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사람들에 대한 오해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예민한 사람 = 같이 지내기에 피곤한 사람" 이라고 여기는 시선들이 종종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예민한 사람이 같이 지내기에 피곤한 사람이라기보다는,
1. 같이 지내기에 피곤할 정도로 성격이 괴팍한 사람이
2. 설상가상 예민하기까지 하다
정도로 해석하는 게 적합하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예민하든 안 하든 성격 자체가 피곤한,까칠한 사람인데, 거기에 예민이 더해지면 미칠 듯한 시너지가 나는 거고,
그게 일견 그 사람이 예민해서 벌어진 일들로만 오인될 수도 있다는 거죠.
예민은 말 그대로, HIGHLY SENSITIVE를 뜻합니다.
그 자체로는 장단점이 다 있는 성향이고,
이 성향을 가진 사람이 애시당초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예민한 그(녀)가 같이 지내기에 괜찮은 사람인지 어떤지가 결정난다는 것.
남을 피곤하게 하는 게 아닌, 스스로가 피곤한 성향
앞서 언급했듯, 예민은 HIGHLY SENSITIVE라 표현할 수 있으며,
이말인즉슨, 예민하다라는 게, 센스가 좋다라는 말도 됩니다.
예민한 사람은 즉,
센스가 좋은 사람이라는 거죠.
『social psychological skill』 이라고,
우리말로 풀이하면, 나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의 흐름을 잘 읽을 줄 아는 심리적 기술 정도로 이해하면 되는데,
이의 정의는,
the ability to accurately predict how people in general feel, think, and behave in different social contexts and situations
로써,
쉽게 말해, 인간 관계와 상황들에 대한 통찰 이 있다는 겁니다. 어째서?
애시당초, 그 사람 자체가 워낙에 주변 환경에 민감하기 때문에 자의반타의반으로 알게 되는 것들인 거죠.
이렇게만 놓고 보면 엄청 좋아보일 수도 있지만,
이걸 뒤짚어놓고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이를테면, <왓위민원트>라는 영화에서 여자의 생각을 들을 수 있게 된 멜 깁슨이
처음에는 엄청 좋아하다가, 나중에는 듣기 싫은 소리들, 들을 필요가 없는 소리들까지 모두 듣게 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듯이,
이들의 과도한 센스는 보통의 사람이면 그냥 넘어가게 되는 인간관계의 부정적인 큐(cue)들까지 잡아채면서
스스로에게 심적 불편함을 안기게 됩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E389505C19C5C30F)
과연 그럴까?
예를 들어,
여러 명이서 차를 타고 가는데,
서로 간에 대화꽃을 피우고 가다가, 개 중 한 명이 갑자기 말수가 없어지고 표정이 약간 굳어진 상황을 상정해 봅시다.
예민한 사람은 가장 먼저,
그 사람의 말수가 줄었다는 것과 표정이 어딘지모르게 안 좋아 보인다라는 걸 캐치하고,
이전까지의 상황을 머리 속으로 리플레이해 봐요.
그리고나서, 그 사람과의 대화 중에 내가 말실수를 한 "것일 수도 있겠다"란 부분을 끄집어내고, 마음이 불편하게 됩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내가 뭘 잘못했나, 그 사람은 얼마나 화가 났나 이런 생각들로 머리가 꽉 차게 되죠.
만약, 그러한 상황이 라이트한 관계에서 벌어진 일들이라면,
예민한 사람들도 얼마쯤은 자기합리화가 가능할 겁니다.
사소한 관계에서의 트러블이니 마음에 담아 두지 말자 이런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직장이나 학교, 연인, 군대, 나아가 끝판왕 격인 결혼의 상황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오랜 시간을 같이 있어야 하고, 내가 싫다고 손쉽게 박차고 나가기 힘든 구속적 상황,
많은 것들을 공유해야 하는 이런 헤비한 관계들 에서,
예민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듣고, 읽게 됩니다.
A가 날 싫어하는 것 같아
그 이유는 아마 내가 과거에 이렇게 말해서, 행동해서 일 지도 몰라
B가 요새 말수가 적어졌는데, 나한테 화가 난 건 아닐까?
혹시, 내가 일전에 뭐라뭐라고 장난치듯 한 말 때문에 나한테 화가 난 걸까?
C가 요즘 날 대하는 걸 보면 날 우습게 보고 있는 것 같아
친구라는 게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지?
기타 등등. 등등등
물론, 그게 진짜일지 아닐지는 그 사람과 직접 확인하기 전까진 모르는 거죠.
아닐 수도 있는데, 나의 과도한 센서티브함이 상황을 확대해석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민한 사람들의 특성 중 하나가,
자기가 생각한 것이 맞을 거라 생각하고 그걸 기정사실화 한다는 겁니다.
당사자와 확인해 보지 않고도 말이죠.
물론, 워낙 센스가 좋기 때문에, 진실에 대해서는 틀릴 때보다 맞을 때가 상대적으로 더 많을 겁니다.
BUT, 관계의 부정적인 큐를 셀프로 캐치해 내 "상대방 모르게" 자기 마음 속에만 담아두고 산다는 게 치명타인 거죠.
이 능력이 좋게 전개되려면,
큐를 캐치해서, 상대방과 확인하고, 대화를 통해 풀고, 서로 간에 좀 더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이 후행되어야 하는 건데,
예민한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이 과정이 없습니다.
부정적인 큐를 캐치하고 해석하고 괴로워하고 상처를 입고 여기서 끝난다는 거에요.
(참조논문. Yang, K., & Girgus, J. S. (2018). Individual differences in social hypersensitivity predict the interpretation of ambiguous feedback and self-esteem.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135, 316-327)
예민한 사람들은 내 주변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에 더 민감하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낄 지, 행동할 지를 더 잘 예측할 수 있을만큼 센스가 발달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social psychological skill 에 대한 연구를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이 스킬이 지능, 호기심, 내향성, 우울, 외로움, 신경증, 낮은 자존감, 삶에 대한 낮은 만족도 와
통계적으로 유의한 상관 관계가 있음을 보였습니다.
(참조논문. Gollwitzer, A., & Bargh, J. A. (2018). Social Psychological Skill and Its Correlates. Social Psychology,
49(2), 88-102. doi:10.1027/1864-9335/a000332)
뭔 말이냐?
소셜 큐에 민감한 (재기 넘치는 내향 성향의) 사람들은,
내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큐들에 노출된 삶을 살아오며, 그게 누적된 결과,
우울해지고,
관계를 단절하거나 회피하며 외로워지고,
그 결과, 자존감이나 삶에 대한 만족도가 낮아지게 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예민한 사람들은 오히려 같이 지내기에 괜찮은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센스가 좋은 사람들인데다가,
관계를 둘러싼 온갖 것들에 민감하므로,
서로 간의 사소한 부분들까지 신경쓰며 챙길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민할 수록 더 외로워진다는 건 어떻게 보면 비극입니다.
예민한 사람들이 원래부터 관계를 회피하고, 비사회적인 게 아니에요.
되려, 예민한 사람들은 그 관계가 나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 관계에서 내가 존중받고 싶기 때문에,
그로부터 받는 부정적인 큐들에 더 많이 괴로워하게 되는 것이고,
중요한 관계에서 내가 상처를 받게 되는 상황이 너무나도 스트레스풀하기에,
점점 관계를 놓아버리게 되는 것일 뿐.
예민한 사람들의 양면성,
굳 센스 와 너무 센서티브함 의 경계는,
결국, 내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분기됩니다.
나와 잘 맞는,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나의 굳 센스가 그 사람에게 세밀한 배려가 될 수 있겠고,
나와 맞지 않는, 안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나의 센스는 그 사람의 단점들과 부정적인 큐들을 캐치해내는데만 주로 사용되겠죠.
내가 센스 좋은 사람 과 만나고 있다? = 나랑 예민한 그 사람이랑 아주 잘 맞는다.
내가 너무 센서티브한 사람 과 만나고 있다? = 나랑 예민한 그 사람은 너무 맞지 않는다.
예민한 사람이 센스 넘치는 사람이 되느냐, 너무 센서티브한 사람이 되느냐는 그러니까,
내가 만나는 사람과 나와의 FIT 이 결정하게 되므로,
예민한 사람들일 수록, 사람을 잘 만나야 하고 신중하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결론으로 급마무리.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내 애인 정말 예민한데 많은 생각이 들게 되네...ㅋㅋ 센스있음과 센서티브함이 공존해서 단짠단짠이 명확한 그사람...
요즘 내 예민함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는데 도움이 된다!
본인이 예민해서 힘들거나 주변 가까운 사람이 예민해서 그 맘을 알아주고싶을때 일자샌드[센서티브]나 오카다 다카시 [예민함 내려놓기] 읽어보는거 추천해. 난 신경학적으로 많이 예민한데 읽으면서 도움 많이 받았어. 읽는데 친구들 생각도 나도 그러더라구 오히려 나처럼 신경학적인 예민함말고 사회적인 예민함이 발달한 사람들이 더 잘맞을거 같은 책들이기도 해
내얘기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