뜻을 알 수가 있음이로다.
이러한 것에 확연명백(確然明白)해야 진리의 법왕이 되어 팔만 사천 지혜를 자유자재로 염출(拈出)해 낼 수 있게 됨이로다.
석일(昔日)에 방 거사(龐居士)가 약산(藥山) 선사를 방문하여 거기에서 며칠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가려 하니, 그 곳 선객 몇몇이 전송을 나왔다. 마침 눈이 내리므로 방 거사가 허공을 쳐다보며,
“송이 송이 날리는 눈이여, 별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네.”
라고 하자, 뒤따르던 한 선객이 물었다.
“별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으면 어느 곳에 떨어집니까?”
그러자 방 거사가 묻는 선객의 뺨을 올려 치면서,
“이런 소견(所見)을 짓고도 어찌 선객이라 하느냐?”
하고 호통을 쳤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알겠느냐?
“송이 송이 날리는 눈이 별다른 곳에 떨어지지 아니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며, 또 거기에 무어라고 응수(應酬)해야 뺨 맞음을 면하겠는가?
훗날 설두(雪竇) 선사께서 여기에 대해서 착어(着語) 하시기를,
雪團打雪團打<설단타설단타>언들
龐老機關沒可把<방노기관몰가파>로다.
눈을 뭉쳐 때리고 때려 주었던들
방 거사의 날카로운 기봉도 별 수 없었으리.
안목이 있고 없음의 차이가 이와 같음이로다.
“송이 송이 날리는 눈이 별다른 곳에 떨어지지 아니한다”는 말에, 그 당시의 선객은 “눈이 별다른 곳에 떨어지지 아니하면 어느 곳에 떨어집니까?” 하였고, 설두 선사께서는 “눈을 뭉쳐서 때리고 때린다” 하였다.
대중은 설두 선사를 알겠느냐?
〔양구(良久)하시다가 대중이 말이 없으니, 스스로 점검하여 이르시기를,〕
雪竇老雪竇老<설두노설두노>여!
賊過後張弓 <적과후장궁>이로다.
설두노여, 설두노여!
도적이 지나간 후에야 활을 쏘셨구려.
〔주장자(拄杖子)로 법상(法床)을 한 번 치시고 하좌(下座)하시다.〕
갑신년 동안거 동화사 금당선원 해제법어(2548.2004)
첫댓글 나모 땃서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붇닷서! 존귀하신분, 공양받아 마땅하신분,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께 귀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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