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편의점 등 약 판매 주장 막으려"
전체 약국의 0.3%… 그마저 19% 영업 안해
심야응급약국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약국 참여율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시스 10월 4일
대한약사회는 지난 7월 초부터 심야응급약국을 시범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전국 약 2만1000개의 약국 중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약국은 59개(26일 기준)다. 전체의 0.3%도 안 되는 이 약국들마저 제대로 영업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말 그럴까.
-
- ▲ 26일 오전 1시 서울 동작구에 있는 한 약국의 문이 닫혀 있다. 이 약국은 규칙대로라면 오전 2시까지 영업을 해야 한다./ 윤주헌 기자
불 꺼지고, 문 잠기고…약 19% 문 닫아
심야응급약국은 레드마크약국과 블루마크약국으로 나뉜다. 레드마크약국은 24시간 운영하거나 새벽 6시까지 여는 약국을 말하고, 블루마크약국은 주로 새벽 2시까지 하는 곳이다. 서울에서는 16개 약국(레드마크 5곳, 블루마크 11곳)이 고정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구로구와 종로구에서는 약국이 돌아가면서 각각 매일 밤 1곳이 문을 열기로 했다. 그러나 강서구, 관악구, 금천구, 노원구, 서대문구, 성북구, 송파구, 양천구, 용산구, 중랑구 등 10개 구(區)엔 레드마크약국과 블루마크약국 모두 없다.
26일 자정~오전 6시, 27일 자정~오전 4시에 걸쳐 서울의 16개 심야응급약국을 다니며 실제로 심야 시간에 운영을 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새벽 1시쯤 블루마크약국 11곳을 모두 가봤더니 두 곳(동작구, 강북구)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서울 은평구의 약국은 불이 켜져 있었지만 출입문에 '용무가 있는 분은 두드리세요'라고 써 붙여져 있었다.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 사람이 나오진 않았다. 반면 새벽 4시~6시에 찾아간 레드마크 약국 5곳은 모두 영업을 하고 있었다.
즉, 서울에서 밤에 문 여는 약국이라고 밝힌 16곳 중 세곳(약 18.7%)이 닫혀 있다는 결과인데 이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에서 21일 발표한 '영업을 하고 있지 않은 약국이 19%'라는 내용과 일치한다.
대한약사회는 심야응급약국에 블루마크와 레드마크 네온사인을 붙여 약국을 찾는 사람들이 알아보기 쉽게 한다고 했지만 아예 달지도 않은 곳이 몇 군데 있었다. 서울시 보건정책과가 공개한 심야약국 위치에 대한 설명도 정확하지 않았다.
-
- ▲ 27일 0시 30분 서울 은평구의 한 약국에‘용무가 있는 분은 두드리세요’라는 쪽지가 붙어 있다. 두드려도 대답은 없었다. / 윤주헌 기자
"일반약 판매 지키려는 꼼수" vs. "소비자를 위해서"
현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약국에는 아무런 혜택이 없고 설령 이 약국들이 문을 닫아도 벌칙도 없다. 대한약사회는 "몇 군데에서 문을 가끔 닫는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분들도 야간에 고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차마 '왜 닫았냐'고 묻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심야응급약국을 이용하는 손님들은 얼마나 될까. 약사회에 따르면 충북에 있는 한 대형약국은 하룻밤에 약 80명이 다녀가고 인천의 한 약국엔 50명이 이용해 손님이 많은 편이다. 이런 곳은 해당 지역에 약국이 2~3개밖에 없기 때문에 손님이 몰린다. 그러나 서울 은평구의 한 약국은 시간당 손님이 0.1명일때도 있고 하룻밤 새 겨우 1~2명 다녀간 적도 있어서 운영시간을 오전 6시까지에서 오전 2시까지로 줄였다. 서울 청량리의 한 약국도 밤새 20명 남짓한 손님만 있어서 운영시간을 바꿨다.
소비자들이 새벽에 사는 약도 피임약, 콘돔, 안약, 모기약, 구강청결제, 해열제, 소화제, 소독약, 파스, 구충제 등 일반의약품이 대부분이었다. 큰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약사회 관계자는 "낮에는 아르바이트생을 약국에 나오게 하고 새벽 시간에는 약국 주인이 직접 나와 가게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심야응급약국제도를 도입한 이유에 대해 대한약사회는 "약국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해 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생각은 다르다. 경실련 김태현 국장은 "약국뿐 아니라 편의점 등 일반 가게에서 일반의약품을 팔아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자 약사들이 '이만큼 우리가 헌신적인 자세로 약을 판매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즉흥적으로 도입한 제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일반 가게들의 의약품 판매 시장 진출을 막기 위한 약사회의 '꼼수'라는 것이다.
김 국장은 "결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심야응급약국에서 약을 사는 게 아니라 접근이 용이한 곳에서 약을 사자는 것인데 약사회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심야응급약국제도를 스스로 운영하며 '이익이 나지 않는다', '지원이 필요하다'는 엉뚱한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