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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굉음과 함께, 정체모를 매캐한 연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콜록, 콜록, 콜록, 이...이게..."
눈과 얼굴 전체가 미친듯이 따갑고, 코까지 무지 맵다. 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기침을 해대는 은발머리 녀석을 붙잡았다. 놀란 그가 버둥거리는 통에 우리는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연기 때문에 말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누구는 빠져나가려, 누구는 그걸 붙잡으려 아등바등...
그러니까,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콜록, 이거...놔! 나는...콜록, 콜록, 네가 한 장난에 대해, 콜록, 저...정당한 복수를..."
역시 내 예상대로였어. 오호라, 네가 그랬단 말이지, 너 오늘 나한테 잘 걸렸다. 복수 도중에 역으로 당하는 고통을 느껴봐라 어디. 나는 다시 한번 도주를 시도하는 은발 녀석의 목을 내가 봐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다리를 이용해서 휘감았다. 그리고 이대로...땅에 찍어드린다 이거야!
"으허억!"
좋았어! 살살한 걸 다행으로 알아 임마, 그래도 내가 한 짓이 있으니까 봐주는거야. 내 뒤편으로 보기 좋게 넘어간 녀석은 또 한번 탈출시도를 실패했다. 이게 바로 '시나벡 형제식 무술법' 이라 이 말씀이야! 이거 배우다가 얼마나 형한테 내가 많이 맞았...흠흠, 어쨌든 녀석은 아까보다도 더욱 정신을 못차리고 덤벙거렸다. 이러다간 연기에 질식할지도 몰라.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서 올라오는 기침을 참으면서 간산히 말했다.
"더...험한 꼴 당하고 싶진...않겠지! 콜록, 콜록, 당장 저 연기 어떻게 없애는지 말해!"
겨우 정신을 차린 그는 땅에 떨어진 책을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잽싸게 달려가 책을 덮었다.
슈우우-
"어...없어졌다."
연기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더 이상 기침도 나오지 않고, 얼굴도 따끔거리지 않았지만, 대규모 사투(?)를 벌이고 난 후의 우리의 얼굴은 연기가 새어나오던 상황만큼이나 엉망이었다. 옷은 먼지와 흙투성이에, 얼굴에선 땀도 줄줄, 눈물도 줄줄, 콧물도 줄줄, 침도 줄줄... 저 자식이 아까는 연기로 고통을 주더니, 잘난 얼굴에 굴욕까지 주는구만. 뭐 너의 상태로 정상은 아니니, 딱히 할말은 없다만...
"정말 초면부터 별 무례한 짓은 다 저지르는군!"
그가 화가 난 듯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버럭 지른다. 그러니까 누가 나한테 역으로 복수하랬냐. 내가 지금 머리 좀 큰 열여덟이어서 망정이지, 5년만 더 젊었어도 넌 나한테 죽었어 임마. 나는 화를 내는 녀석을 무시하고 집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이 자식이 이제는 날 아예 가로막는다.
"또 뭐, 더 맞고 싶다고?"
움찔, 허, 정말 이상한 놈이로세. 이렇게 겁부터 먹을거면서 그렇게 복수가 하고 싶은가? 그러나, 나는 녀석의 반응을 듣고는 자지러지고 말았다.
"딱...하...한대만 때리게 해줘."
"뭐? ...풉...푸하하하하하하하하!!!"
"우...웃지마!"
도대체 얜 뭐라니, 남자답게 아까 내가 넘어뜨리려 했을 때 실컷때리지 그랬냐. 내가 사레가 들 정도로 배를 잡고 웃어제끼자, 그가 날 노려보며 말했다.
"농담아니야. 이대로 가긴 너무 억울해서 안되겠단 말이야."
나는 간산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임마, 불쌍하니까 이 형님이 한번만 봐준다. 그는 웃음을 멈춘 나를 똑바로 세운 뒤, 배를 조준했다.
"자, 간다. 하나..."
퍽!
......그렇게 나한테 쌓인게 많았던거냐. 하나, 둘, 셋을 세려면 제대로 세던가. 그리고 그렇게 생글생글 웃으면서 가면 내 기분은 뭐가 되니. 녀석은 벌써 저만치 도망가고 있었다.
마치 내가 쫓아가서 더 때리기라도 할 것처럼, 아주 '밝게' 웃으면서. 그런데 말이야 너...
그 꼴로...광장까지 가려는 거니...?
저번과 같은 꿈을 꿨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얼음과 결혼하겠다던 정신나간 형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지만, 그 이외엔 모두 똑같았다. 끝까지 가방 속에 든 무언가는 보지 못했구나... 일단 예지라는 존재가 나를 떠나지는 않았다는건 다행이긴 하다. 난 무슨 일이 있어도 가방안에 든 '그 무엇'을 알아야겠거든. 어제의 울적한 기분은 잊고 기분좋게 기지개를 쭉 피려하던 그 때였다.
"으윽!"
아...어제 한동안 안하던 짓을 했더니, 온몸이 쑤셔서 죽을 것 같다. 나도 나이가 들었나봐. 그러고보니 그 자식은 잘 돌아갔을라나. 자기 몰골 보고나서 그거 안 말해줬다고 또 복수하러 오는 건 아니겠지. 하기야 나라도 화가 날 것 같군, 눈물이나 땀은 그렇다쳐도, 콧물은 어쩔거야.
"뭐, 자기 운명이지."
나는 칼리파 영감이 습관처럼 내뱉던 말을 중얼거렸다.
아침을 먹고 아픈 몸을 질질 끌며 대장간 근처에 도착했다. 오늘은 꼭 형을 만나야했다. 나참 두고갈게 없어서 점심밥을 두고가냐, 식탐은 황소보다 더 강한 인간이. 같이 먹으면서 어제 있었던 이야기나 해줘야지. 빵과 치즈 그리고 특별히 저장해둔 소시지가 들어있는 도시락을 들고 대장간에 들어가려는데,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곧 나왔다.
쿠광쾅!
"이런 개자식이 값을 깎아달라 할 때, 제때 깎아줘야 할 것 아니야!"
이게 무슨 소리지? 사방에 부서진 칼들과 먼지를 뒤집어 쓴 갑옷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일당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깡패들이 형을...때리고 있어?!
"야이 못생긴 찌질이들아!!"
나도 모르고 크게 소리치고 말았다. 구경꾼은 물론, 형과 깡패들의 시선이 모두 내 쪽으로 쏠렸다. 단연 깡패들은 '찌질이'란 단어에 하나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 지금 뭐라고 했니, 건방진 꼬마야?"
"이런 건방진 놈이, 너도 여기에 누운 놈처럼 먼지나게 두들겨 맞고 싶으냐?"
수는 일곱, 크기도 제각각인 깡패들이 비슷한 말을 짓껄이며 나에게 다가오자, 형이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카르..,! 도망가... 얼른...!"
아니, 절대 그렇게는 못해.
"뭐, 그다지. 하지만 너희한테 먼지를 뒤집어 씌우고 싶긴 한데?"
그러자 그들중 가장 덩치가 크고, 멍청하게 생긴 거한이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을 듯, 내 앞으로 달려왔다.
"뭐라고! 쪼끄마한 대가리 당장 숙이지 못..."
퍼억-,
미안해, 아저씨.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거든. 이 순간만을 기다린 나를 용서해. 나는 어제 은발녀석의 목을 휘감아 넘어뜨린 그 다리 힘으로 거한의 사타구니를 강하게 걷어찼다. 남자라면 아무리 강해도 안 아프고는 못 배기지.
"크허억...어억..."
좋아, 어쨌든 일단 한 놈 처리. 그들 무리는 당황했는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다. 또다시 비슷한 내용으로 말이다.
"이런 치사한 놈 같으니!"
"감히 치사하게 거기(?)를 차다니!"
"싸움의 '싸' 자도 모르는 놈이 치사하게!"
그들이 또다시 한꺼번에 밀려오자, 나는 또다시 머리를 썼다.
"지금 조그만 남자애 하나 가지고 여섯명이서 덤비는건가? 이거야 원, 나한테 비겁하다고 하실 처지는 아니신 거 같은데!"
남자들이 순간 걸음을 멈췄다. 그래, 그러셔야지. 그들의 특성상 '겁쟁이, 비겁자' 같은 별명은 수치에 가까운 것이었다. 너넨 제대로 걸려들었어.
"정정 당당하게 한 명씩 나오라고! 당장 때려도 상관없으니, 아무 말도 없이."
그러자 잠시 후, 한 녀석이 동료들과 눈짓을 하더니 내 앞으로 달려나온다. 아까 그 놈과는 달리, 꽤 날렵하다.
퍼억-,
아이고, 볼따구야. 얼얼한 볼을 감싸쥐며 바로 다시 달려드는 놈을 피해 옆에 있던 먼지붙은 갑옷을 그의 얼굴에 뒤집어씌우고는 또 한번...
퍼어억-,
미안해, 너도. 하지만 내가 힘으로는 이길 수가 없잖아. 급소를 걷어차인 두번째 놈 역시 나가떨어지자, 남은 다섯 인간이 불같이 화를 내면서 달려들었다. 이번엔 그냥은 안 끝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거나 먹어라!
휘리릭-, 퍼엉! 슈우우...
"이...이건 또...콜록, 콜록!"
미리 챙겨두길 잘했군, 고맙다 은발. 나는 어제 은발 녀석이 두고 간 정체불명의 '연기책'을 집어던진 것이었다. 깡패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기침을 해대는 사이, 내가 코와 입을 가리고, 바닥에 누워있는 형을 찾으려 하던 그 때였다.
콰악-
모...몸이 들렸어?
퍼억!
"으으윽..."
"네 녀석이...콜록, 감히...우릴...콜록, 우습게 봐...?"
나를 때린 존재는 맨 처음 나에게 쓰러진 거한이었다. 그는 미친듯이 웃으면서 보란듯이 외치기 시작했다.
"이봐! 이 쥐새끼같은 놈 잡았다고!"
그제서야 내가 잡혔다는 사실을 깨달은 깡패들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들끓는 기침까지도 아랑곳 않고, 날 닥치는대로 걷어찼다.
"건방진 놈 같으니!"
"감히 우리가 누군줄 알고!"
"오늘 저 세상으로 보내주겠다, 이 자식아!"
점차 정신이 흐려지는 가운데, 형의 애가 타는 목소리가 들린다. 지카르, 지카르, 어디있니? 안돼... 형은 도망치지 못할텐데...여기서 쓰러지면 안되는... 어? 주변이 맑아지고 있다. 분명히 연기책은 계속 펴져있을텐데, 어째서? 깡패들 역시 갑작스레 사라진 연기에 놀란 듯, 때리기를 중단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사이 나는 그들에게서 몸을 떨어뜨리려 했지만, 한 놈이 나를 붙잡으며 으르렁거렸다.
"허튼 짓 하면 당장 패버릴 줄 알아."
그러자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손 놓는게 좋을텐데."
그러자 깡패들이 놀란 듯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놀랍게도 그가 서있는 곳은 대장간의 지붕이었다. 에메랄드 빛의 기다란 머리칼이 나부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후...못본 척 지나치려 했건만..."
그는...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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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소재가 줄어드는 기분입니다. 벌써 슬럼프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