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판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엇일까?
1. 내용
2. 제목
3. 표지디자인
정답은 2.
이것은 내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출판계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현실이다.
물론 고전으로 남는 명작들의 경우에는 당연히 1번, 오로지 내용만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출판계의 현실을 보면 세기의 고전을 출판해야한다는 흐릿한 안개속의 이상보다는 어떻게든 2쇄로 넘어가 제작비, 인건비는 건져야한다는 눈앞의 금전에 더욱 집착한다.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자기네 책이 몇 백 만부씩 팔리는 일은 로또 맞기 만큼이나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을, 돈 천만 원 가까이 들여서 책을 출간하는데, 이게 초판 2~3000부도 다 못팔리고 절반 이상이 반품으로 돌아올 확률이 크다는 것을.
그래서 출판사에서는 현실적으로 목표를 잡는다. 그저 웬만큼만 팔려다오, 하고.
또 그렇게 목표를 잡을 수밖에 없다. 하루에도 신간이 수십 권씩 쏟아지기 때문에 우리 책을 서점에 보내놓으면 잘해봐야 2~3주 밖에 진열이 안된다. 팔리는 책은 꾸준히 진열될 수 있지만 만일 독자가 거들떠보지 않는다면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고 간절함을 담아 출간한 책이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서점매대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사정이 이러니 어떻게든 독자들 눈에 띄는 게 우선이다. 내용이야 어떻든 간에 일단 제목으로 독자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것이다.
위의 항목을 중요 순위별로 나열하면 이렇다.
1 제목 > 2 표지디자인 > 3 내용
어떤 사람은 책 내용의 중요도를 10% 미만으로 보기도 한다. 내용은 대충 그럴 듯하면 되고, 문장도 대충 읽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글을 사랑하고 책을 자신의 영혼처럼 아끼는 사람도 출판사에서 일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현실을 깨닫게 된다. 만일 깨닫지 못한다면 너무나 무디고 답답한 중생이다.
제목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표지디자인이다.
만일 회사에 능력있는 편집자와 능력있는 디자이너가 대판 싸워서 둘 중 하나를 내보내야 한다면 사장은 당연히 편집자를 쫓아낸다.
출판계에서 능력있는 디자이너들은 돈을 굉장히 잘 번다. 책 표지 하나 디자인해주는 데 10년 전에도 100만원 이상이었다. 능력있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나 디자인 회사는 바빠서 쉴 틈도 없다. 잘하는 번역회사는 소문이 날지 안 날지 몰라도, 잘하는 디자인 회사는 출판계에 소문이 자자하게 퍼진다. (그런데 실력있는 디자이너들은 어쩌면 그렇게 하나 같이 성격들이 가시 같을까?)
이것은 능력있는 디자이너 찾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북디자인을 할 때는 대개 멕킨토시 컴퓨터를 이용하는데, 사실 이 멕킨토시만 다룰 줄 알면 자기가 북디자이너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95% 이상이다. 그래서 사장과 편집자 속을 가장 많이 뒤집어놓는 게 이 무식한 디자이너들이기도 하다. 디자이너에게는 예술성도 중요하지만 기술력도 중요한데, 이 기술력이 부족하면 인쇄소에서 인쇄를 중지하고 종이값, 인쇄비, 필름값 등 수백만 원을 홀딱 날리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출판사를 차리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디자이너 얘기엔 관심없을 테니 이 얘기는 스톱하고 번역과 좀 더 가까운 내용과 문장 얘기를 해보자.
내용과 문장의 중요성은 10%건 1%건 분명히 존재한다.(잡문이 아닌 이상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꼭 붙어다님. 특히 소설의 경우에는 문장력이 곧 내용이라고 봐도 무방) 그리고 진정한 책은 어쨌든 간에 내용에서 판가름 나며, 진정한 독자는 내용을 보고 책을 판단한다.
이런 경우가 있었다.
일본 노벨상 작가의 소설 설국을 사서 읽었는데(이 책은 여러 출판사가 번역 출간했다), 하필이면 진상 출판사 걸 골라서 이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건 문장이라기보다는 그냥 글씨를 나열했다고 말하는 게 나을 정도였다.
한 10페이지 정도 읽다가 열이 뻗칠 대로 뻗친 나는 그 출판사에 전화했다. 그리고 노벨상까지 받은 작가의 책을 어떻게 이따위로 출간했냐고 편집자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오래 전 책이라 그걸 편집한 편집자는 벌써 퇴사했을 게 뻔했는데, 괜히 죄없는 사람한테 욕을 한 걸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다.
요컨데, 내용이나 문장이 별 거 아니라고 무시하다가는 뜻하지 않게 이런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번역본이 엉망일 경우, 여러분은 누구 잘못이라고 생각하는가? 번역자의 잘못일까? 편집자의 잘못일까? 물론 궁극적으로는 사장의 잘못이겠지만 그건 차치하고 본다면 이건 당연히 편집자의 잘못이다. 출판사에 근무해본 사람이라면 아마 다들 이해할 것이다.
편집자는 엉터리 번역본일지라도 최소한 무슨 말인지 알아볼 수 있게끔 다듬어야할 의무가 있다. 만일 도저히 손댈 수 없는 번역본이라면 사장한테 사실을 말하고 번역을 다시 하게 하든가, 다른 번역자를 찾도록 해야 한다.
사장이 대충 오탈자나 고쳐서 출판하라고 한다면 그건 어쩔 수가 없겠지만, 사장이 꼴통이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문장의 중요성이 겨우 10%일지라도 사장들은 자기돈 들이는 사업이기 때문에 그 10%를 다 채우고 싶어한다. 그러니까 그런 엉터리 번역물이 왔다는 것은 사장이 문장에 대해서 모른다는 뜻이고(편집자한테 번역가를 선택할 권한이 있다면 이런 번역가를 골랐을 리가 없다), 이런 경우에는 편집자가 사장을 깨우쳐줘야 한다는 것이다.
문장력을 사이에 두고 편집자와 번역가에 대해서 좀 얘기해보자.
사실 편집자는 문장력에 관해서 번역가에게 별로 기대를 하지 않는다. 전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그저 50점 정도로 무슨 말인지 알아볼 정도면 나머지는 자기가 알아서 한다. 물론 점수가 70점, 80점 정도로 높아서 편집자에게 편안함을 선사한다면 당연히 그 번역가도 큰 걸 얻는다. 고정 거래처 말이다.
아, 여기서 잠깐! 이렇게 얘기하면 번역가의 문장력은 당연히 아래고, 편집자의 문장력은 당연히 위라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닌 경우도 꽤 많다. 번역가의 탁월한 문장을 무능한 편집자가 손상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편집자가 좋은 문장을 완전히 엉망으로 만드는 경우는 드물겠지만, 빛나는 문장을 평범한 것으로 깎아버리는 불행한 일은 자주 발생한다.
그러나 번역가여!
그렇다고 화를 내지는 마시라. 들이받으면 일거리가 끊긴다. 유능한 편집자는 단점을 지적해주면 고마워하지만 능력없는 애들은 복수만 생각한다...
첫댓글 당신은 번역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 태도로 무슨 번역을 합니까? 번역은 어디까지나 번역사의 몫이고 적어도 출판사에서는 최소한 이상적인 문장이 아니라 해도 내용파악에 원본 대조가 필요없는 번역본을 번역자에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만약 번역사가 그런 번역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번역사는 당연히 번역료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네 그런 번역을 최종적으로 출판했다면 그건 출판사의 역량부족, 편집자의 역량 부족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런 번역으로 해당 번역사가 돈을 받았다면 그 번역사는 도둑이나 다름 없습니다. 범죄자입니다.
출판사의 목적은 읽히는 책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읽히지 못하는 책을 내서 이윤을 내지 못하는 것으로 충분히 불이익을 받았다 하겠지만
번역사는 그 본분이 제대로된 번역물을 제공하는 것이므로 불량품을 판매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범죄자입니다.
그런 태도로 번역하려면 앞으로 번역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번역사의 본분은 제대로된 번역을 제공하는 것이고
감수자의 본분은 잘못된 번역을 찾아내는 것이고
검토자의 본분은 그 번역된 내용이 업계에서 통용되는 상황과 문맥에 맞는지 전문가의 입장에서 검토하는 것이고
편집자의 몫은 그 결과물을 다듬어 최상의 상품으로 내는 것입니다.
남이 어떻게 하든 자신의 실수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양심적이지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건가요?
전 오히려 편집자의 역량 부족함에 감사해야 할 것 같은데요.
안 그럼 번역료도 못 받았을테니.
말씀이 좀 지나치신 것 같네요. 번역 품질에 대한 제대로 된 피드백이 없거나, 편집자의 문장력이 뒤떨어지더라도 일단 탈고한 이후에는 번역자의 의견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 등 업계의 구조적인 취약점이 큰 문제라는 것이 요지인 것 같습니다만, 이를 오리지날님의 번역가로서의 직업소명감에 대한 반영이라고 비약하시고 비판하시는 것은 지나친 반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Charis 취지는 그랬을지 모르나 그런 비판을 하려면 우선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술자리에서나 적당한 이야기지요. 글에서는 번역자의 책임에 대한 인식은 전혀 느껴지지 않읍니다.
적어도 번역사라면 시장 상황이 어떻든 자기의 번역을 소중하게 여기더군요.
그런 정상적인 번역사 범주에 들어가야 적어도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비판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번역은 개나 소나 다 할 수 있고 번역사의 번역이 어떻든 결과물은 편집자 책임이다.
개발소발 번연한 번역을 말이 되게 만들지 못했다고 자랑스럽고 뻔뻔하게 편집자를 힐난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번역사라면 자신의 과오 뼈에 사무치게 부끄러워야
@agent 정상 아닌가요?
번역본이 엉망이면 당연히 편집자의 잘못이죠. 또 당연히 번역자의 잘못이기도 하고요. 둘 다 잘못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