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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연인이던 칼라 브루니와 주말 여행을 떠난 곳.
같은 해 10월, 성악가 파바로티의 추모 공연이 열린 곳.
BBC 방송이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50곳’에 16번째로 등재된 곳.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곳.
그리고 영화 <인디아나 존스 3-최후의 성배>와 <트랜스포머>의 배경이 된 곳.
빙고! 요르단의 페트라.
요르단 세수 중 20% 정도가 페트라 입장 수입이라고 하니,
이 유적이 전 세계인에게 얼마나 사랑받는지 알 만하다.
지구에는 그런 곳들이 있다.
사진이나 TV를 통해 몇 번을 들여다본다 해도
직접 그 앞에 서기 전에는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없는 곳들.
페트라의 아름다움 역시 그렇게 간접적으로는 잘 전달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다.
이 도시의 아름다움은 사막으로 달려와 붉은 바위산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전에는,
그 뜨거운 바위를 두 손으로 어루만져보기 전에는 잘 전해지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페트라의 빼어남은 바위투성이 모래언덕과
가파른 협곡에 둘러싸인 그 지리적 조건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페트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좁고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협곡
‘시크(As-Siq)를 통과해야만 한다.
길이 1.2킬로미터의 시크는 지각변동에 의해 거대한 바위가 갈라져 만들어진 길이다.
좁게는 2미터까지, 높게는 200미터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바위틈인 시크는
페트라의 미모에 걸맞은 신비로운 입구가 아닐 수 없다.
Enya - May It Be (Official Lyric Video)
사막에 꽃 피운 붉은 ‘바위 왕국’
페트라는 요르단 남서부 내륙 사막지대의
해발 950미터 고원 바위산에 남아 있는 도시유적이다.
향료무역으로 이 일대를 장악했던 아랍계 유목민인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고대 도시다.
예로부터 이곳은 사막의 대상이 홍해와 지중해를 향해 갈 때
반드시 거치는 교역의 중간 기착지였다.
그 지리적 이점 때문에 이들은 사막의 한가운데에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 틈새에 도시를 건설했다.
뱀처럼 구불거리는 좁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들어간 곳에
극장과 목욕탕, 완벽한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도시가 숨어 있다.
한동안 번성하던 나바테안 문명은 2세기께 이곳을 점령한 로마가
교역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급속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6세기경 발생한 지진에 의해 도시 전체가 흙으로 묻혀 있다가
19세기 초반에야 재발견된 곳이다.
요르단 사막의 바위도시, 페트라 [Petra Jordan]
페트라는 나바테아인(Nabataean)이 건설한 산악도시이다.
나바테아인은 BC 7세기부터 BC 2세기경까지
시리아와 아라비아반도 등지에서 활약한 아랍계 유목민이다.
이들은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붉은 사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를 깎아 도시를 건설하였다.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바위'를 뜻하니 페트라는 바위의 도시인 셈이다.
잊혀진 도시, 1200년 만에 그 모습을 드러내다
다마스쿠스에서 카이로로 향하는 탐험 도중 젊은 탐험가 부르크하르트는
페트라에 엄청난 유적이 숨겨져 있다는 말을 듣고 아랍인으로 변장한 후 이곳을 찾아 나선다.
1812년 그는 잊혀진 도시를 발견하였고, 이후 그의 여행기를 통해 페트라를 유럽에 알렸다.
하지만 부르크하르트는 풍토병을 얻어서 1817년 33살에 죽는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더불어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이곳은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 -
마지막 성배"의 촬영 장소로 유명해졌다.
페트라는 이 도시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엄청나게 넓다.
아직도 모래와 온갖 흙속에 파묻혀진 건물은 엄청나며
1926년에 발굴 복원하여 100년이 되어가지만,
고작 20%도 안된 발굴이 이뤄졌다고 한다.
덕분에 2000년대에도 고대 로마풍 모자이크화 그림이
아주 세세하게 남은 건물이 발굴되는 등,
엄청난 유적지가 파묻혀진 넓은 곳이다.
아랍과 지중해, 북아프리카, 중동을 거친 무역로로서 중요한 거점이며
물이 풍부하고 큰 도시문명인지라 엄청난 무역 중간지로 전성기를 누렸기에
곳곳에 발굴된 건물을 봐도
집, 극장, 온갖 숙박 시설, 신전, 학교 등으로 파악된 건물이 엄청 많다.
이 곳은 인구가 적게는 2만 이상, 많게는 5만 이상이 산 곳으로 추정되는데
발굴할때마다 나온 건물들 규모를 보면 5만 이상이 전성기 때 살아갔으리라 예측되는데
사막인 지역적 특징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크고 넓은 도시였다.
Jordan의 고대도시, 페트라 (Petra)
요르단 남부에 있는 대상 도시인 페트라는 아랍계 유목민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해발 950m의 산악도시로서 최고 높이 300m의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좁은 통로와 골짜기가 많은 산 중턱 바위를 반쯤 깎아내고 세워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고 유적지중 하나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고있으며
아직까지 4분의 1밖에 발굴되지 않은 광활한 유적지이다.
찬란한 고대도시 요르단 페트라는 중동의 숨은 보석으로
1985년 유네스코(UNESCO)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페트라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은 무덤인데,
많은 무덤이 정교한 겉모양을 가지고 있어 지금은 거주지로 쓰이고 있다.
기원 후 106년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점령당하였고,
4세기에는 콘스탄틴에 의하여 기독교화되었다,
6세기에 있었던 큰 지진으로 인하여 함몰되어 폐허화되었다가,
1812년에 스위스의 작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가 여행중에 발견하였다.
페트라 유적지 입구
진 블록(Djinn blocks)이라 불리는 이곳은 무덤길이자 페트라 유적지의 입구이다.
처음엔 물을 저장하는 저수지로 알려졌다가 후에 무덤으로 밝혀졌다.
왼쪽에는 둥글둥글한 모양이, 오른쪽에는 직각 모양의 형태가 있다.
시크(Siq) : 좁은 협곡을 지나는 통로
페트라로 들어가는 폭 2m 정도의 좁은 협곡으로 그 길이는 약 2km에 달한다.
코끼리바위
알 카즈네 신전 :
페트라의 하이라이트인 보물창고이자 아레타스3세 왕의 무덤
아랍어로 '보물창고'를 뜻하는 그리스식 건축양식의 건물.
기원전 1세기 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영화 인디아나존스 <최후의 성전> 편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페트라 안쪽으로 1km 이상 들어가면 파라오의 보물창고라는 뜻의 ‘알카즈네’라는 건축물이 있다.
정면 전체를 바위 위에 조각했다.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이다.
‘파라오의 보물’이라는 뜻의 알카즈네라는 이름은 백위 인족들이 붙인 것이다.
백위 인족들은 조각상 뒤쪽으로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 때문에 알카즈에 위쪽의 조각상에는 사람들이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전투를 벌인 흔적인 총탄 자국이 있다.
알카즈네는 그리스 건축양식이 돋보인다.
그리스신화의 신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페기먼트 형식의 양식이 사용되었다.
이집트와 그리스의 건축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나바테인은 이집트인이나, 그리스인은 아니다.
알카즈네는 원래 모래가 덮여있던 곳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특별한 것은 없으며 커다란 방들만 있다.
이 건축물의 용도는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데,
대체로 나바테아왕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암벽 속에서 꽃피운 나바테아 문명
페트라는 이집트, 아라비아, 페니키아 등의 교차지점에 위치하여
선사시대부터 사막의 대상로를 지배하여 번영을 누렸던 캐러밴 도시이다.
좁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가면 극장과 온수 목욕탕,
그리고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현대 도시 못지않은 도시가 유령처럼 버티고 있다.
협소한 통로와 협곡으로 둘러싸인 바위산을 깎아 조성된 페트라의 건물들은
대부분 암벽을 파서 만들어졌다.
관광객을 태우기 위해 주차장에 대기중인 카멜택시(?)
페트라에서는 당시 건축도구 등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위에서부터 깎아내려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완공된 건축물들을 보면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위에서부터 조각해나가다가 끝까지 완공하지 못했던 것들이 남아있다.
바위의 품질이 좋지 못할 경우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공사를 진행하기 전에 암벽을 고르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바람에 의해 풍화된 곳이 작업하기 좋은 곳으로 간주됐다.
암벽을 조각한 뒤에 돌림띠를 만들어 조각하고 그 위에서 나머지 조각작업들이 진행된다.
이렇게 윗부분이 마무리되면 점차 아랫부분을 향해 조각해나가고,
이런식으로 맨 아랫부분까지 진행됐던 것이다.
조각 방법은 암벽에 나있는 균열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바위틈에 나무를 심고 물을 주어 자라게 하면
나무가 팽창하면서 압력으로 암벽이 갈라지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이런 방식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었는데
첫째 발판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고 둘
째 별도의 채석 없이 돌을 구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떨어진 암석들을 다듬어 다른 건축물에 사용해왔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노력으로 페트라에서는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건축물이 조각됐다
페트라에서는 두 가지 암석만이 사용됐는데 사암과, 석회암이다.
그런데 원형 극장 안에서 대리석이 발견된다.
요르단에 대리석 채석장이 없다는 점을 상기하면 놀라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면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높이 6m 가량의 화강암 기둥이 발견된다.
반경 100km 이내에 화강암 지대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역시 놀라운 것이다.
당시 사용된 대리석과 화강암은 이집트에서 수입해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어떻게 이곳까지 운송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발굴
세월이 흐르면서 협곡에 감춰진 이 고대 도시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19세기 초에 들어서야 스위스 탐험가인 요한 부르크하르크에 의해 다시금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이어 스위스와 프랑스도 탐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감춰져 있다보니 훼손된 건축물도 상당했는데
아직도 모래를 걷어내고 보수해야 할 부분이 많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최초의 고고학 발굴 작업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현재까지 약 800여개의 지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자료가 부족해 유물들이 어떤 것들이었는지 밝혀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발굴 작업은 지금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지만
현재까지 발굴된 면적은 도시 전체의 10%에 지나지 않는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상인들의 휴식처이자 상거래 장소로 사용되던 장소가 있었고,
남쪽 와디럼 사막에서 발견된 암석에 새겨진 문구를 통해
나바테아인들의 영향력이 이곳에 미쳤음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나바테아인들이 건설했던 상업 대도시들의 이름이 새겨진 유적들이
지금의 사우디까지 발견되고 있다.
현재
현재 페트라에는 배두인족이 살고있다.
전에는 배두인족들이 페트라 내부에 거주했지만 지금은 더이상 허용되지 않으며,
그 주변 지역에서만 거주할 수 있다.
1980년대 페트라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더이상 배두인족들이 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1985년경 배두인족이 이곳에 거주하던 사람은 대략 200가구 정도 되었고,
현재는 텐트에서 살고있다.
배두인족들은 염소들에게 좀더 좋은 장소를 찾아 이동하기도 한다.
염소들을 먹이기 힘들면 다른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추운 겨울엔 동굴안 무덤 안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배두인족들은 페트라에서 수킬로미터 떨어진 고산지대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다.
하지만 페트라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많은 배두인족들이 관광지들 사이에서 일하거나, 발굴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페트라와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유적지 보호에 대한 논쟁이 있었으나,
500명이 넘는 이들이 대대로 아득한 옛날부터 살아와
이들은 요르단 정부 허락을 맡고 특별히 거주가 허락된다.
이들을 무턱대고 내쫓을 수 없기 때문이고
그랬다가는 베두인들이 당연히 반발하기 때문이다.
대신, 건물 내부는 개조나 리모델링이 엄격하게 금지되었기에
이들이 사는 집은 아득한 옛날풍 내부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창문이나 문에 한정하여 새롭게 바꾸는 것이 인정된다고 한다.
당연히 건물을 빌려 사는 것이기에 집을 팔 순 없다.
그리고 막상 가 보면 화려한 외양과 달리 속은 텅텅 비어서
안에도 뭔가 있을까하고 들어오다간 실망하기 일쑤이다.[7]
그러나 저 외양만으로도 와서 볼 만한 매력이 충분하다.
무엇보다 밤에는, 유적을 보호하고자 전기 시설이 별로 없기에,
촛불이나 횃불을 켜서 관람하게 하는데 정말 환상스럽다.
인공 불빛이 거의 없어서 밤하늘에 엄청난 별이 가득 보인다.
알 카즈네의 환상적인 야경
로마의 원형극장
왕족들의 무덤
요르단 페트라. 페트라는 나바테안 왕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기원전 2세기에서 서기 5세기까지 영위하다가
7세기부터 점차적으로 쇠퇴하여 지진등의 자연재해로 묻히게 된다.
묘지문
4층 무덤군
알카즈네 옆쪽으로 가면 파인 구멍들이 많은데 이것들은 당시에 전부 공동묘지였다.
각각의 묘지를 들여다보면 바닥에도 무덤이 파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부 묘비들은 거대한 조형물 뒤로 가려져있는데 전부 기원전 1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묘지들은 상당히 넓은 면적에 걸쳐 있다.
붉은색에서부터, 푸른 빛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암석의 빛깔은 사막 한 가운데 버려진듯
홀로 위치한 이 도시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희생의 산당(High Place of Sacrifice)으로 올라가면 도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
2000년 전에 만들어진 수천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예배당이 있다.
이들은 희생의 산당(High Place of Sacrifice)에서 신에게 재물의식을 기리기도 했다.
희생의 산당(High Place of Sacrifice)에는 재단이 있는데,
동물의 피가 흐르던 도랑물까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희생의 산당으로 올라가는 계단길
희생의 산당의 제단
페트라는 오랜 세월동안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묘지로 간주됐다.
600개 이상의 묘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각된 무덤들은 4개의 산기슭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우선 북동쪽에 있는 왕관묘지에서는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묘비들이 발견된다.
남동쪽에서 발견된 묘지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서쪽에서 조성된 묘지는 단구 위에 조성되어 있고, 남서쪽 기슭에서도 묘비들이 발견된다.
이처럼 많은 묘비들이 발견된 것은 사실이지만, 페트라는 단순 묘지는 아니었다.
엄연히 인구 25,000명의 도시였고, 고고학자들이 이 사실을 밝혀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로마시대 시가지, 열주, 광장
페트라는 기원전 7세기부터 2세기까지 이 지역에 살았던 나바테인들에 의해 해발 950m에 건축된 산악도시다
알 데이르 : 산상 수도원
수도원
이 건물의 원래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내부 벽면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어 수도원으로 추정한다.
이 부근은 기독교인들이 바위 굴 속에서 은둔생활을 했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계단 800개를 올라가면 페트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알데이르’에 도착한다.
알데이르는 ‘수도원’이란 뜻이다. 나바테아인들의 주요 성지 중 한곳으로 추정된다.
정면 높이가 최소한 40m 이상이다.
페트라에서 알카즈네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첫댓글 이번엔 페트라에 대하여 상세히 올려주셨네요 . 반가운 마음으로 꽤나 오랜시간
머물며 즐감 그때 그감격을 다시 떠 올 려
보았답니다 덕분에
감사드려요 .
페트라 모래바람 일으키며 낙타를 빌려타고 한줄로 줄지어 들어갑니다 얼마 안가
모두 내려 걷기관광시작 놀랄 장관이 끝도없이 펼쳐져 있음에 여기 저기 둘러보다 지쳤답니다 .
제가 더욱 놀란것은
동굴마다 바위마다
사암의 색깔이 마치 무지개지층을 보는양
너무도 신기했었답니다 . 배두인들의 생활모습도 마음한켠으로
쨘해 보였구요 .
여기서도 인증샷만으로 마무리 ? 이스라엘 성지순례차 갔었던 코스중 한 곳이었지요 .
네 한 군데씩 올려보려고 합니다
페트라 정말 멋진 곳입니다
저는 아직입니다만...
컴사랑님 인물이 참 좋으세요
인물뿐만 아니라 관상도 최고입니다
아주 부귀할 상이십니다
제가 전에 공부를 조금 하다 말았습니다
젊어서는 훨씬 더 좋으셨을 듯합니다
조상들의 덕으로 먹고사는 요르단 사람들
페트라를 건설한 사람들은 나바테아인들
현재의 요르단 사람들과는 다른 종족인 듯합니다
늘 따뜻한 댓글로 격려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청솔 와 오늘이 최고의 날
이네요 인물에 관상에 과찬 말씀 넘 기쁩니다 . 돈이 모이면
땅이나 집을 샀어야 경제부자가 ? 되었을 텐데 여행의 마력에
빠져 기회만되면 무조건 짐을 챙겨 나섰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전혀 후회스럽지않고 뿌듯한 느낌이 살이있는것 같아요 마음속 재산으로요 .좋은 재료 올려주신 덕분에 모두 감사드립니다 .
@컴사랑 컴사랑님께서 기쁘시다니 제가 더 기쁩니다
저는 거짓말도 과장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표현하지요
컴사랑선배님 인물이 정말 좋으세요
인물보다 관상이 훨씬 더 좋으시구요
네 저도 기억납니다
전에 나이아가라폭포 글 올렸을 때랑
얼마 전에 타지마할 관련 글 올렸을 때도
인증샷 올려 주셨지요
여행을 참 많이 하신 걸 느꼈답니다
저도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주로 업무차 갔던 여행 들입니다
짬짬이 관광도 하긴 했지만요
살아있는 마음속 재산이 얼마나 소중한지요
저도 요즘 추억을 꺼내 반추하는 재미로 삽니다
나이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맞는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반가워요 이 사진을 보니..
그런데 어떻게 이 웅장하고 신기한 건물을 지었을까요.
당시에 요르단이 얼마나 대단했나를 알려줍니다
그 옛날에 ...정말 많은 사람들의 뼈골 빠지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하네요.
정말 대단합니다.
이런 귀중한 유산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정말 대단한 작업입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파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흔적이 남아있다고 하네요
어쨌든 대단한 작업입니다
감사합니다
고대 유적들 사진과 함께 보며 긴 설명 이지만
재미나게 봤어요
외국의 경치보다 그나라 유적을 더 좋아해서 여행도 몇군데 그렇게 다녔답니다
페트라 멋져요 최후의성전
영화도 봤지요
재미나게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제가 긴 설명을 좋아합니다
뭔가 배우는 것도 있는 듯해서...
설명없이 사진만 있는 것도 허전하고
사진없이 설명만 있어도 왠지 공허하지요
사진과 간단한 설명이 있으면
바로 이해가 되드라구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인 유적을 보는 걸 좋아합니다
페트라는 경이 그 자체지요
사막 한 가운데 그런 유적이 있다는게
아직 10%밖에 발굴을 못했다고 합니다
나바테아인 들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