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으로 성품 밝혀야 해요. 내가 누구인가 알아야 돼요. 자기가 지은 거를 듣는 거는 진정한 들음이 아닙니다. 이 세상엔 본래, ‘듣는다’ 하는 그런 작용은 없어요. 자타 피차 이런 거 없어요. 서로 마주보는 법은 없어요. 작용의 주체가 없어요. 다만 작용 없는 참성품이 인연에 감응해서 중생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대로 말하는 자도 나투고, 듣는 자도 나퉈요. 마치 빈 골짜기에 메아리 나투듯 그렇게 나퉈요.
이 세상 천지삼라만상 모두가 다 성취가 없어요. 전부 여러분의 한마음 가운데의 그림자요. 그 마음은 보탤 것도 덜 것도 없어요. 본래 스스로 온전해요.
강의나 강연 듣는 거는, 듣는 대로 말이나 문자의 내용만 알면 되죠? 여러분은 내가 하는 말이나 문자의 내용 몰라도 돼요. 내 뜻을 알아야 돼요. 뜻을 어떻게 아는가? 여러분의 뜻하고 똑같아요. 이심전심(以心傳心)
내 마음, 여러분의 마음, 같은 거요. 그런데 이 마음은 작용이 없고 성품도 없고 모양도 없으면서 인연에 감응해요. 마치 거울이 사물을 비추듯이.. . .
마음을 어떻게 마음으로 전해요? 그건 아무도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합니다. 어떻게 전하고 전해 받아요? 부처님도 연등불한테 전해 받은 것 아무것도 없어요. 가섭도 부처님한테 전해 받은 거 아무것도 없고. 그저 벙어리 꿀 먹은 것처럼 빙그레 웃은 거요. 그랬더니 가섭에게 정법안장을 부촉하노라.
정법안장이 뭐요? 입을 대면 부르터버려요. 굳이 지각작용 빌려서 얘기한다면, 산하대지가 비록 면전에 또렷또렷하게 있는데 정법안장이 열린 사람은, 티끌 하나 보는 게 없어요. 이 세상이 지금처럼 또렷하게 전개돼도 티끌 하나 보는 게 없어요. 그런 사람을 만법 밖으로 투출했다 그래요.
초연히 벗어났다. 보긴 다 봐요. 그런데 그게 전부 다 이심전심의 이 마음에 비친 그림자라는 거를 투철하게 알아요.
내 형편이 좋든 나쁘든 불생불멸을 갖춘 채로 경계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거요. 법성의 남자, 법성의 여자, 법성의 사물... 법성 아닌 게 어디 있어요? 지지고 볶고 하는 거, 빈 게 빈 것끼리 씨름하는 거요.
모든 게 일여해서 생멸법이 아닌데,
무엇으로써 시작과 끝을 삼겠소? 성품을 밝히면 도무지 ‘논’할 것이 없어요. 심성을 밝히고 보면 모두가 진성연기요. 하나의 참된 성품의 거울에 비친 그림자요.
이 그림자를 ‘사물’로 실체화 해버리면 그때부터는 설명이 안 돼요. 모든 게 한마음 가운데로 거둬지지 않으면 평등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 맞는 것도 틀린 것도 다 그냥 보내세요. 능소가 다 빈 거요.
너 뭘 깨달았는가? 나 깨달은 거 아무것도 없다. 스님은 불법은 아십니까? 나는 불법을 모른다. 아무것도 볼 것 없고 들을 것 없고 알 것 없는 사람은 그 법성이 이미 온 누리에 두루해서 미치지 않는 데가 없어요. 더 작은 것도 더 큰 것도 없어요. 그게 법성신이고 부처몸이고 그게 여러분의 본래몸이오.
첫댓글 정말 좋은 법문이네요. . .
대우거사의 법문은 정말 모두 주옥 같아요.
". . . .다만 작용 없는 참성품이 인연에 감응해서 중생이 마땅하다고 여기는대로
말하는 자도 나투고, 듣는 자도 나퉈요.
마치 빈골짜기에 메아리 나투듯 그렇게 나퉈요"
세상이 생기는 원리를 실감나게 묘사했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