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비닐을 들어 올린 바람은 자신의 손가락만 사용하려 들었어요 어린 가축의 혓바닥이나 토막 난 고등어 따위가 담겨 있던 검정비닐이에요 가슴을 받치고 손잡이 없는 주둥이를 벌리면 제 것 같은 핏물이 흘러요
온몸이 찢겨져도 담지 못할 내용은 없었죠 계단을 오르고 새떼를 오르고 자주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던 검정비닐이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검정비닐이 묵직해졌어요 바람은 몰랐죠, 바스락거리는 목젖이 돋아날 줄은 사소한 시빗거릴 주워 담을 줄 말이에요 인류학자들의 논쟁거릴 삼켜버렸어요 언어를 통째로 씹어 침묵만 내뱉기도 했구요
검정비닐이 두려워요, 사람들은 호주머니 가득 목소릴 숨기거나 깊은 밤 고함을 지르고 도망 다녔어요 자신의 메아리에 놀라서 긍정도 부정도 아닌 신음을 낸 적도 많았죠 검정비닐을 들던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린 밤에는 사나운 풍문이 떼지어 몰려왔답니다 모국어와 전화기를 의심하다 눈짓과 몸짓이 뒤섞인 당신의 홍당무에도 바람이 들지 몰라요
저기 검정비닐을 든 엄마가 두 다리로 걸어오네요 비닐을 벗고 심호흡하고 있어요 유대인이나 말갈족의 표정도 지을 수 있군요 허공에 허파를 만들고 속을 드러낼 시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