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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큐버스 #1
신성 프로비던스 제국의 수도, 클레이단에서는 1년에 4번, 봄, 여름, 가을, 겨울 마다 축제를 연다.
물론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것은 가을의 여신 테메르에게 무사히 추수를 마칠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테메르 축제이지만, 가장 인기있는 축제는 바로 봄의 여신 가이아가 겨울을 이겨낸 생명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에 반가움을 표시하는 가이아 축제이다.
가이아 축제는 겨울 동안 움츠리고 있던 사람들이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 몰려나와 즐기는 축제인 만큼 활기차며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가이아는 연인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여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 축제 거리는 연인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 위해 나온 젊은 남녀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어딜가든 소외되는 계층이 있기 마련이다.
봄의 여신 가이아 축제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은 바로 아라엘 교단의 신관들.
봄이 생명을 상징하는 만큼 생명의 여신 아라엘을 기리는 의식이 빠질리 없고, 유감스럽게도 이 의식과 가이라 축제는 항상 겹친다.
여기에는 체르니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체르니는 의식이냐 축제냐 하는 문제에 단 1초도 고민할 필요없이 답을 내놓을 수 있다.
"축제지."
"?"
신전에서 귀가한 이후로 내내 우울한 기운을 내뿜고 있던 체르니의 뜸금 없는 말에 마로니크가 시선을 돌렸다.
"... 가고 싶어"
"어딜?"
"가이아 축제 말이야!"
"그래"
"..."
평소 축제를 시덥잖은 일로만 생각해오던 마로니크는 축제 이야기에 이내 신경끄고 다시금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고 싶어~"
"..."
"가기 싫어~"
"..."
"가고 싶다구우우!"
"..."
"아쫌, 가기 싫다니까아아!"
"... 뭐하는 거냐?"
축제, 의식, 축제, 의식이라는 목적어를 순서대로 빠뜨리며 가고 싶다와 가기 싫다를 반복하는 체르니로 인해 결국 마로니크는 책장을 덮고 말았다.
"축제 가고 싶냐?"
"응!!"
"갔다와."
"어떻게?!!"
"의식에 안가면 되지."
"그러니까 어떻게에?!!"
"첫번째 방법. 꾀병을 부린다."
꾀병이라는 말도 안되는 방법을 제시하는 마로니크를 보곤 체르니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패스. 병났으면 신전에 가야지."
"두번째 방법. 집안에 중대한 일을 만든다."
두번째 방법을 들은 체르니는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렸다.
"없잖아.. 중대한 일이란거.."
"만들어야지."
"!! 오~ 역시~~"
"?"
"거짓말쟁이 사기꾼 오빠야~ 오빠 최고!"
"거짓말쟁이 사기꾼은 빼."
"헤헤, 오빠 최고~"
...
- 존경하는 유레아린 갈레이스 대신관님께 -
갑작스런 베르온 그란디아 프로비던스 황태자 전하의 방문으로 인해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이번 생명의 의식에는 참가하지 못 할 듯 합니다.
황태자 전하께선 지난번 암살자의 마수에서 당신을 구해주신 것에 대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러 오셨다고 합니다.
피.치.못.할.사.정.으로 인해 의식에 참가하지 못 하게 되었지만 마.음.만.은. 의식에 두고 정성껏 아라엘 여신께 기도 올리겠습니다.
-체르니아 아르셀 올림.
체르니의 편지를 보며 체르니에게 생명의 의식을 생생하게 머리속에 되새겨야 주어야 겠다고 다짐하는 유레아린 대신관이였다.
...
"우와아아~"
체르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신 좌우를 둘러보았다.
사실 체르니는 귀족들의 사교모임이나 파티는 물론 서민들의 축제에도 참석해본 적이 없다.
체르니가 '연중무휴 웬말이냐! 주 5일제 실시하라!'는 피켓을 들고 신전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일 정도로 아라엘 교단은 신관과 성기사들에게 엄격했다.
물론 성인이 되면 순례여행도 떠날 수 있고 휴가도 받을 수 있지만,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은 신전 밖으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하는 아라엘 교단으로선 체르니가 출퇴근하는 것조차 못마땅할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휴일조차 거의 주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만큼 체르니는 이번이 첫 휴가(?)이자 처음으로 축제에 놀러나온 것이였기에 더욱더 축제에 빠져들 수밖엔 없었다.
"오빠아- 저기봐봐"
"하아..."
물론 체르니가 축제에 빠져드는 만큼 마로니크는 후회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축제란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지만 온갖 것들을 신기해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행여나 아이가 사라질까 한시도 눈을 떼놓을 수 없기에 축제 구경은 커녕 제대로 쉴 수조차 없는 것이다.
지금 마로니크가 바로 그런 처지에 놓여있다.
보는 것마다 신기하다며 여기저기 달려드는 체르니를 데리고 다니는 일은 매우 피곤할 것임에 틀림없다.
"헤헤헤, 오빠아~ 고마워어~~"
피식.
하지만 체르니의 웃음소리에,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촌뜨기"
'빠지직'
"흥! 초.. 촌뜨기 같은거 아니다 뭐,"
토라진 얼굴에도 즐거워지는(?) 마로니크였다.
...
연극, 노래자랑, 얼굴만 내밀고 있는 사람 물풍선 맞추기, 유쾌한(?) 잔소리 게임, 말로 주고 되로 받는 동전 따먹기 게임, 누가누가 많이 먹나 대회, 해괴망측한 놀이 등등..
그렇게 체르니가 하루종일 클레이단의 시내를 휩쓸고 다닌 덕분에 어느새 해는 산 너머로 지고 있었다.
"체르니"
"응?"
"이제 곧 있으면 어두워 질 것 같은데"
"그래서?"
"들어가자"
"싫-어-"
"..."
마로니크가 질린다는 얼굴로 바라보자 체르니는 검지를 좌우로 흔들며 혀를 찼다.
"쯧쯧.. 뭘 모르는구만."
"?"
"축제의 로망은 역시 야시장이지!"
"... 축제는 처음이라면서 그런건 어떻게 아는거지?"
"이거 왜이래- 나의 정보망을 무시하지 말라고 후후후"
"비생산적인 정보망이로군."
"뭐.. 뭐라구?!"
"하아..."
마로니크는 한숨을 내쉬고는 뒤로 돌아서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마로니크가 걸음을 돌리자 놀란 체르니는 황급히 마로니크를 쫓아갔다.
"자.. 잠깐!!"
"..."
"어디가는거야?"
"..."
"난 야시장 간다니까?"
"..."
"지.. 집엔 절대 안가!!"
"... 네 정보망은 야시장이 어디서 열리는지도 모르나보지?"
"쿠.. 쿨럭.."
"비생산적이고 쓸모없는 정보망이로군."
"생산적이고 쓸모있어!"
...
"아앗!"
싱글벙글 웃으며 야시장에서 산 솜사탕을 할짝이던 체르니가 갑자기 마로니크의 등 뒤로 숨었다.
"무슨 일이야?"
"ㅅ... ㅅㅓ... 성기사..."
"..."
"나.. 날 잡으러 왔나봐!!"
"역시 마녀가 맞았군."
"아니야!"
"그럼 뭐지..?"
"... 성기사가 마녀만 노린다는 것은 편견이야!!"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되묻는 마로니크에 체르니는 대꾸하는 것조차 포기하고는 마로니크를 끌고 골목으로 숨었다.
"대신관님이 내가 축제에 온걸 눈치 채셨나봐..."
"설마"
"그렇지 않고서야 성기사인 샤르니가 야시장에 왔으리가 없어!"
"너처럼 땡땡이 치는거라면?"
"하하하... 그.. 그럴리가.. 어쨋든! 이렇게 된 이상, 신항로를 개척해야겠어."
"신항로?"
"그래! 나만이 아는 길로 다니는거야"
"네가 아는 길이 있을리가 없을 뿐더러 그런 곳에 야시장이 있을리가 없잖아?"
"헤헤, 세상구경!"
"... 어째 점점 스케일이 커지는데."
"그러엄- 내가 야시장이랑 축제 구경 따위에 만족할줄 알았어?"
"칭찬 아니다."
"에.. 에헴!"
...
골목길을 이리저리 활보하다 당도한 곳은 평민들의 주택가였다.
"조용하네.."
"시간이 꾀 늦었으니까."
가로등조차 없는 어두운 주택가를 체르니와 마로니크는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조용하다는 것은 같지만 신전의 엄숙함과 잠들기 전 침실의 고요함과는 다른 적막함이 거리에 흐르고 있었다.
체르니는 옆에서 조용히 걷고 있는 마로니크를 올려보았다.
어둠에 묻혀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얼굴엔 분명 자상한 미소가 걸려있다.
"이런 것도.. 좋네.."
"응."
'내일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겠지만... 기왕 하는거 제대로 일탈이다!! 후후후..'
그렇게 다시 두 사람은 한참을 어깨를 마주하고 도란도란 걸었다.
...
"꺄아아악!!"
거리의 적막함을 깨고 여자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체르니와 마로니크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달렸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첫 비명소리 이후론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주택가 한복판이였음에도 누구하나 비명을 듣지 못 한 것인지 조용했다.
결국 체르니와 마로니크는 달리는 것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대상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채로 무작정 달리는 것은 오히려 대상과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숨소리를 죽이고 청각 강화 마법을 사용한 후, 주변 소리에 귀 기울이자 남자들의 깐죽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미천한 것이 기뻐하진 못할 망정 누구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거냐!"
"크하하하 너무 그렇게 거칠게 다루진 말라구, 이렇게 새초롬한 것도 나름 귀여우니깐 말이야"
상황파악을 마친 체르니와 마로니크는 더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렸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사내들의 협박에 울음소리도 죽이고 그들에게 끌려가는 소녀가 보였다.
"멈춰."
마로니크의 조용하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퍼졌고 소녀를 끌고가던 사내들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곤 마로니크와 체르니의 차림새를 살펴본 그들은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축제 구경을 위해 간편한 차림으로 나왔기에 체르니들을 평민 내지 부유한 상인집의 자식들인줄 알았나보다.
"어이구! 이거 무섭구만 하하하하하"
"지금 누구 앞에 주제도 모르고 나서는거냐?!!"
"옆의 여자를 넘기면 이번만은 눈감아주지 크크크"
마로니크는 여럿이서 한 소녀를 괴롭히는 걸로 모자라 동생 체르니에게까지 음탕한 눈길을 보내는 그들을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저놈들을 어떻게 요리해줄까...
마로니크는 얼굴은 거의 무표정이다.
웃을 때 조차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이게 웃는건지 아닌지 구분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마로니크와 가족이라는 이유로 날 때부터 함께한 체르니는 마로니크의 아주 작은 표정변화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무... 무진장 화났다!'
그렇다. 마로니크는 지금 화를 내고 있다.
그것도 체르니가 처음으로 볼 정도로 많이..
"저.. 저기 누구신데요?"
체르니는 급히 중재에 나섰다.
마로니크는 4써클의 마법사이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웬만한 기사조차 그 앞에서는 뼈를 추릴 수도 없다.
자신들이 아르셀 공작가의 사람이란걸 알면 대부분은 그냥 물러날 것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좋은 대응이였다.
"나는!"
'상대방이 알레고리 공자라도 되지 않는 이상 굳이 피를 보지 않더라도 해결할 수...'
"이 나라를 이끌고 계신 위대하신 아버지, 알레고리 공작 전하의 장남. 그레이먼 알레고리다!"
"쿠.. 쿨럭!"
"그래서?"
"..."
일났다.
상대는 아르셀 공작가와 버금가는 세력을 가진 알레고리 공작가의 장남이였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신분상으로 자신에게는 막 대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저기 울고 있는 소녀를 놓아주는 선까지는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베르온 황태자파인 아르셀 공작과 가이라 황자파인 알레고리 공작은 서로 대립하는 관계이지 않던가.
엎치고 덮친 격으로 지금 마로니크는 시비조로 대응하고 있다.
"뭐.. 뭐라고?!! 감히 네까짓게 지체높은 귀족인 나를 무시하는거냐?!!"
부끄럽지도 않은지 자기 입으로 자기가 자기보고 지체높다고 하는 그레이먼을 보고 마로니크는 비릿한 조소를 날렸다.
"귀족? 귀족이라고?"
어느새 8명의 기사들은 체르니와 마로니크를 포위했고 그레이먼은 씩씩거리며 마로니크에게 다가갔지만 마로니크는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말하는 귀족이란 여러명이서 연약한 여자 한명을 괴롭히고 고작 가문의 혈통 하나로 고결함을 따지는 거냐?"
"건방진 놈!!"
마로니크의 말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 없이 힘으로 누르겠다는 듯이 씩씩대며 다가가던 그레이먼은 어둠에 가려져 있던 마로니크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너... 너는!!"
그레이먼은 모욕에 얼굴이 시뻘개졌지만 상대가 마로니크였기에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
한대 칠 기세로 다가가던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분노로 씩씩거렸다.
당장 갈갈이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마로니크는 14살의 어린 나이로 4써클의 경지에 다다른 마법의 천재 중에 천재였다.
괜히 나섰다가는 볼썽사납게 나뒹굴 것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마법사 혼자서는 기사에게 약한 법이지'
그레이먼은 뒤로 물러섰다.
8명의 호위기사 모두 마나 유저의 실력자이다.
심지어 두명은 소드 익스퍼트 급이다.
이들이라면 저 콧대 높은 마로니크를 짓밟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로니크는 긴장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진한 비웃음을 흘렸다.
"돈을 쳐발라야지만 빛나고 기사들이 버티고 있어야지만 당당해지는 네놈은 귀족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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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 제가 글 쓰는 속도가 느린 것인지
한참을 써서 겨우 이만큼 완성했네요..
써놓고 보니 어째 이번편은
체르니의 오빠 마로니크를 마구 밀어주는 듯한 느낌입니다.. ㅋㅋ
그럼 즐거운 하루 되세요~ ^^
첫댓글 젬있게 보고가요~~
감사합니다~^^ 댓글이 달린거 확인하자 마자 답글 다려고 후다닥 달려왔어요 ㅋㅋㅋ
우왓!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검사들!!
오 ㅎㅎ 그.. 그런데 살짝쿵 부정적으로 그려놔서요.. ㄷㄷ
잼있어요.^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