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 한 번 뿐인 인생, 무엇을 남길 것인가? ♧
지난 주에는 제가 다니는 교회의 원로 장로님께서 74세의 비교적 젊은 일기로 하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요즈음 70대는 세상적으로 일선에서는 물러나 있는 세대이긴 하지만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직 건강하고 왕성한 나이입니다.
아직 교회에서든 사회에서든 왕성한 활동을 하시던 원로장로님께서는 몇 년 전 어느 날 기습처럼 찾아 온 머리의 작은 돌기로부터 시작하여 급기야는 뇌종양이라는 선고를 받으시면서 1차적인 수술을 성공리에 마치면서 다시 건강을 회복하시는 듯 하였으나 이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시면서 병원 신세를 지시다가 합병증이 원인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급격히 나빠진 건강으로 인해 며칠간 병원에 계시다가 지난 주 수요일 저녁에 하늘의 부르심을 받으신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원로장로님이시라 교회장을 준비하여 가시는 길을 축복하고 위로하였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장로님을 장지까지 운구를 하며 그 가시는 길의 시종을 목도하는데 어디선가 알 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 내리는 것을 오랜 만에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날 때 고고의 성이라 하여 자신은 울지만 그 주변의 가족들은 그 탄생으로 인하여 웃는다고 합니다. 반면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건 이 세상을 떠날 때 적어도 그 사람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태어날 때 울면서 태어났던 자신이 죽을 때 웃으면서 떠나가는 삶이야말로 성공한 삶이라고 한다는 것을 어디선가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고인이 되신 장로님께서 가시는 길은 수많은 조문객들이 보내드리는 눈물의 바다였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구름같이 많은 조문객들의 헌화의 물결이 이어졌고 여기저기서 실로 그분의 가시는 길을 애도하는 마음을 분명히 읽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 날 마지막 발인 예배에서 목사님의 고인을 위한 마지막 설교 제목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였습니다. 한 평생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진정한 사랑을 받으신 분이었음을 보면서 저 장로님의 삶은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에 더없이 안타깝고 헤어짐이 아쉬워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나온 모양입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나를 위하여 진정으로 애도하고 가슴 아파서 눈물을 흘려 줄 사람들이 많은 인생, 그 인생이 아마도 가치 있는 인생이 아닐까 묵상을 하는 하루였습니다.
저희 아버님께서 살아계실 때 애창하셨던 유행가가 있는데 그것은 찐방가수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이란 곡입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중략)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저는 고인이 되신 아버님의 젊은시절의 애창가요라 멋모르고 따라 부르다가 그 가사를 음미해보니 삶의 허무를 노래한 듯하여 부르기를 멈추었었는데 이 가사 말 중 중요한 진리인 것은 결국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결국은 이 세상에 다 내려 놓고 가는 인생이라는 점에서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에 귀추가 주목이 됩니다.
결국 묘비명이나 납골당에 이름 석자를 남기게 되는데 그 이름을 세상이 어떻게 기억을 해줄 것인가??
한편 죽음 이후의 영생을 믿는 신앙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자신의 신 앞에 서느냐에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단 번 뿐인 인생의 길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정리하는 한 줄의 짤막한 묘비명에 어떤 말을 남길 것인가를 한 번쯤은 생각해보며 살아가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란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살아생전 버릇처럼 노래한 삶의 좌우명을 남기기도 하고 어떤 이는 자신이 쓴 대표시를 묘비명에 새겨 유작으로 남기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유명한 이는 그 사람의 삶을 유명한 시인으로 하여금 짧고 핵심적으로 노래한 글을 묘비명으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묘비명은 아마도 그 사람의 삶의 대표적이고 가장 핵심적인 요약일 것입니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로 유명해졌고 한 평생을 자유를 위해 살았던 러시아의 작가 카잔차키스는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 란 묘비명을,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버나드 쇼는 그의 묘비명에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라고 써서 세인의 주목을 받기도 했으며, 소설 ‘노인과 바다’로 유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일어나지 못해서 미안하오’란 묘비명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애잔한 마음을 불러 일으키게 했습니다.
금세기 세계에서 최고의 부자로 손꼽히는 빌게이츠는 2000년대 후반 이후 그의 자선단체를 통해 펼쳐진 엄청난 기부금 문화가 세상의 부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며 새로운 나눔의 사회라는 패러다임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그의 전 재산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31조원 (260억불)을 기부금으로 내놓았고 이후로도 자식들에게 상속으로 1000만불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크고 작은 가치를 떠나서 한 번 왔다가 떠나가는 인생의 길에서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에 대하여 한 번쯤은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오늘 나의 하루의 삶의 방향과 의미는 달라질 것 같다는 것을 이제는 고인 되신 사랑하고 존경하는 믿음의 선배님의 안타까운 사별을 목도하면서 느낀 유감을 나누어 봅니다.
새삼 오늘 주어진 하루의 일상의 삶과 건강한 나의 하루의 시작이 무척이나 감사한 아침입니다.
코칭 아름다운 동행 대표 최준영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