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lary Putnam은 온갖 방면에서 유명하다.
Hilary Whitehall Putnam (born July 31, 1926) is an American philosopher, mathematician and computer scientist who has been a central figure in analytic philosophy since the 1960s, especially in philosophy of mind, philosophy of language, philosophy of mathematics, and philosophy of science.
http://en.wikipedia.org/wiki/Hilary_Putnam
그가 사실과 가치의 관계에 대한 책을 썼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과학과 도덕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The Collapse of the Fact/Value Dichotomy and Other Essays』, Harvard University Press, 2002.
『사실과 가치의 이분법을 넘어서』, 힐러리 퍼트넘, 노양진 옮김, 서광사, 2010.
한국어판은 사지 않았다. 영어판만 인용하겠다.
어떤 면에서 보면 Kant와 Carnap은 양쪽 극단인 것 같다.
Kant는 도덕 철학이 수학과 비슷하다고 본 것 같다. 이성(또는 합리성이나 지능)이 있는 존재가 충분히 숙고한다면 정답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All interpreters of Kant take him to hold that moral statements can be rationally justified—indeed, the whole of Kant’s moral philosophy is an account of how this can be the case.
(『The Collapse of the Fact/Value Dichotomy and Other Essays』, 17쪽)
..., so the collapse of the philosophical credibility of Kant’s notion of “pure practical reason” (and with it of the Kantian variety of a priori ethics founded on that notion) led the logical positivists ...
(『The Collapse of the Fact/Value Dichotomy and Other Essays』, 17쪽)
Carnap은 논리 실증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He was a major member of the Vienna Circle and an advocate of logical positivism.
http://en.wikipedia.org/wiki/Rudolf_Carnap
그는 도덕 철학이 합리성과는 상관 없다고 본 것 같다.
In Hume’s case, the thesis was not meant to rule out the possibility of a philosopher’s writing a textbook on morals, whereas in Carnap’s case it certainly was so meant. (In the quotation from The Unity of Science above, ethical utterances were allowed no more meaning than “any arbitrarily compounded series of words”!)
(『The Collapse of the Fact/Value Dichotomy and Other Essays』, 19쪽)
Carnap’s purpose was to expel ethics from the domain of knowledge, not to reconstruct it. But the confidence of the logical positivists that they could expel ethics from the domain of the rationally discussable was in part derived from the way in which the analytic-synthetic and fact/value dualisms reinforced one another in their hands.
(『The Collapse of the Fact/Value Dichotomy and Other Essays』, 20~21쪽)
나는 Kant는 약간 읽어보았지만 Carnap의 글을 직접 읽은 기억은 없다. 여기에서는 Putnam이 Carnap의 입장을 제대로 소개했다고 가정하고 이야기해 보겠다.
인간만큼 또는 인간보다 더 똑똑한 외계인이 있다고 하자. Kant와 Carnap 모두 수학이나 과학의 경우 인간이 외계인을 또는 외계인이 인간을 설득할 수 있다고 볼 것 같다. 둘 다 합리적이기 때문에 논리와 실증의 힘이 통하는 것이다. 인간 중 적어도 일부는 상당히 합리적이다.
Kant는 도덕 철학의 경우에도 서로를 설득할 수 있다고 볼 것이다. 만약 외계인이 독일어를 충분히 배워서 Kant의 『실천 이성 비판』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외계인도 도덕 철학에 대한 Kant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라고 Kant는 기대할 것이다.
반면 Carnap은 도덕 철학은 합리적 토론의 영역에 속할 수 없으며 Kant를 충분히 이해하면서 읽더라도 외계인이 반드시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외계인은 고사하고 Kant가 지구인도 설득할 수 없다고 볼 것이다. Carnap이 보기에 도덕 철학의 영역에서는 합리성이 전혀 통하지 않고 서로 우기기만 한다.
Kant에게 도덕 철학은 수학과 마찬가지로 합리성이 100% 통하는 영역이다. Carnap에게 도덕 철학은 합리성이 0% 통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지식으로 불릴 자격도 없다.
Kant나 Carnap은 제대로 된 수학(또는 과학)과 엉터리 수학(또는 과학)을 가릴 수 있다고 볼 것이다. Kant는 제대로 된 도덕 철학과 엉터리 도덕 철학을 가릴 수 있다고 볼 것이다. 하지만 Carnap은 그런 구분이 의미가 없다고 볼 것이다.
내 입장은 그 양 극단의 중간 정도에 있다.
나는 도덕 철학의 영역에서도 합리성이 어느 정도 통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제대로 된 도덕 철학과 엉터리 도덕 철학을 가리는 것이 의미가 있다.
두 도덕 철학자 A와 B가 “인간의 건강은 소중하다”라는 도덕 명제에 동의한다고 하자. 그리고 두 도덕 철학자가 “흡연은 건강에 해를 끼친다”라는 과학 명제에 동의한다고 하자.
도덕 철학자 A는 다음과 같은 도덕 논증을 펼친다.
전제(도덕 공리): 인간의 건강은 소중하다.
전제(과학 명제): 흡연은 건강에 해를 끼친다.
결론(도덕 정리): 흡연을 규제해야 한다.
도덕 철학자 B는 다음과 같은 도덕 논증을 펼친다.
전제(도덕 공리): 인간의 건강은 소중하다.
전제(과학 명제): 흡연은 건강에 해를 끼친다.
결론(도덕 정리): 흡연을 장려해야 한다.
여기에서 철학자 B의 논증은 엉터리다. 즉 비합리적이다. 이 논증 사례들만 보고 판단해보자면, 적어도 A가 B보다는 더 합리적이다.
두 도덕 철학자 C와 D가 “인간의 건강은 소중하다”라는 도덕 명제에 동의한다고 하자.
도덕 철학자 C는 다음과 같은 도덕 논증을 펼친다.
전제(도덕 공리): 인간의 건강은 소중하다.
전제(과학 명제): 흡연은 건강에 해를 끼친다.
결론(도덕 정리): 흡연을 규제해야 한다.
도덕 철학자 D는 다음과 같은 도덕 논증을 펼친다.
전제(도덕 공리): 인간의 건강은 소중하다.
전제(과학 명제): 흡연은 건강에 도움을 준다.
결론(도덕 정리): 흡연을 장려해야 한다.
C와 D의 논증 과정 자체만 보면 둘 다 훌륭하다. 하지만 D는 잘못된 과학 명제인 “흡연은 건강에 도움을 준다”를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D의 논증에는 문제가 있다.
나는 수학의 공리(axiom) 개념과 정리(theorem) 개념을 빌어서 도덕 철학에 적용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학에서 공리에서 정리를 유도해낼 때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다. 지켜야 할 추론 규칙이 있다. 이것이 합리성의 한 측면이다.
나는 도덕 철학에서도 도덕 공리에서 도덕 정리를 이끌어낼 때 아무렇게나 하면 엉터리가 된다고 생각한다. 추론 규칙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중간에 과학 명제를 끌어들인다면 제대로 입증된 과학 명제를 써야 한다. “흡연은 건강에 도움을 준다”와 같은 엉터리 과학 명제를 끌어들이면 엉터리 도덕 철학이 된다. 이런 면에서 도덕 철학에서 합리성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런 면에서 나는 Carnap의 생각은 잘못되었으며 Kant가 옳다고 생각한다.
Kant는 도덕 공리도 합리성을 통해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나는 도덕 공리의 경우 입장일 뿐이며 합리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나는 Kant의 생각이 잘못되었으며 Carnap이 옳다고 생각한다.
수학계에서는 서로 모순되는 공리 체계가 사이 좋게 공존할 수 있다.
어떤 점 P를 지나며 직선 m과 평행인 직선은 몇 개인가? Euclidean geometry의 공리 체계에 따르면 한 개다. elliptic geometry의 공리 체계에 따르면 하나도 없다. hyperbolic geometry의 공리 체계에 따르면 적어도 두 개는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Euclidean_geometry
Elliptic geometry is a non-Euclidean geometry, in which, given a line L and a point p outside L, there exists no line parallel to L passing through p.
http://en.wikipedia.org/wiki/Elliptic_geometry
In hyperbolic geometry there are at least two distinct lines through P which do not intersect R, so the parallel postulate is false.
http://en.wikipedia.org/wiki/Hyperbolic_geometry
만약 elliptic geometry가 Euclidean geometry만큼이나 탄탄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Euclidean geometry를 받아들이는 수학자들은 elliptic geometry도 존중해준다.
반면 도덕 철학에서는 이런 식의 평화공존이 불가능하다. “인간의 생명은 엄청나게 소중하다”라는 도덕 공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인간의 생명은 전혀 소중하지 않다”라는 도덕 공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도덕 체계를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인간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살 테니 당신은 기분 내키는 대로 사람을 죽여도 괜찮다”라고 말하면서 공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학에서는 elliptic geometry와 Euclidean geometry가 평화공존할 수 있기 때문에 평행선이 몇 개인지를 두고 부질없는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 따라서 합리성만으로 충분하다. 반면 도덕 철학에서는 인간 생명이나 다른 것들에 대한 입장을 두고 충돌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 때 도덕 공리를 합리적으로 입증하는 것을 불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따라서 합리성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첫댓글 이 글은 이덕하님 사이비 과학의 정점이라고 봅니다.
애당초 담배를 끊어 얻는 건강이 소중한지, 담배를 피워 얻는 쾌락(기쁨)이 소중한지도 따져봐야 하며
건강이 소중한지, 반대로 건강을 희생하면서도 추구하는 무엇인가가 더 소중한지도 개인에 따라 다르며
또한 공리주의는 다수의 행복이 옳다고 전제하지만, 이 전제 또한 따져봐야지요.
무슨 자연주의 오류를 범하는 집단선택론자 흉내내는 것도 아니고 다수의 행복이 옳다고 전제하나요?
도덕 철학이 성립하려면, 거슬러 올라가 궁극엔 어떤 자의적인 가치판단이 옳다는 전재가 필요합니다.
"인간의 건강은 소중하다" 따위의 저는 동의하지 않는 문장이요.
애당초 이덕하님 스스로 "진화론적 공산주의자" 라고 자신을 정의할 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던 듯...하나를 포기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