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슬럼프가 찾아왔을때 어떻게 극복해 오셨나요.
제가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은 마치 남녀가 권태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과도 같은 거에요. 남녀가 연애나 결혼생활을 할 때 상대에게 서운하거나 미운 순간이 찾아 오죠. 그때 그 사람과의 좋았던 추억, 순간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풀리는 경험을 하게 되잖아요.
이처럼 저는 힘들 때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곤 했어요. 영화나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좋았던 때, 벅차게 행복했던 순간을 하나의 장면처럼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힘들때 마다 그걸 꺼내 보는거죠.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 그 때의 결심들을 되새기면서 마음을 다잡곤 해요.
Q. 좌우명이 있으신가요?
A. 제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안되면 말고'라고 생각해라. 사람은 노력을 해서 안되는 부분이 있어요.
저는 '하면된다'라는 말에 대해 반기를 들고 싶어요. 해도 안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우격다짐으로 '하면된다'고 강요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보름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를 해서 3등을 했어요. 그런데 공부에 대해 감각이 있는 아이는 반나절 공부해서 1등을 하거든요? 누가 더 공부에 대한 효율성과 재능을 가진 사람일까요? 후자죠.
일정 시간을 정해놓고 자신이 할 수 있고, 즐겁게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의욕, 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을 먼저 해보고 그 안에서 어떤 결과나 방향을 찾지 못하면 그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나리오 수업을 하다보면 학생들이 작품을 쓰면서 많이 괴로워해요. 글에 대한 욕심, 애정에 대한 의심은 추호도 없지만 영화를 좋아한다고 해서 영화를 잘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잘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은 있어야 하지만 결과가 나온 뒤에 그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되면 말고, 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재미있게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Q. 존경하는 멘토나 롤모델이 있으신가요.
A. 영화 연출을 하는 감독들은 자신의 작품 세계와 맞는 사람들을 롤모델로 삼는 경우가 많아요. 저의 경우에는 '데이빗 마멧' 감독 (<글렌게리 글렌로즈>,<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등의 각본을 쓴 작가이자 감독)과 '로버트 벤튼' 감독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등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했다.)을 좋아해요.
특히, 데이빗 마멧 감독은 희곡 작가로 시작했는데, '시나리오 닥터'라는 칭호를 듣는 사람이에요. '시나리오 닥터'라는 것은 영화의 최종단계에서 방향성을 제시하고 체크하는 역할을 해요. 경지에 오른 거죠.
두 감독의 공통점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인간유형에 대한 통찰력이 있고 담아내는 능력이 탁월한 분들이라는 거죠. 시나리오 작가로 시작해서 영화감독이 되었다는 점도 같구요. 제가 추구하는 작품 세계와 맞닿아 있는 면들이 많아서 롤모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시나리오 멘토로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신데 제자들이 가장 고민하고 어려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A. "제가 작가가 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해요. 작가로서 가진 능력이 어느정도 되는지를 의식하고 고민을 많이 하는거죠. 하지만 그 질문에 누구도 명쾌한 대답을 줄 수는 없어요. 결국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많은 제자들이 어려워 하는 부분이 '관계성'에 대한 것이에요.
영화는 '협업'이에요. 혼자서 글만쓴다고 되는게 아니에요. 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가죠. 하나의 그림을 담기 위해서 평균적으로 150여명의 스텝들이 움직여요. 때문에 개인이 작가적 역량이 있는가를 반문해 볼 때 '내가 영화라는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를 고민했으면 해요.
나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열고 들을 수 있는가. 선명한 이야기를 가지고 공동의 목표에 다가갈 수 있는 관계성을 가졌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한 편의 영화를 끝내고 나면 친구 아니면 적이 된다고 하거든요. 사람과의 관계를 만드는 것, 사람들의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상처를 덜 받았으면 좋겠어요.
Q. 작가는 타고나는 것인가요. 만들어지는 것인가요. 어떤 노력과 재능이 필요할까요.
A. 영화는 천재가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영화를 보는 대중의 시선에 맞출 수 있되 대중보다 조금 더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 영화를 만드는거죠. 물론 코메디와 멜로 즉, 감정이 중심이 되는 장르들은 어느 정도 타고난 감각이 필요해요. 그러나 그 외의 장르들은 성실한 취재와 자료조사를 통해서 부족한 부분들을 채울 수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좌절과 맞닿아있는 작업이에요. 매일 뛰어난 글과 장면과 재능들이 쏟아져 나오고, 나보다 훌륭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요.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서 좌절은 하되, 쉽게 포기는 하지 않았으면 해요. 좌절과는 매일 만나는 친구라고 생각하면서 친해질 필요가 있지만, 포기라고 하는건 어려움이나 곤란이 도래 했을때 꺾여버리는 것이거든요. 매일 좌절할 지언정 포기하지 않으면 다시 도전할 기회가 생겨요. 그렇게 끊임없이 좌절하면서 후회없이 노력하다보면 어떤 결론에 다다를 때가 올겁니다.
Q.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많은데요.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지요.
A. 이 일이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일인가에 대한 충분한 고민 하세요. 깊은 고민 끝에 힘들고 어려움이 오더라도 극복할 의지가 생길만큼 이 일을 하고 싶다는 판단이 선다면 도전하세요.
또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스크립터, 미술, 조명, 분장, 마케팅 등 존재하는 많은 포지션이 있어요. 하나만 생각하려고 하지 말고 그 수많은 스탭 중에 어떤 것이 나에게 잘 맞는 옷일까를 생각해 보세요.
또 '영상적 사고'를 가졌으면 해요. 소설은 문장을 통해, 음악가는 악보를 통해, 미술가는 캔버스를 통해서 이야기를 하죠. 시나리오 작가, 감독들은 영상을 통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거든요. '스크린'에 대한 이해, 영상적 사고를 갖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영상적 사고'를 갖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네모난 화면 안에 내가 의도한 이야기로 다가가기 위해서 소품, 인물의 동작들을 어떻게 담아낼까를 생각해 보는거죠. 영화는 보여지는 것 외에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스크린 안에 담을 자신의 이야기를 자르고 정리하고 마무리 하는가가 중요해요. 사진, 그림, 영화, 드라마를 많이 보면서 장면 마다 이야기가 어떻게 담겼는지, 어떤 그림들이 들어가있는지를 분석해 보세요. 자연스럽게 영상적 사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겁니다.
첫댓글 와 인터뷰 진짜 좋다.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경험한게 느껴짐
나도 저렇게 생각하고 이거저거 겁나하면서 살고 있음 ㅎㅎ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