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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박사모 -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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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모 문학방 자연의 섭리대로
푸른 돌(靑石) 추천 0 조회 22 23.02.20 17:14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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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3.02.20 17:23

    첫댓글 1.이제 온 천지에 봄 기운이 넘친다. 제주도 유채꽃과 광양의 홍매화도 피고 여기 저기 진달래도 피기 시작했다. 금년 겨울은 혹한과 폭설 없이 넘어 가는가 싶다. 간혹 3~4월에도 눈이 내린다. 얼마 전에 강원도에 제법 많은 눈이 내렸지만 금방 날씨가 풀려 큰 피해는 없었던 것 같다. 서울에 눈이 많이 온 지 여러 해가 된 것 같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뒷골목의 음달이 빙판길이 되어 행인들의 발길이 조심스럽다.
    눈이 드물고 따뜻한 먼 남녘서 자라 눈이 오면 그렇게 좋다. 최근엔 영하 10도 이하의 날씨가 드물고 눈이 많이 내리지도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지구온난화 영향일 것이다. 지금 아이들은 겨울에 눈을 별로 보지 못하고 자랄 것 같다. '아름다운 겨울 동화'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강물이 꽁꽁 얼면 연못이나 계곡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놀았던 유년 시절의 꿈이 사라진다. 우리 아이들이 겨울을 제대로 보고 경험하기 위해서 마치 경주나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가듯이 시베리아나 몽골로 단체 겨울 여행을 가야 할지 모르겠다. 지구온난화가 재앙일지 축복일지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축복일 것 같지는 않다. 과연 인류가 지구온난화를 되돌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 작성자 23.02.20 17:24

    2.지난 해 9월에 동네 동업자 친목회서 남해안으로 2박3일 일정으로 단체 여행을 갔다. 관광버스 한 대에 30여 명이 타고 아침 일찍 출발했다. 여수에서 1박 하기로 하고 호텔 방을 잡고 시내 관광을 나섰다. 여수라 하면 가장 많이 알려진 오동도를 갔다. 오동도는 동백나무 자생지로는 국내서 가장 큰 군락지다. 오동도에서 보면 고향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이미 다리가 셋이나 놓였는데 여수까지 해저턴넬 공사가 착공 되었다. 아마 몇 년이면 국내서 가장 크고 긴 해저턴넬이 뚫린다. 그러면 남해안 한려수도가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관광지로 떠오를 것이다. 아마 남해안을 권역 별로 묶어서 다양한 형태의 관광지로 개발한다면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가 것이다.
    오동도를 걸어서 일주 하였다. 동백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정상까지 갔다. 정상이라야 평지보다 조금 높은 데라 특별한 것은 없지만 어디나 참대 나무와 동백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뤘다. 간혹 동백꽃도 보였지만 겨울철에 제대로 피는 꽃이라 드물게 보였다. 고향서 보면 훤히 보이는 오동도를 이렇게 동백숲 산책을 하니 감회가 새롭다. 초등학교 6학년 가을 소풍 때 오고 처음이니 많은 세월이 흘렀다..=>

  • 작성자 23.02.20 17:24

    3.여수는 상일이네 고향 동네에서 시장 보러 읍내 장보다 자주 가는 곳이었다. 작은 방배로 건너 가 집집마다 분뇨를 쳐주고 배에 싣고 와 거름으로 사용했다. 그 당시는 비료가 귀했고 배급제였다. 해마다 농번기가 되기 전에 집집마다 미리 비료 종류 별로 이장이 신청을 받았다. 비료를 자급자족하기 훨씬 전이라 귀하고 비쌌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막걸리를 지정된 업자만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판매했던 시절이었다. 한 면에 한 두 개의 양조장이 있었고 도가 집은 면 내서 알아주는 부자고 권세 있는 집이었다. 도가 집마다 맛이 다르고 나름 특색이 있었다. 재료를 무엇으로 쓸지, 누룩과 술 담그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위 매형이 도가 집에서 기술자로 10여년을 일했다. 그 당시 상일이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인데 어쩌다 들르면 양조장에서 나는 막걸리 원액의 냄새가 진동을 했다. 술을 일절 못 했던 매형이 어떻게 막걸리 도가 집에서 10년 이상을 일했나 싶다. 위 누님 세 분 중에 막내 누님 부부 내외가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그 도가 집 양조장에서 나던 막걸리 냄새가 난다. 그 매형 내외가 고인이 되어 아련히 먼 옛 얘기가 되었다..=>

  • 작성자 23.02.20 17:24

    4.이전에 둘째 누님네를 자주 갔다. 십리 떨어진 매형네는 발동선으로 고기 잡으러 다니는 어부였다. 농사도 조금은 지었지만 어업이 주업이었다. 그 매형이 상일이를 그렇게 좋아했다. 어쩌다 가면 회 좋아하는 작은 처남 왔다고 좋은 횟감을 가져와 싫컷 먹게 해줬다. 상일이가 회를 좋아하게 된 것이 그 둘째 매형 때문이 아닌가 싶다. 술 못하는 작은 처남을 굳이 막걸리 한 잔을 다 마시게 하면 금방 얼굴이 벌개졌다. 지금도 주량이 많지 않은데 그 당시 학생 시절에는 오죽 했을까. 그렇게 술을 좋아하시던 매형이 여든 넘게 건강히 오래 사셨다. 술을 너무 좋아하고 많이 드셔서 먼저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매형 세 분 중에서 그래도 가장 오래 사셨다. 그러니 술을 좋아 한다고 다 건강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나름이고 체질에 따라 다를 것이다. 맨 위 큰 매형은 술은 물론 담배도 전혀 피우지 못했는데도 간경화증으로 나이 오십 전에 가장 먼저 돌아가셨다. 상일이 할머님은 담배를 그렇게 많이 피우셨다. 그런데 연기를 마시지 않고 그냥 심심하다고 긴 담뱃대에 봉초를 꾹꾹 눌러 담아 뻐끔 담배를 피우셨다. 그야말로 말 그대로 심심풀이로 피우는 심심초였던 것이다..=>

  • 작성자 23.02.20 17:25

    5.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담배 끊기가 술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술은 적당히 술자리를 피하면 되지만 담배는 순전히 자기 자신의 절제와 인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보면 술은 끊어도 금연에 성공한 분들 보기가 더 드문 것 같다. 술은 주변과 대인 관계를 적절히 조절하면 되지만 담배는 순전히 자신의 의지 문제다.
    상일이도 담배를 20여년 간 피우다 끊었다. 언젠가 감기 기운이 있는데 담배를 피우니 기침이 심하게 났다. 콜록거리면서 담배를 계속 피우니 감기가 더 심해졌다. 딸이 어릴 땐 데 베란다에 나가서 담배를 피웠다. 그 때 아이도 태어나고 집에 와서 식구들 눈치 보며 나쁜 담배를 꼭 피워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담배 피우고 더 이상 담배를 사지 말자고 생각했다. 특별히 다짐하거나 각오를 하지도 않았다. 그 날 이후 담배를 한 갑도 사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혼자 끊은 것이다. 간혹 담배 끊으면 독한 사람이라 한다. 그만큼 담배 끊기가 힘든데 끊었으니 보통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상일이는 쉽게 담배를 끊었다. 혹시 지금이라도 금연을 원하시면 그러면 내일부터 담배를 사지 말자. 그러면 절반은 성공이다..^*^

  • 23.02.20 21:53

    깊어가는 밤
    덕분에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한 밤 보내세요

  • 작성자 23.02.21 11:17

    오늘도 날씨가 참 화창한 화요일입니다..
    계절은 점점 봄으로 달려갑니다..늘 건강히
    희망찬 새봄이 되세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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