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대 감독으로 조광래 감독을 보고 싶네요.
특유의 헝클어진 머리와 주름으로 전술지휘를 하는
열정적인 모습.
대한민국 감독중 유일하게 미적분을 할줄 아는 감독.
약팀을 맡아서 스타 하나 없는 팀을 오로지 자신의 전술로써
강팀잡는 팀을 만드는 실력.
단, 타협할 줄 모르는 불같은 성격으로 인해 축협과는 잦은 마찰을 빚어서...
안타깝네요.
김호곤 감독처럼 축협과의 관계에 정치를 할 줄 모르는 사람.
그래서 아마도 안될듯 싶은데요.
당시 명문중의 명문.
진주고등학교를 선수로가 아니라, 시험쳐서 합격했던 조광래감독.
이당시의 조광래 감독 같은학년 동기 전체 500명중 130명이 서울대 합격한 실력.
나머지 300여명은 연고대합격
그당시 진주고와 울산 학성고가 경남 전체에서 1등을 다투었죠.
현역 감독중에는 머리가 가장 똑똑할듯 합니다.
저는 학범슨도 좋구요. 조광래 감독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두분 다 인증받은 전술가이며,
강한 신념으로 축협과의 타협을 거부하면서도
자신의 길을 갈 줄 아는 사람이라 보이기에 그렇답니다.
첫댓글 조광래 감독 우리 아버지 진주고 2년후배 ... 고딩때 축구 진짜 날라댕겼다고 하더군요 ㅋㅋ 축구 같이 하면서 놀았다던데 ... 자장면 내기도 많이 했다더군요 ㅎㅎㅎ 저도 조광래 감독 맘에듬 ! 그당시 진주고 진짜 .... 우리아버지때도 서울대만 몇백명 보냈다더군요 ㄷㄷㄷㄷ
죄송한 말씀인데요. 혹시 경남고교나 부산고교를 말씀하시는지요. 그 당시 서울대 합격 세자리수를 넘는 고교는 전국 서열 10위 이내입니다. 진주고교는 20위 이내정도...
1970년대 초를 기준으로 했을 때, 1위는 경기(京畿)고로서 약 400명이 합격하였고, 2위는 서울고로서 약 250명, 3위는 서울에 있는 경복(景福)고로서 약 200명, 공동 4위와 5위는 경남고와 부산고로서 약 150-170명 정도, 6위는 대구에 있는 경북(慶北)고로서 약 130-150명, 7위는 경기여고로서 120-140명, 8-10위는 광주제일고, 전주고, 대전고로서 각각 100-120명 정도, 11위는 중앙고로서 약 100명이었다.
12-14위는 용산고, 이화여고, 인천의 제물포고로서 80-90명 정도였고, 그 다음으로는 마산고, 진주고, 청주고, 춘천고였으며, 그리고 그 다음 차례는 부산의 동래고와 동아고, 대구의 경북대사대부고와 계성고, 광주의 광주고, 서울의 정신여고, 진명여고, 서울대사대부고, 대광고, 보성고, 배재고, 양정고, 중동고, 휘문고, 동성고, 경동고, 무학여고, 익산의 남성고 등이었다.
서울.경기가 왜 명문이라는게 이런거구나 ..
70년 후반 80년 초반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조광래가 심판탓만 안한다면 좋은감독이죠..
미적분 할줄 아는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