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는 북악산 아래 청와대 그리고 역사속으로 살아진 중앙청 앞에서...
나는 66년도 12월달에 나주역을 출발하여 증기관차의 석탄차의 연기가
바람에 나브기고 허름한 열차에 자리가 없어 열차안의 시렁에 걸쳐앉아
서울로 상경하였던 때가 그립고 추억에 젖있을때가 그립고 하늘을
치솟을 듯한 꿈을 안고 상격 할 때가 내 인생에 제일 좋은 시절인것 같다.
비록 호주머니에 돈은 없어 도둑차를 타고 서울로 상경을 하였지만
서울에 올라가서 대학을 다니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남다른 목표를
달성하여 보아야 겠다는 푸른 청춘의 꿈이 있어 고향에는 나이 많은
부모님을 뒤로 하고 고향산천의 아름다운 전경을 뒤로하고 상경길에
올랐다.
당장 올라 가 보아야 잠잘자리도 없고 방도 없고 그리고 돈도 없고
둘째 누나만 의지를 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 간 것이다.
잠자리는 조카들하고 같이 자거나 때로는 매형누나와 같이 자기도.
하였다. 서울로 올라가서 그 다음날 누나가 싸 주는 하얀 쌀밥의 도시락에
서울남산의 도서관에서 그 수많은 장서에 나주의 촌놈이 눈이 동글레 질수
뿐이 없었다 저 많은 책을 언제 다 공부를 할 것인가? 어머니가 싸주는 깡
보리 도시락을 " 나 도시락을 않가지고 가겠다고 어머니에게 투정을 하였던
철부지한 아들 , 그래도 아무말없이 아들의 투정을 받아주시고 .....
겨울을 지나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이 다가온다. 누나가 싸준 도시락의 고마움에
보고 싶은 공부를 원없이 하고 대학의 입시 위주로 공부를 할수 뿐이 없었다.
지금은 하얀 머리에 청려장을 짚고 눈도 잘 않보이고 아픈데는 여기저기 않
좋아 카페의 삶방에도 자주 남의 글도 못 읽겠고 댓글도 못달아 드리는 미안함을
생각할때 , 정말 젊음이 좋고 정열이 있을때가 좋구나 하고 생각을 많이 합니다
맨날 약과 병원에서 살면서 하루하루 어쩔수 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서울 생활의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노후에 연금이라도 있어 경제적으로는
그런데로 지내지만 노후의 힘든 삶이 그리고 누구나 이 길을 가고 있는 노후의 외로움과
고독을 함게하며 세월과 함께 흘러 가고있다.
첫댓글 도둑 열차를 타고 상경 하셨는데 대학은 무슨 돈으로
다니셨는지요 대학 등록금이 어디 한 두 푼이던가요
그렇게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결국 공무워되시고 성
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잘 보고 갑니다
광화문 배경으로 서계신 모습이 멋지십니다
저도 재수시절 학원갈 돈은 없고 남산시립도서관과 어린이회관을 개조한
도서관에 다녔던 적이 있습니다
아무쪼록 건강관리 잘하셔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
기차 시렁이라면 선반위에 걸터앉아
상경하셨다는 거네요.
누나댁!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