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 있으믄 노지딸기 나와요.
울집 마당에 딸기꽃 피고 있어요." - '러브러브' 님 말씀이다.
"진짜 딸기는 노지 딸기지유.
태양볕을 흠뻑 먹고 자란 노지 딸구가 맛은 쵝오!지유." - 딸기벌레 박통 왈,
어머니께서(어쩌다 보니 충청도 산골에서 하늘만 바라보고 살던 촌놈이
졸지에 수원시로 중핵교 유학을 나오게 되었지요)
딸기밭에 딸기 따는 일(5월 말에서 7월 초까지, 그 땐 노지딸기만 있었지,
지금처럼 비닐하우스 딸기는 없던 시절이었죠)을 품삵을 받고 다니셨는데
딸기밭 주인장께서
하루에 한 사발만큼의 딸기를 일꾼들에게 먹으라고 주었다는데
어머닌 그 딸기를 안 잡수시고
저녁에 집에 오실 때 봉지에 싸 갖고 오셨지요.
집으로 걸어오시는 동안
찌그러지거나 으깨질까봐 걸음걸이도 살금살금 걸어서 오셨다면서
학교 갔다 온 내 앞에 "오늘도 공부 열심히 했냐?"하면서
어머니께서 딸기를 내놓으셨는데 살짝 씻어서 먹으면
왜 그리 맛이 좋던지......
어머니의 사랑이 더해져서일까요?
그 딸기는 입에서 살살 녹았던, 그 딸기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때(1970년도)만 해도 먹거리가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이었고
국민핵교 졸업 후 가정사정으로 한 해를 쉬는 바람에 15살에 중학생이 되었으니
돌을 씹어도 소화시킬 나이였었죠.
더욱이 딸기를 사 먹는다는 것은 우리집처럼 지독하게도
가난한 집(단칸 월세방에서 누나가 공장엘 다녀
방세와 생활비, 내 학비를 벌던 시절)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시절이었지요.
46세에 늦둥이로 날 낳으시고 애지중지, 금이야 옥이야 키워주신 어머니
38년 전, 저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너가셨지요.
이 못난 아들은 어머니에게 진 빚, 한 푼도 갚지 못했는데......
딸기 얘기에 엄마 생각 나서 눈물 짓게 만든 '러브러브' 누님! 미워, 미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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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딸기꽃이 주류인데 빨강색 딸기꽃도 있더군요.
엊그제 9팩 사서 오산의 지인들과 동네 할머니들과
나누어 먹은 '금실 딸기'(맛이 정말 어머니 사랑만큼이나 달콤했어요).
아름다운 이름
박 민 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더불어 살아가라고
지혜 주시는
내가 슬프면
나보다 더 슬퍼하고
내가 기쁘면
나보다 더 기뻐하시며
가진 것, 귀한 것
전부 퍼주고도
“더 필요한 거 없니?”
물으시는
하고 많은 말 중에서
가장 빛나는 아름다운 이름
그 분, 누구일까요?
어머님의 사랑은 자식 누구에게나 지극 하지만
민순님 어머님은 유난히 민순님을 사랑 해 주셨나 봅니다.
동네 어른들과 나눠 먹은 그 딸기를 어머님께도 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맞아요. 어머니 살아계셨드라면
어머니께도 딸기 드리며 그 옌날, 중학생 시절을 되짚어 보았을 텐데....
딸기도 철이 있는데
요즈음은 한겨울에도 딸기가 나와요
아무래도 맛은......
오늘은 슈퍼에서 딸기를 사야겠습니다
출석합니다
아무래도 한겨울 딸기 보다는 일조량을 많이 받은 노지딸기맛이 진짜지유.
출석해 주신 가리나무 님! 코맙십니다.
아 옛날 생각 합니다. 출석해요
가난이 뚝뚝 떨어지던 그 옛날은 글짜 그대로 옌날이 되었어요.
이제는 돈도 흔하고 먹거리도 흘러 넘치고....
좌우지간 행복에 겨운 세상을 우리는 살고, 누리고 있십니다요. 준웅 씨!
늦둥이 아들 얼마나 애지중지 키우셨을까 싶네요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찡 눈물핑 입니다
가슴뭉클 글과 시에 머물다 갑니다
신은 모든 곳에 계실 수가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 - <탈무드> 중에서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 셰익스피어
출석해 주신 둥근해 님! 코맙십니다.
그 시절에는 딸기를 돈주고 사먹기 어려운 시절인데
그나마 엄마가 딸기 밭에서 일하셨기 때문에
딸기맛을 보신거지요
우리는 그시절 딸기 못 먹었어요
우리 엄마도 딸기 좋아하셨는데
문득 나도 엄마가 그립네요
출석합니다
충청도 산골에서 아버지는 농사 지으시고
어머니, 누나, 나, 셋이서 살림을 나왔는데 수원에서도 달동네라 할 수 있는 서둔동 웃거리라는
언덕 위의 셋방에서 가난했지만 다복하게 살았는데
이듬해 고향에 계시던 아버지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 사랑만큼이나 달콤했던 그 딸기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 떠나신지 38년이 지났는데도.....
딸기 값이 많이 내렸습니다..
어제는 마트에서 참외도5개 만원주고
딸기도 세팩 만원에..
오늘하루만 근무하면 3일 연휴가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 연휴엔 비소식이 있어서
멀리 못가겠어요~~
맞아요. 요즘 딸기 끝물이라 그리 비싸지 않아요.
위 사진에 나온 금실 딸기도 팩당 5천원인데 가게 문 닫을 시간에 남은 것 떨이로 샀더니
팩당 4천씩 샀는데, 그리하여 오산시내 지인들과 동네 어르신 할머니들과 나누어 먹었는데
맛은 최고였어요.
어린이들이 신나는 3일 연휴인데 비가 온다니....
우리 부부는 어버이날 앞두고, 고향 선산의 부모님들께 성묘차 들를 계획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담은 딸기 이야기 감동적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보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원, 딸기밭하니
옛날 수원농대 부근 딸기밭에서 미팅을 몇번 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납니다.
네, 맞아요.
수원에 있던 서울농대 뒷편에 '푸른지대'라 하여 딸기밭이 많았지요.
읽고서 긴 댓글로 출석해 주신 '비온뒤' 님! 코맙십니다.
그나저나 송화가루 땜시롱 비 좀 와야 쓰겄습니다.
비가 와야 싹 씻겨나가죠. 비온 뒤엔 깨끗하고 깔끔하죠.
박시인님 안녕~^*^
빨간색 딸기꽃은 처음 보아요.
엄마가 주시는 딸기를 먹고
성장한 박시인님이라서
좋은 이웃들과 함께
딸기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 거네요.
엄마의 사랑을 보답하기 위해
박시인님 건강하세요~🌸
엄마께서 시골에서
수원시로 유학까지 보내주시고...
엄마의 사랑과 헌신은 위대합니다...
우리 엄마도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을 보냈지요~
우리 고향집 마당에도
딸기 몇 그루가 살고 있었는데...
밤나무 감나무
가죽나무 대나무들과 함께 살았던 고향집...
지금도 고향집에 가면
멀리서 들러오는 산비둘기 노래가 너무 좋아요.
맞아요.
엄마의 사랑을 보답하기 위해 딸기를 나누며 살아가고 있어요.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보구 계실꺼예요.
충청도, 하늘만이 빼꼼이 보이는 산골에서 수원으로 유학 와서 공부했시유.
그래서 이렇게 시 쓰는 잉간이 됐시유. 비록 졸시 뿐이지만.....
우리 고향집은 흔적도 읍시 사라지고 뒷뜰의 감나무, 고욤나무, 사철나무, 골담초나무도 사라진지
오래 됐시유.
우리 고향 선산에 계신 아바지, 으므이 만나러 가면
산비둘기는 물론이고 꾀꼬리까지 울어대면서 나를 반겨요.
긴 댓끌 주신 T 피케티 님! 고마버요. 오래오래 건강하구 행보카세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