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849호
먼나무
신은숙
먼나무는 여기서 얼마나 멀까 먼나무는 멀어서 아름답다고 쓰는 밤. 멀구슬나무가 먼나무가 되려면 안간힘을 써서 더 붉어져야 하듯 멀건 슬픔은 눈 멀 수 없기에 먼나무는 독을 품고 붉은 열매를 매달았다 먼나무를 멀리 있는 눈 먼 나무라 오독하는 자유가 내겐 있다 남쪽 땅 끝에서 보았던 먼나무, 저게 뭔 나무죠 물었을 때 정답이라며 안내원이 웃었다 질문이 정답인 최초의 나무, 제주에 흔해 제주 하면 푸른 바다보다 먼저 떠오르는 먼나무 가로수길, 먼 것은 죄다 그리워 수금지화목토천해명 행성이 되지 못해 퇴출된 명왕성은 혼자 울며 얼마나 멀리 갔을까 카이퍼벨트 지나 안드로메다 어디쯤 아버지 그리고 당신... 나를 떠난 모든 것들은 먼나무가 되었다 이 오독은 먼나무에 대한 예의는 아니어서 멋 나무를 먼 나무로 제멋대로 읽어서 나무를 뿔나게 할지도 모른다 눈앞에 없는 먼나무를 상상하다가 저무는 밤 다만 먼 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붉게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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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동안 제주를 다녀오고 강기희 형의 소설집 <양아치가 죽었다> 출판기념회를 치루면서, 그놈의 술 때문에 내상을 무척 심하게 입었습니다.
그사이에도 9월에 나올 책들-정현우시집, 시문동인시집, 마정후 에세이-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습니다.
오늘 아침은 결국 힌남노가 춘천에도 비를 뿌려대기 시작하는 모양입니다.
모쪼록 큰 피해 없이 지나가길 바랄 뿐입니다.
제주에 가서 먼나무를 제일 먼저 찾았습니다.
신은숙 시인의 <먼나무>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질문이 정답인 최초의 나무"
먼나무는 결국 제주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에 몇 그루씩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떠올려보는 아침입니다.
2022. 9. 5.
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