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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 삶의 이야기 방 양반(兩班)도 노비(奴婢)된다
마초 추천 0 조회 263 24.04.24 09:07 댓글 1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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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4.24 10:05

    첫댓글
    조선시대 한국의 양반(兩班)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는데
    일제가 침탈하여 마구잡이식으로 호적 정리를 하면서
    노비문서(奴婢文書)가 슬그머니 살아진 것이다.
    쌍놈도 여러 급수가 있는데 보통쌍놈보다 한 단계
    아래가 돌쌍놈 돌쌍놈 보다 한 단계 아래가 불쌍놈,
    불쌍놈보다 한 단계 아랫것이 노비다.사족 양반(兩班)
    중에도 양반을 알양반이라 부르고 알양반이 되려면
    서원에 조상이 배향되어야 하지요

    반정(反轉0에 성공하면 임금 되고 실패하면 역적(逆賊)
    으로 전락하는 조선의 역사를 볼 때 훌륭한 사대부집
    가문이 노비(奴婢)로 전락한 경우가 종종 있다. 성삼문
    가문이 노비(奴婢)로 전락했고 나머지 사육신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했지요

  • 24.04.24 10:30


    진짜 충성스런 종들이
    마니 있음을 들은거 같긴
    합니다

    양반과 노비 그 시절
    살아보진 않했어도
    충심 가득한 종들
    진짜 멋지다고 생각해요

    지금 사회에도 은근
    그런 모습들이...

    사람 차별하고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 작성자 24.04.24 15:18

    우리나라의 양반(兩班)에 해당하는 계급이
    유럽에서는 기사에 해당하는 귀족(貴族)이죠.
    서양의 귀족(貴族)은 평시에는 사냥이나 하고
    마상경기나 사교를 하며 맨날 놀고
    먹는 거 같지만 일단 유사시면 목숨을 내놓고
    명예(名譽)를 지키는 계급 역할을 해냅니다.
    1차 대전 2차 대전 때 귀족(貴族)
    의식을 가지고 전투에 임했지요.우리나라의
    양반(兩班)은 그 역할이 뭐였겠습니까 그들이
    계급역할을 했겠습니까? 변란(變亂)이 있을 때마다
    나선건 하층계급이었습니다 착취와 소비와
    비겁과 타락의 전형이 양반들 아니었는지요
    정말로 악취가 진동을 하지요
    흔적주심에 감사함을 표합니다

  • 24.04.24 16:13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늘
    존귀하게 대접받고 쌍놈은
    아무리 부자라도 항상 비천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고대
    세계각국에 노비가 많았지만
    우리나라처럼 문서로 노비를
    다스린 나라는 드물 겁니다.
    옛날에는 돈이 있어도 대대로
    노비가 됐었지만 현대판
    노비는 돈만 있으면 탈출하는
    것 아닙니까
    마초님 노비제도 많은 것을
    배워봅니다
    늘 건 행하십시오~^^*

  • 작성자 24.04.24 20:05

    고려시대(高麗時代)의 신분구성은 귀족 중인 양민(良民)
    천민(賤民)으로 나뉘는데 그중 천민(賤民)은 소유주가
    누구냐에 따라 공노비(公奴婢)와 사노비(私奴婢)로 나뉘었지요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신분이 구성되었고.양반(兩班)은 문반 무반을 합쳐서
    양반이라고 했고 중인은 TV 사극에서 나오는 아전들과
    통역을 담당하는 역관 의술을 제공하는 의관들이 있었다
    또한 지방 관청에서 행정사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중인에 속했지요.
    상민은 절대다수가 농민이고 그 외에는 수공업자와
    상인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천민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노비(奴婢)와 노비가 아닌 천민으로 나뉜다.노비가 아닌
    천민에는 백정 사당패 창기 악공 무당 광대등이 있었다
    이들과 노비(奴婢)가 합쳐져 7종천민이라 불렸다.

    그 당시 양반(兩班) 반열에 오르지 못한 중인을 비롯하여
    상민 천민 모두가 자신과 가문의 신분 상승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고한 사람을 중상모략
    하여 역모로 고자질하여 그 공과를 얻으려 했으며
    돈으로 버젓이 벼슬을 사고팔았지요
    정성깃든 댓글에 감사를드리며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 24.04.24 17:11

    마초님
    쟘봉베르 진짜 맛있는 샌드위치를 커피랑 놓고
    한입 입에 물으며
    캬~~~~이 맛이야
    이러믄서
    최하위~~~~이 단어로 시작된
    마초님 글을
    읽기시작~
    짜임새 있는 기록 같은
    멋진 공감글
    끝마무리에 도달으니
    샌드위치를 어디로 먹었는지도
    모르게
    없네요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 24.04.24 19:47

    댓글을 짬뽕베르보담 더 참맛이 나고
    참으로 독보적으로 까리하게 댓글을 쓰는군요
    글이란 현재의 감정에만 솔직하면 되지요
    내 인생관이나 생활까지 글에 솔직하면
    금상첨화이지요ㅎ

    허접스런 끄적거렸는 글을 이렇게
    읽어주시니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역시 혼이 맑으면 글은 절로 되는 법
    감사드리며 오늘도 굿럭으로요

  • 24.04.24 19:50

    @마초 평소에 관심있는 분야였거든요
    정성껏 올려주시는데
    좀 더 예의바르게 읽고 댓글을 드려야하는데
    죄송해요~~~~~~~~~^^

  • 24.04.24 21:36

    노비에 관한 글을 읽으며 지금을 생각합니다.
    양반에서 관노가 되었다가 사면으로 다시 정치 일선에 복귀하는
    그때의 일과 지금과 틀림이 없는 일들에 실소를 자아내게 합니다.
    당시에는 복귀 되더라도 초야에 묻혀 사는 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대단한 일을 치른 듯 당당하게 국민들을 선동 하며
    타인에게 가해진 법은 맞고 자신에게 가해진 법은 악법이라고 하는 사람들
    후안무치 한 사람들이 ...........
    노비에 대한 체계적인 글 감사한 마음으로 배우고 갑니다
    건필 하세요 선배 님^^

  • 작성자 24.04.24 22:06

    지금은 계급제도(階級制度)가 없어졌지만 현대사회에
    걸맞은 계급제도는 엄연히 존재하죠 6.25 후경제발전이
    안되어 있을 때는 없는 집 자식들의 신분변화는
    고시제도에 의해 쉬웠습니다.공부밖에 딴짓할 게
    없었거든요. 오늘날은 그렇질 못합니다 가난과
    신분이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신분(身分)의
    수직상승이란 꿈도 못 꿉니다 같은 신분끼리 노니까요.
    있는 놈 자식들이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는 여건
    출세할 수 있는 여건이 잘 갖춰져 훨씬 유리합니다.

    고려시대나 무인정권 또는 5.16 군사혁명과 같은
    천지개벽 (天地開闢)때라면 신분(身分)이 갑자기
    뒤집어지는 수도 있지만 민중의식이 높아진 오늘날
    혁명 따위는 어림없고요. 따라서 사람들이 의지할
    데라곤 일확천금 (一攫千金) 뿐이라 복권사업이
    그렇게 잘 되는지도 모릅니다
    멋있는 댓글 감사혀요

  • 24.04.25 07:06

    우리나라의 조선의 제일 잘못된 것은 신분사회입니다
    어느나라나 신분의 차등은 있으나, 조선이 발전을 할수 없는 주범은 신분사회입니다
    조선은 양반사대부나 살아가기가 좋은 사회입니다 .고산윤선도의 종가에는 노비가 무려 5백명
    아에 노비상속법을 마련하여 가문으로 전하더군요

  • 작성자 24.04.25 20:32

    노비제도 몇가지 면면들을 보면 숨이 막히죠.~
    그러나 그래도 사람이 사는 세상입니다.
    세세하게 깊이 살펴 보면 노비로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나름의 생활방식이 있다고 합니다.
    현실이 갑갑해서 숨이 막히면 즉사하고 말지요.

    돈 주고 면천 가능했고,족보 사서 하루아침에 양반으로 탈바꿈하는
    기문둔갑술이 성행했다구 하고,
    돈 많은 노비가 가난한 양반들 보다 더 잘사는 현상도
    보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신분제도 사회를 조금 깊이 들여다 보면
    돈 앞에 얼마든지 신분제도가 무력화 되는 현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ㅎ
    선배님 멋진 설명 감사합니다
    단결~!

  • 24.04.25 13:23

    조선조 제4대왕 세종도 노비제도를 찬성했다.
    조선조 초기에는 양반은 10%, 상민 50% 나머지 40%는 천민계급.
    노비제도가 공식적으로 갑오경장 1894년에 없어졌다고 하니까 이런 것도 일본 덕분인가?

    내가 기억하는 1950년대 말 산골마을에세는 노비들의 후예가 주인집에서 머슴으로 살았다.
    지금은 2020년대. 족보를 펼치면 모든 가문들이 다 양반자손이다?
    이씨조선 잘 망했다. 노비제도가 점차로 사라졌기에. 왜놈들한테 감사하다고 절을 올려야 하나?

    50여년 전... 정치학을 배울 때 대학교수들은 한국정치사에 관해서는 늘 곤혹스러워했다.
    차마 가르치지 못하고는 외국 신생국가의 정치로 대체했다.
    부끄러운 조선조 역사...

  • 작성자 24.04.25 20:53

    그래요 고마워요
    애환이 깃든 암울한 약소국가의 조선조 인생사 역사(歷史)를
    바라봅니다
    歷史란 늘 강자편에서
    진행되는 것이기에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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