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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박사모 -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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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모 문학방 월드컵
푸른 돌(靑石) 추천 1 조회 21 22.11.24 19:39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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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2.11.24 20:12

    첫댓글 1.드디어 월드컵 시절이 돌아왔다.
    2002년 4월에 송파구 잠실 S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시작했다. 그 해 6월에 17회 한일 월드컵이 열렸다. 그 열기는 정말 대단했다. 그 전에 10년을 했던 전기온돌 난방 사업을 접고 2년간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2년만에 자격증을 땄다. 그 당시 2년간 광고는 일절 않고 소개로 들어 오는 일이나 A/S만 처리하며 공부를 했다. 시험치기 전 마지막 두 달 전에 학원 문제풀이 반에 등록을 하고 전력투구 했다. 과목도 많고 특히 1차의 민법과 2차 공법이 어려웠다. 거의 모든 수험생이 겪는 고충이었다.
    학원서 일요일마다 특강을 듣고 모의고사 시험도 봤다. 그런데 모의고사 시험 성적이 영 션찮았다. 겨우 카트 라인 60점에서 간당간당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안되겠다 싶어 시험일 보름 전에는 2차 과목을 접고 1차에만 주력했다. 자칫 한꺼번에 밀어 부치다 1차가 떨어지면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 해서 가까스로 1차에 과락없이 평균 60점으로 합격을 했다. 그 후 2차 시험도 그런 식으로 시험 두 달 전에 학원에서 문제풀이 반 들으며 마무리를 했다. 더운 여름인데 전업 주부들도 많았고 젊은 남자분들도 많은 데에 놀랐다..=>

  • 작성자 22.11.24 20:12

    2.어느 날 아는 교회 집사님이 자기네 교회 유아방에 전기난방 공사를 해달란다.
    그런데 하필 2차시험 하루 전에 해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주일에는 좀 어렵다고 했더니 대뜸 "사장님도 내일 중개사 시험 보는구나?" 하며 웃었다. 그렇다 했더니 그래도 안된다는 것이다. 자기네 교회 목사님은 한 번 말 떨어지면 천하 없어도 그대로 따라야 한다며 꼭 해달라고 했다. 도리 없이 혼자 해도 될 일감인데 일꾼을 불러 처리해줬다. 그러고 나서 밤을 새우다시피 2차시험 과목을 총 정리를 했다. 아침에 시험장 가기 전에 조용히 묵주기도 5단을 드렸다.
    긴장된 마음으로 시험을 보니 진땀이 다 났다. 차근차근 문제를 풀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30여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공법이 지문도 길고 어려운데 남은 문제가 3~40개다. 이대로 풀다 간 시간이 모자라겠다. 문제지에 정답을 체크만 했기에 다시 답안지에 옮겨 적어야 했다. 안되겠다 싶어 그 담부턴 문제를 읽고 바로 찍었다..=>

  • 작성자 22.11.24 20:12

    3.시험 보고 학원서 모범 답안지를 샀다.
    사무실 와서 긴장된 마음으로 채점을 했다. 역시 공법이 문젠데 앞 부분은 60점대가 채 안 나왔다. 이러다 공법 때문에 자칫 떨어지나 싶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비교적 천천히 읽으면서 푼 데 보다 읽고 바로바로 찍은 데서 점수가 더 잘 나와 80점대가 넘었다. 그래서 합계를 내보니 과락 없이 평균 60점이었다. 1차에 이어 2차도 또 평균 60점으로 합격한 것이다. 아마 전국서 2년에 걸쳐 1,2차를 다 같이 평균 60점으로 합격한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학원에 전화하니 "합격을 축하합니다"며 축하 인사를 했다. 그래도 혹시 답안지에 이기(移記)하면서 한 문제라도 잘 못 적었다면? 하면서 불안했다. 성당 레지오 회합 날 축하주도 한 턱 냈다.
    합격자 발표일에 구청 지적과에 전화를 했다. 여직원이 뜸을 좀 들이더니, "아저씨,기똥차네요!" 한다. 아가씨가 보기에도 1,2차를 같이 60점으로 합격한 것을 아마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그런 말을 했지 싶다. 그 다음 해 2002년 4월에 잠실 S동에서 개업을 했다. 경험 많은 여직원을 실장으로 고정급 100만원을 주고 3개월을 채용했다..=>

  • 작성자 22.11.24 20:13

    4.어제 오후에 정릉을 갔다.
    20여년이 지났으니 너무 많이 변했다. 우선 동네 입구부터 헷갈렸다. 어디나 재개발이 되면서 아파트촌이 되었다. 길이 헷갈려 이전에 미아리 고개였던 도로를 쭉 넘어 갔다. 길이 확장되어 왕복 4차선으로 바뀌었고 재개발이 되어 아파트촌이 되어 이전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고등학교 동창 중에 미아리에 한 친구가 살았다. 포장도 안된 비탈길을 한참 올라가다 좌측에 판자촌이나 다름 없는 낡은 구옥 집들이 있었다. 이미 고인이 된 친구인데 장남 역활은 제대로 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동생들 다 공부시키고 출가 시켜 내보냈다. 부인이 강남 부잣집 고명딸이었는데 속아서 결혼했다며 처음은 처갓집 설움을 좀 받았다. 그래도 반듯하고 착하고 열심히 사니 나중에는 둘도 없는 사위가 되었고 아들 딸 하나씩 낳고 잘 살았다. 그 당시 잘 나가던 H양행 직원이었다. 그런데 H양행이 모 그룹인 H건설이 인수해 구조조정을 하면서 창원으로 발령이 났다. 일단 지방으로 내려가라 그렇게 만류했는데 기어이 사표를 냈다. 화사에선 즉각 수리를 했고 그 후부터 이 친구는 내리막으로 치달아 결국 소식이 끊어진 친구가 되었으니 지금도 아쉽고 안타깝다..=>

  • 작성자 22.11.24 20:13

    5..2002년 4월 초에 개업했는데 5월 30일에 17회 한일월드컵이 시작됐다.
    역대 월드컵은 물론 주요 국제 스포츠 대회 중 두 개의 나라에서 처음으로 공동개최한 대회였다. 그리고 21세기에 열린 첫 번째 월드컵이자 아시아에서 열린 첫 월드컵이었다. 한 달 내내 월드컵으로 대한민국이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더구나 승승장구로 올라 드디어 4강까지 올랐으니 대한민국이 스포츠로 하나되는 축제가 되었다. 그 당시 IMF(외환위기)를 채 벗어나지 못한 암울했던 분위기를 모두 걷어내고 온 나라가 축제 열기로 활기가 넘쳤다.
    광화문에서 시작된 '붉은 악마' 는 한국의 대표적인 축구의 상징 브랜드가 되었다. 유명한 '붉은 악마' 티셔츠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온라인에서 계속 팔리고 있다. 오늘 밤도 광화문에서 '붉은 악마'가 집회 신고를 마치고 대기 중이다. 하지만 얼마 전에 '핼로 윈' 사고로 당국은 긴장 되는 모양이다. 승패에 관계없이 사고없이 집회가 잘 끝났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한국이 우루과이를 꺾고 첫 승리를 기원한다. 우승 후보인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가 뜻밖에 중동의 사우디에 2대1로 패하는 이변이 일어났으니 우리도 승리를 한 번 기대해 보자..^*^

  • 22.11.24 21:20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작성자 22.11.24 21:25

    대~한~민~국~~
    우리 나라가 2대1로
    기필코 이길 겁니다..
    늘 건강하시고 멋진
    날들이 되세요..^*^

  • 22.11.24 22:41

    깊어가는 밤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 작성자 22.11.25 11:29

    오늘도 화창한 날씨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멋진 날들만
    되세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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