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楚汉志) 1-062
* 가엾은 女人群
始皇帝는 전국 각지의 명승지에 别宫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일생에 한 번쯤
들러 볼 기회가 있을까 말까 한 平原津 别宫에도, 宫女들을 천명씩이나 배치시켜 놓고 있었다.
平原津 别宫의 궁녀들 중에서, 斉나라 태생인 嫦娥라는 절세의 미인이 끼여 있다는 사실은,
독자들도 이미 알고있는 일이다. 상아가 명의인 아버지에게서 지은 秘方死药을 가슴 깊이 품고,
평원진 별궁에 들어온 지도 어느덧 이태가 넘었건만, 시황제를 언제나 만날 수 있을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목적을 달성하려면 우선 사람을 만나야 할 텐데,
시황제를 만날 기회가 과연 오기는 오는 것인가.) 상아는 모든 일이 막막하기만 하였다.
아버지는 상아의 간청에 못이겨 <사약>을 지어 주기는 했지만, 의사로서의 죄책감에서
그날 밤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지 않았던가.
살아있는 시황제를 시해하기 위해 아버지까지 희생시킨 셈이건만, 그러고도 아직 始皇帝는
코빼기도 보지 못하고 있으니 가슴에 사무치는 원한을 언제나 볼 수 있게 될지,
날이 갈수록 마냥 막막한 생각뿐이었다.그러한 어느 초여름날..... .
평소에는 无主空家처럼 조용하고 쓸쓸하기만 하던 平原津 别宫이, 별안간 발칵 뒤집히는 듯이
소란하게 되었다. 평원진 고을 군수가 돌연 수백명의 인부들을 인솔하고 달려와,
진두 지휘를 해가면서 별궁의 大清扫를 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수십 명의 庭园师와
塗工들이 몰려와 정원을 새로 꾸미고 단청을 새로 장식하기에 여념이 없어 했던 것이다.
상아는 하도 이상하여, "전에 없이 별안간 왜들 이러십니까?" 하고 别宫 都监에게 물어 보았더니,
별궁 도감은 눈을 커다랗게 떠보이며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황제 폐하께서
내달 초에 우리 별궁에 临幸하시기로 되어 있다오. 우리 별궁이 완성된 지가 이미 3년이 넘었건만,
황제폐하께서 이제야 처음으로 납신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두 번 있기 어려운 영광이오."
"엣? 황제 폐하께서 내달 초에 우리 별궁에 납신다고요? 그게 사실입니까?"
상아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었다. 시황제를 자기 손으로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이제야
눈앞에 다가왔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이 아니면, 내가 어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겠소.
그러니까 상아 아가씨도 황제 폐하의 총애를 받으려면 오늘부터 몸단장을 단단히 하도록 하시오."
(황제 폐하의 총애?) 상아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 왔다. 이리같이 잔학 무도한
시황제에게 온몸을 사정없이 유린당할 일을 생각하면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으려면 이쪽도 그만한 희생을 각오하고 있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별궁 도감은 남의 감정도 모르고, 상아를 동정하는 마음에서 넌저시 이런 귀띔을 해준다.
"아가씨도 알고 있다시피, 지금 별궁에는 궁녀들이 천 명이나 있어서, 황제 폐하의 눈에 들기는
하늘의 별을 따기보다도 어려운 일이오. 이번 기회에 폐하의 총애를 받지 못하면
햇볕 볼 날이 영원히 없게 될 것이니, 상아 아가씨는 그런 줄 알고 얼굴 화장을 열심히 하여
폐하께 총애를 꼭 받도록 하시오." 상아는 별궁 도감의 동정이 고맙기는 하지만, 내심으로는
슬픔을 금할 길이 없었다. 宫女! 생각하면, 궁녀란 이름의 여성들은,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화려해 보이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언제나 고독에 울어야 하는 슬픈 족속들이
아니었던가. 궁녀 치고 얼굴이 아름답지 않은 여인은 한 사람도 없었다. 궁녀로 뽑혀 들어오지
않았던들, 그들은 저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 누구보다도 행복스러운 안방 마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궁녀로 뽑혀 대궐로 들어와 버리면 외관 남성과의 접촉은 일절 금지되고,
그때부터는 끝없는 独守空房이 계속돼야 하는 것이다. 요행으로 임금의 총애를 하룻밤쯤 받게 되면
그 이상의 영광이 없겠지만, 그러나 한 번 스쳐가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 궁녀들의 눈물겨운
신세가 아니던가. 상아는 궁중 생활 이태 동안에 궁녀들의 비참한 생활 양상을 뼈저리게 목격해 왔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궁녀들을 별궁마다 수천 명씩 거느리고 있는 시황제야 말로
<생사람을 말려 죽이는 죄인> 이라고 볼 수 밖에 없었다. (오냐!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이번 기회에
시황제라는 죄인을 내 손으로 죽여 버리고야 말리라.) 상아는 이를 갈며 결심을 새롭게 가다듬었다.
마침 그때, 황제의 비서장인 조고로부터 궁녀들에게 보내는 지시가 시달되었다
"황제 폐하께서 머지않아 평원지 별궁에 임행하실 터인즉, 모든 궁녀들은 날마다 몸치장에
정성을 다해, 황제 폐하의 총애를 받아드릴 만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으라."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천명의 궁녀들 중에서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될 궁녀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 것인가. 그 몇 사람을 제외하면, 나머지 궁녀들은 햇볕을 영원히 못 보고, 숫처녀로 늙어 죽어야 할
신세가 아니던가. 상아는 그 일을 생각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 기회에 시황제라는 폭군을
죽여 없애야 한다는 결심을 거듭 다져 먹었다. 시황제를 살해하려면 우선 그와 접근할 기회를
가져야 하겠기에, 상아는 그 날부터 본의 아니게 얼굴을 치장하기 시작하였다. 황제가 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그 날부터, 모든 궁녀들은 저마다 몸치장과 얼굴 치장을 서두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일생에 한번밖에 없을 천재일우라 싶어서, 궁녀들은 황제의 총애를 받아 보려고 무언중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 그 뿐이랴. 평소에는 서로 동정하고 화목하여,
盗难事件 따위는 일절 없었건만, 시황제가 온다는 기별이 있은 다음부터는 연지와 白粉같은 화장품
도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하였다. 얼굴이 아름다운 궁녀일수록 피해가 심하여,
상아는 화장품이란 화장품은 모조리 도난을 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평소에는 상아를 친자매처럼
따르던 궁녀들조차도, 이제는 상아를 원수처럼 미워하고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妬忌였었다. 皇帝의 총애를 받기 위해서는 자기보다
아름다운 궁녀를 제거해 버리지 않을 수 없는 데서 오는 슬픈 투기였다. 상아는 그러한 양상을 보고
뼈아픈 슬픔을 금할 3길이 없었다. (선녀처럼 착하던 처녀들이 독사 같은 악녀로 돌변하게 된 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始皇帝의 죄가 아니고 무엇인가.)
상아는 그날부터 화장할 생각을 숫제 단념해 버렸다. 동료들과 경쟁을 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궁녀들 중에 月肢라는 소문난 미녀가 있었다. 월지는 얼굴도 아름답거니와 자존심이 유난히 강하여,
많은 동료들 앞에서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황제의 총애를 받을 사람은 나 이외에 또 누가 있겠니! >라고
농담 삼아 큰 소리를 친 일이 있었다. 그러자 모든 궁녀들은 월지에게 떼거리로 달려들어 얼굴을 할퀴고
팔다리를 물어뜯고 하는 바람에, 월지는 생각지도 않은 추녀가 되고 말았다.
상아는 자기자신도 여자이기는 하면서도, <여자의 투기>가 그렇게도 무서운 것인 줄은 몰랐다.
(월지를 추녀로 만든다고 과연 자기 자신이 황제의 총애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천 명의 궁녀들 중에서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될 궁녀는 몇 사람에 불과하리라. 따라서 나머지 궁녀들은
제 아무리 화장을 열심히 해 보았자, 낙동강 오리알처럼 나가 떨어질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따지고 보면, 궁녀들은 서로간에 물어 뜯으며 싸울 것이 아니라, <궁녀 제도를 철폐하라>는
가치를 높이 내걸고 공동 투쟁을 전개하여야 옳은 일이다.
그러나 궁녀들은 그런 점은 생각조차도 아니하고, 제각기 피나는 경쟁만 전개해 나가고 있었다.
1-06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