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식에게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짚어줍니다. 때로는 지시하기도 하죠
아이에게 책 읽어라, 책상 정리해라 하는 부모를 향해 아이들은 종종 그렇게 묻기도 합니다.
엄마 화장대도 더럽잖아, 아빠도 책 안 읽잖아.
흔히 '령'이 안 선다고 하나요.
부모가 본보기를 보여주지 못할 때, 부모의 지시 역시 힘을 잃습니다.
그것이 설령 옳고 합당한 지시라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어떤 주장을 펼치고자 한다면,
반드시 스스로를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말하자면 '령'이 서게 만들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똑같이 요구한다고 가정했을 때 부끄럽지 않다면,
그 요구가 무리가 없다면,
비로소 '령'이 서게 되고 듣는 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겁니다.
사회에서는 언론이 이런 부모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비추며 잘못된 일을 지적하고 올바른 길은 무엇일지 고민하게 합니다.
권력과 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감시, 문제 제기를 핵심으로 삼는 언론에겐
따라서 훨씬 높은 수준의 잣대가 요구 됩니다.
자칫하면 아이에게 반문을 듣게 되는 부모처럼 될 수도 있으니까.
작년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꽤 많은 언론사가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KBS와 서울경제신문은 부정채용 의혹이 일었고,
(사실관계 파악은 해보지 못했지만) 지역 신문이 채용결과를 번복했다는 글도 눈에 띄었습니다.
최근엔 경향신문이 논란의 한 가운데에 섰습니다.
개별 사건들에 대한 잘잘못 판단은 면밀한 조사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내리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적으로 드는 단상은,
그토록 정치 권력에 소통과 투명성을 요구하던 언론이
지원자에게는 왜 이리도 인색한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제가 파악하기로는) 서울 경제신문은 공식 발표로 해명하지 않았습니다.
꽤 설득력 있는 의혹제기였음에도 중간급 기자가
이곳에 해명 아닌 해명글을 올리는 것으로 갈음했습니다.
그 글에서도 의혹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해명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달렸던 댓글을 보면 저처럼 느낀 이가 저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사건은 유야무야 넘어가는 듯 보입니다.
경향신문 논란에서도 제가 주목했던 부분은 똑같습니다.
회사가 지원자를 두고 성차별을 했는지는 더 구체적인 자료로 논리를 따져봐야 할 터입니다.
그것보다, 왜 그토록 (지원자가 해명을 줄기차게 요구했음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는지...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면, 혹은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일이면 입 꽉 다물던
정치인들이 오버랩되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끊임없이 의혹에 해명할 것을 요구했던 수많은 언론사 사설도 뇌리를 스칩니다.
경향신문 기획실장님의 글에서, 그동한 침묵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주장이) 주관적이어서 대응하지 않는게 '오서'님 본인은 물론 다른 당락 지원자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 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오서'님에겐 당연히 '해명'하는 쪽이 예의였습니다.
다른 당락 지원자들에 대한 예의라고 말씀하신 건 아마도,
합격한 남성지원자가 실력도 없는 데 뽑힌 것이라는, 잘못된 시선이 일것을 우려하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해명'은 오히려 그런 시선을 불식시키는 방안이자, 합격자들의 정당성을 확인해주는 길입니다.
제각 합격한 남성 지원자였다면, 오히려 부당한 의혹제기에
회사가 적극적으로 충실히 해명해주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제 사견이지만, 아마 해명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데는,
지원자의 의혹 제기를 그다지 큰 문제로 여기지 않은 탓이 아닐까 합니다.
작은 개인이 내는 목소리, 사회적 파장력도 크지 않고,
겉으로 보기에 얼토당토 않는 주장을 하는 지원자에게
회사는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구 간에 말싸움을 하다가도 궤변을 늘어 놓는 상대에게 대꾸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까.
만약 지원자의 주장이 터무니 없었다면,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본업이 비판과 의혹제기, 감시와 견제인 언론이라면,
정치와 사회를 향해 늘 칼 끝을 들이대는 언론이라면,
같은 방법으로 의혹으로 제기해오는 지원자에게 성실히 해명했어야 옳습니다.
스스로 침묵하는 길은 화장대를 어질러 놓은 엄마가
자신은 정리하지 않으면서도, 아이에게만 청소를 강요하는 일과 같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도 떳떳하지 않은 일에 대해 남에게 왈가왈부하는 격입니다.
그런 언론이라면, 침묵을 일삼는 정치인을 향해
소통능력이 부족하다느니, 투명하지 못하다느니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침묵을 일삼는 정치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답답해 했는지,
속 시원히 말 좀 해줬으면 하고 얼마나 국민들이 바랐는지, 우리는 겪어 봤습니다.
아마 의혹을 제기한 '오서'님도 자신이 제기한 의혹을 조목조목 해명해 주기를 바랐을 겁니다.
앞서 말했듯이, '령'이 서려면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비록 일개 지원자의 의혹이었다고 해도,
회사가 조기에, 적극적으로 해명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짙게 남는 대목입니다.
언론이 이렇다면,, 그 보도 기사들에 령이 설 수 있을까...
또 다른 이유로, 경향신문의 적극적인 해명을 바라기도 했습니다.
언론이 스스로에게 엄격해지지 못한다면, 스스로에게 높은 잣대를 대지 않는다면,
'감시 받지 않는 최후의 권력'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요즘 불쑥불쑥 들 때가 있습니다.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게 언론이라고 볼 때,
'언론'이 잘못한 것은 누가 고발하고, 누가 감시하는 걸까...
우리는 누구에게 언론의 잘못을 알리고, 공론화시켜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걸까...
언론과 언론이 서로를 비판 견제하면 좋겠지만,
지난 사례들을 돌아보면 꿈 같은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래 몇달간 있었던 사건들이 (부정채용 의혹, 여성비하 발언 기자 사건 등)
꽤나 굵직한 사안이라 생각됨에도, 방송이나 신문보도로 대중에게 얼마나 알려졌는지 돌아보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만약 공기업에서, 정부 부처에서, 삼성에서 부정 채용 논란이 있고, 성차별 논란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조용했을까. 언론들은 앞다퉈 보도하지 않았을까..
어제였나요?
어느 회원이 추적60분 열정페이편을 보고 한줄메모장에 적은 감상평이 유독 인상 깊었습니다.
방송국에서 고발하는 대부분의 사안이 방송국에도 있다는 사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현 언론의 어두운 모습들을 짚어낼 수 있습니다.
가령 어뷰징 기사들의 폐해, 인터넷 신문의 수많은 오탈자, 과장보도, 선정성 보도 등등등...
한 때 자정되지 않는 그런 것들을 보다가 친구와 이런 얘기를 주고 받은 적 있습니다.
정말이지, 언론을 감시하는 '언론의 언론'이 필요하다고.
이를테면 각종 언론사별 잘잘못을 보도하는 그런 언론 말입니다.
누구에게도 지적받지 않는 언론이 때로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느껴져 참담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것들은 누가 세상에 알리고 누가 시정을 요구해야 할까.
우스갯소리로 했던 '언론의 언론'은 사실 어불성설입니다.
그렇게 되면 또 그 언론을 감시하는 무엇에,
또 그 무엇을 감시하는 또다른 무엇이 필요합니다.
그 악순환을 끊으려면 우리 사회 '비판의 눈'을 자처하는
언론 스스로 더 엄격해지는 길밖에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가 잘못한다고 가정집에 시부모를 모셔올 수는 없으니까.
부모가 아이에게 본보기를 보일 만큼 '바른 생활'을 하면 될 일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훈육하려면 꼭 그래야 합니다.
SBS 박선영 아나운서가 하차하면서 했던 말이었나요
진실을 위해 뛰고 있는 언론인들이 아직 많이 있음을 알아달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엊그제 무한도전에서는
아직도 아이들을 사랑하며 진심으로 일을 대하는 어린이집 교사가 많다고
힘주어 강조했습니다.
일부 실망스런 모습보다,
언제나 더 많은 수의 긍정적인 모습이 존재한다고, 아직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싸잡아서 비난하는 건 항상 지양되어야 할 터입니다.
낙담하지 않고, 여전히 미래 언론인으로서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힘이겠죠.
아무쪼록 여러 논란이 상호 적극적인 협력하에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라 봅니다.
첫댓글 멋진 글입니다
멋진 글이네요.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말투에 고개 끄덕끄덕하며 읽었어요
언론이 청소 노동자 처우에 관해 한창 떠들 무렵, 모 방송국에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휴게실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좁은 청소도구보관실에서 청소노동자 3분이 비좁게 앉아 쉬고 계신걸 보고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청소노동자 관련 고발 보도한 기자들, PD들도 지나다니면서 그 광경 한번쯤 봤을텐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무 생각도 안들었을까요?
열정페이 문제도 그렇고, 청소노동자 문제도 그렇고, 비정규직 문제도 그렇고. 언론이 고발하는 많은 부조리들, 사실 언론사 내부에 고스란히 존재하고 있죠. 언론 스스로 더 엄격해져야 한다는 의견에 정말 백번 공감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3.1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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