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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왜 겸손한 자를 구원하실까? >
[벧전 5:5]
*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사 57:15]
*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시 149:4]
*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다음의 물음에 스스로 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겸손이란 무엇에 대한 겸손함일까요?
# 도대체 겸손이 구원과 무슨 연관이 있기에 겸손한 자를 구원하신다고 하시는 것일까요?
# 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겸손과 이 겸손은 다를까요, 같을까요?
# 이 말씀은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에게만 해당이 될까요, 아니면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해당이 되는 것일까요?
# 이에 대한 답을 몰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먼저 마지막 질문의 답부터 말씀을 드리면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왜인지 설명 드립니다.
겸손이란 말씀 앞에서 겸손한 것을 말합니다. 왜 말씀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 것이냐 하면 사람은 누구든지‘구원의 길’과‘구원의 방법’까지는 알 수 있어도, 마음으로 땅에서 하늘에서의 날을 사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길을 봄’과‘방법을 앎’은 정신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 정신으로 성경을 읽고, 설명을 듣고, 이해를 했다고 해서 땅에서 사는 사람의 마음이 자동으로 하늘에서의 날을 사는 사람의 마음처럼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현재 예수를 믿는 사람이거나, 혹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혹은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의 마음은 지금 평안 중에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늘 고민하며, 늘 마음에 돈에 대한 염려도 있고, 자식에 대한 걱정도 있으며, 장래에 대한 불안함도 있습니다.
당신이 가령 인생을 많이 산 나이 지긋한 장로님이라고 합시다. 예수 믿는 사람도 맞고, 죽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을 하고 일평생을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당신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여기면서’살 뿐이지, 실제로 당신의 육신의 아버지에게 가지고 있는 그 마음을 동일하게 하나님께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구원의 길과 방법을 알되 실제로 구원되었음에 대한 확증이 마음에는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저 막연히 구원 받을 것이라고 당신이 당신의 의지로 믿고 있는 것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그와 같은 마음의 상태, 땅에서 하늘에서의 날을 사는 마음의 상태를 만들어 주시지는 못하실까요? 만일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리스도의 후손들의 삶을 땅에서 하늘에서의 날과 같게 할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부도수표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현재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도수표로 알고 있으면서, 그 수표를 쥐고 이것은 은행에 가지고 가면 현금으로 바꾸어 줄 것이라고 다만 '스스로 믿고 있는 것'뿐이라는 말입니다.
화장실에 가서 아랫도리를 내리고 자기 마음에 솔직하게 “나는 마음에 하나님이 주신 평안이 있나, 그리고 나는 구원을 받은 것이 분명한가?" 마음에 물어 보십시오.
제가 예를 들면서 나이 많은 장로님을 전제했습니다. 마음은 성장하는 것이 아니어서 나이를 먹음에 따라서 다르게 가지고 있는 연륜에 의한 마음은 가짜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속이고 있는 것이 정신 연령에 준한 마음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연륜에 의한 마음의 나이는 정신 연령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마음은 나이를 안 먹는 것입니다. 어린 학생이 '구원이 어떤 거지?' 하는 생각과 오십 된 장로님이 '구원이 어떤 거지?' 하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을 보십시오.
당신은 구원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구원 받았고, 그 구원이 무엇이라고 남에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저 “내 마음은 평안해.”한다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 당신은 인생이 생각하는 마음의 평안과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평안이 어떻게 다른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자신에게 물으십시오. 혹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면 그것이 말씀에 의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스스로의 자각에 의한 것이었는지도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말씀에 의한 것이었다면 어떤 말씀에 의한 것이었는지도 당신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말씀이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을 마음에 두고 있는 지금 당신은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안식이란 ‘다시 나감이 없는 상태’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말씀을 안 후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평안한 상태이어야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말씀 앞에서 마음이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아무도 구원의 상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백퍼센트 아무도 그 구원의 상태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음이 겸손한 자, 즉 '하나님 저는 구원이 뭔지 모릅니다, 하지만 말씀을 따라가면 구원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또 땅에서 하늘에서의 날과 같게 하신다고 하셨으니 말씀을 따라가면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만드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는 마음이 있을 때에만 말씀 안에서 구원의 길을 찾고, 안 찾아졌으므로 찾아 다니는 중에 땅에서 하늘에서의 날을 사는 방법인 마음의 법을 만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이 지나가는 사람의 마음인지 구원의 길을 찾는 마음인지는 필자가 모릅니다. 만일 구원의 길을 찾는 사람의 마음이라면 '나는 구원의 길을 모릅니다.' 하는 마음이 있었으므로 하나님이 성령의 법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이 가난한 것입니다.
스스로, '나는 이렇게 신앙생활을 많이 했는데도 불구하고 왜 아직도 구원이 무엇인지 안 느껴지는 것일까, 왜 나는 구원을 받은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머릿속은 세상과 합해져서 떨어져 나올 줄 모르는 것일까?'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마음이 가난한 것이고, 또 그 마음이 있어야만 말씀 앞에서 겸손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인생은 헛된 거야, 살아 보니 아무것도 없어, 나는 그만 살고 싶어, 하지만 한 번 헛된 인생 말고, 또 다른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 이대로 그냥 가기에는 너무 허망해.'라는 생각을 하고, '혹시 성경에는 그 해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마음을 다스리는 말씀을 보고 '여기에 과연 길이 있나보다.' 하고 말씀 앞에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지면 그에게도 구원의 기회를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가르침인 마음의 법엔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게 하시는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마음으로 받으면 마음이 저절로 세상에 속한 것들에 대해서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머리로 먼저 이해하고, 그 다음 마음으로 '그래 맞아!' 하고 인정이 될 때 마음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따라서 진도를 나가다 보면 어느덧 성령의 가르침을 받기 전의 자기의 상태가 변해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전에는 고민이던 것이 어느덧 고민이 아닌 상태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상황은 바뀐 것이 없는데 마음은 그 고민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떨어짐이 자신의 노력으로 된 것이냐 하면 결코 아닙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정신의 이해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싫은 사람을 보고 좋아해야지 한다고 좋아집니까? 안 좋아집니다. 원수를 사랑해야지 한다고 사랑해 집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마음은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성령의 가르침인 말씀 앞에 자기를 낮추고 마음으로 제시하신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면 결코 마음에서 세상을 향한 마음은 지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에서 세상을 향한 마음을 지우면서 나아가는 것이 마음에 있는 흠을 지우는 것입니다. 곧 성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지나야만 그 마음에서 온전히 세상에 속한 고민들이 전혀 없는 상태가 될 수 있고 그것이 온전히 공중 나는 새처럼 사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공중 나는 새처럼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말씀만을 따라 살지 않으면서 자기의 필요한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 다 채우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 정신으로 자기 마음에게 사기를 치는 것입니다.
당신이 누구이든지 관계없이 성령의 가르침을 온전히 따라서 길을 다 가지 않은 당신은 반드시 구원이 무엇인지 인지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혹 안다고 생각하거든 마음에 물어 보십시오. 당신의 마음이 세상과 온전히 떨어져 있는지 말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거룩한 상태인지 말입니다.
거룩하지도 않으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노력하면서 산다고요?
언제까지요?
앞으로 몇십 년 뒤에는 거룩해질 것이 틀림없습니까?
성령의 가르침을 따라서 다 가기 전에 절대로 구원의 확신을 갖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분명히 땅에서 하늘에서의 날, 땅에서 '생각으로가 아닌 마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고 살 수 있는 날을 살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과연 성령의 가르침을 따라가면 실제로 마음으로 하나님을 뵙는 것이 가능한지 일단은 마음을 말씀 앞에서 겸손히 낮추고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그리 오래지 않아서 마음으로 느끼게 하실 것입니다.
[마 5:8]“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는 실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마 5:3] “천국은 마음이 가난한 자의 것이라.” 하신 말씀도 잘 생각해 보십시오.
마음이 가난한 상태는 육신이 살아서 사고를 하는 상태입니다. 그렇게 육신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천국은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 경험이 있는 상태가 될 때 땅에서 하늘에서의 날을 살며 육신이 죽든지, 살든지, 어떤 일을 만나든지 평안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안식에 드는 것입니다.
그 길이 ‘낮아짐과 비움’의 길이므로 잠언은 그 두 가지에 대하여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이렇게 성령의 가르침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당신의 어깨 위에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가 있습니까?
당신은 마음으로 당신 자신을 부인했습니까?
마음의 법을 따라가는 길에서만 자기 십자가가 지워지고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가 없고 또 부인이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길에서 가장 먼저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이 말씀 앞에 자기를 낮추는 겸손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자들을 모으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첫댓글 예천불지를 참 길게도 썼네.
이런건 신천지교회가서해야 효과가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