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다이다이굿다이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야
그러한 가능성을 실현 시킬 때
우리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지
이 진정한 자기 자신을 '본래적 실존'이라고 해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남들과 비슷하게, 일상적으로 살아가고자 해
나는 이렇게 주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일상인'이라고 불러
'일상인'들은 평균성을 조장하는
다른 사람들의 영향에 의해서
평균적인 일상을 살아가.
일상적이고 평균적인 세계에 빠져서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상실하고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존재의 의미를 점점 망각해버려
또, 이 '일상인'들은
남과 다르게 선택했을 때 져야 하는,
(선택하는 자유의 행사에 따르는)
책임에 대한 공포를 느끼기 때문에
이런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공공성의 편안함 속으로 도피하고자 하지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잃어버린 고유한 가능성,
고유한 존재의 의미를 되찾고 실현시킬 수 있을까?
바로 '죽음에로의 선구'를 통해서 가능해
'죽음에로의 선구'는 내가 아직 죽지 않았지만,
사유의 차원에서 죽음을 향해 먼저 뛰어가 보는거야
죽음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은폐하려고 해도
도망칠 수 없고, 숨길 수도 없는
인간에게 있어서 예외가 없는 가장 확실한 가능성이야.
'누구나 다 죽는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불안해져
그리고 '일상인'들이 의존하면서 살아가는
일상적인 세계의 의미가 모두 흩어져버려
죽음 앞에서는
세속적 가치들이 무의미한 것이 된다는거지
그리고 동시에 나는 자기 자신의 고유한 가능성을 향해
나를 내던질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이 고유한 가능성에 대한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알게 돼
이 극단적인 죽음이라는 가능성,
그리고 죽음에 대한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무의 심연을 견뎌 나갈 때,
우리는 본래적 실존으로 돌아갈 수 있어.
본래적 실존은
어떠한 일상적 가치로 환원될 수도 없고,
다른 누구에 의해서도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존재야.
또, 자신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자신의 삶을 창조해가며
책임질 수 있는 능동적인 존재야
오늘은 거울을 보면서
내가 나의 고유한 가능성을 실현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일상인은 아니었나
자기 자신에게 물음을 던져보는건 어때?
가장 확실한 가능성인 죽음
그 죽음에로의 선구를 통해서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이 소중한 나의 가능성을
실현해볼 수 있는 계획을 세워보는건 어때?
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다이다이굿다이
첫댓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이 생각나네 ! 능동적인 존재가 되자 고마워 여시야
실존주의가 생각나네,, 고마워 여시야
니체의 초인이 생각난다. 몰락을 긍정적으로 보고, 끊임없이 자기를 극복하는 존재로서의 초인
멋진 글
좋은 글이다. 새해엔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봐야지. 고마워.
첫댓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말이 생각나네 ! 능동적인 존재가 되자 고마워 여시야
실존주의가 생각나네,, 고마워 여시야
니체의 초인이 생각난다. 몰락을 긍정적으로 보고, 끊임없이 자기를 극복하는 존재로서의 초인
멋진 글
좋은 글이다. 새해엔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봐야지.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