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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주의 재림에 있을 두 가지 확실한 징조
(데살로니가후서 2:3-4)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재림에 대하여 미혹 받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고 주의를 환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들은 주의 재림을 간절히 사모하며 그의 오심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잘못된 종말론에 미혹 받은 사람들이 쉬 동심하여 정상적인 신앙생활에서 이탈하게 되고 두려운 마음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바울은 종말의 주의 재림의 시기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반드시 등장할 결정적인 두 가지 징조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다.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을 것을 예언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지적한 배도란 지난날 천주교의 배도를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천주교도 배도 세력 중에 하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종말에 등장할 그 배도의 세력은 아닌 것입니다.
종말에 세계적으로 등장할 배도 세력은 계 17장에 나오는 음녀의 세력을 가리킵니다. 계 17장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큰 음녀의 세력과 적 그리스도의 정체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곧 살후 2장에 나오는 바울의 말과 맥이 같은 종말적 계시인 것입니다.
이 음녀는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라고 했습니다. 이 음녀는 짐승인 적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시기를 전후하여 세상에 머리를 쳐들게 됩니다. 이 음녀가 머리를 쳐드는 일에 대하여 계 8장에서 셋째 천사와 넷째 천사의 나팔로 나오는데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 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쑥이라’고 했습니다. 배도적 사상은 사탄으로부터 내려옵니다. 이 영적 어두움이 온 세상에 뒤덮여 지는데 특히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하는 강들과 여러 물 샘에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이 세력이 등장하면 온 세계의 종교 세력은 적 그리스도를 구심점으로 하여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력이 전세계의 종교기관을 장악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그 세력은 능히 바벨론을 이룰 것입니다.
이 음녀는 음행의 포도주로 온 세계 인류를 취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진리가 사라지게 되고 아모스 선지가 예언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의 기갈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이 음녀는 계 17:3절에서 붉은 빛 짐승인 적 그리스도를 탔다고 했 12 \ 2:3-4
습니다. 이 자의 등장은 깨어 있는 성도들은 다 알 수 있습니다. 이 무서운 세력이 사탄의 능력을 힘입어 적 그리스도에게 신적 권위를 부여하며 그 신상 앞에 경배를 시키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 자가 먼저 세상에 등장해야 인류의 종말이 오며 주의 재림을 전후하여 이런 일이 먼저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다음에 멸망의 아들이 나타난다.
바울은 두 번째의 징조로 3절에서 밝히기를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적 그리스도의 이름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짐승, 붉은 짐승, 열 뿔, 작은 뿔, 대적하는 자, 불법의 사람, 적 그리스도 등 많은 이름으로 나타나지만 그 자의 정체는 바로 적 그리스도입니다.
불법의 사람이라고 말한 것은 이 자가 인류의 종말에 등장하여 하나님을 대적할 것이기 때문에 부쳐진 이름이며 멸망의 아들이란 이자는 최종적으로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4절에서 이 자에 대하여 ‘저는 대적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 자의 대적은 두 가지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는 유대인들에게 나타나는 대적인데 유대인들에게 종교적 핍박을 가하며 제사와 예물을 금지시키며 자신을 하나님이라 하여 경배시키려는데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 자가 세상의 구세주로 자신을 나타내 보이면서 자신의 표를 받게 하고 그 표를 받지 않는 자는 죽일 뿐 아니라 모든 매매를 금지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우상을 만들어 모든 인류들로 그 앞에 경배케 하는 일을 시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에 대하여 4절에서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자는 인류의 종말에 예루살렘에 새롭게 세워진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자신의 우상을 그곳에 세워 경배케 하므로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할 것입니다. 이런 존재가 인류의 종말에 반드시 등장하는 것입니다.
결론 : 이 두 가지 징조는 주의 재림이 이르렀다고 하는 결정적인 증거로 등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징조가 이르기도 전에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하는 잘못된 거짓 선생들의 미혹에 넘어가 교회에 혼란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경종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주의 재림을 사모하고 준비하되 결코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므로 신앙적 손상을 입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13 \ 2:5-12
(7) 악한 자의 역사
(데살로니가후서 2:5-12)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적 그리스도의 등장과 그 자가 세상에 등장한 후 이 자에 의해 자행될 미혹의 역사에 대한 자세한 계시를 이곳에서 밝혀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씀해 주는 적 그리스도의 모습은 단 7장과 계 13장에 나오는 활동 모습과 똑같기 때문에 우리는 주의 깊게 살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1. 적 그리스도가 나타날 시기
바울은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불법의 비밀이란 적 그리스도를 등장시키려고 하는 사탄의 비밀한 계획을 말하는데 이 자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세상에 등장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음모를 획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자의 등장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사탄이 제아무리 활동하려 해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활동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한 후, 그의 성품이 간교해 지고 범사에 하나님을 훼방하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방해하는 일을 하지만 그 같은 사탄의 역사는 결코 성공작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이런 계궤와 그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탄의 그런 일들을 역으로 이용하시어 그의 백성들을 연단 하시고 회개케 하시며 죄와 싸우게 하시어 온전케 하시는 일에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적 그리스도로 아무 때나 세상에 그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그의 등장은 인류의 종말, 주님이 재림하실 그 시기에 가서야 이 자를 등장시키시는 것입니다. 막는다는 말은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 막는 하나님의 역사가 마감되면 이 자의 등장이 허락되는데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옮기신다는 말은 7년 환난이 온 후, 전3년 반이 지나고 후3년 반의 시기에 이르렀을 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두 증인으로 전3년 반 기간의 예언의 사역을 마치시고 그의 백성들을 안전지대인 하나님의 예비처로 인도하신 다음, 이 세상에서 옮기시는 것입니다. 후 3년 반에는 구원을 위한 성령의 사역이 없습니다. 다만 후 3년 반에 떨어진 미련한 처녀들로서의 성도들이 있지만 이들은 내주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뿐, 복음을 전하므로 구원을 얻게 하는 복음 전파의 사역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불법한 자의 비밀의 활동이 본격화 할 것입니다.
14 \ 2:5-12
2.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라
8절에서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불법한가 나타나자 곧 주 예수의 입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신다고 했습니다. 이 일에 대한 정확한 계시는 단 7장과 계 13장과 19장에 상세히 계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적 그리스도는 바로 이 시기에 그 모습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실 것입니다.
바울은 9절에서 이 불법한 자는 사탄의 역사를 따라 임한다고 했습니다. 적 그리스도는 사탄이 보내는 그의 사자입니다. 이 자는 가룟 유다처럼 태어날 때부터 멸망의 자식으로 예정된 가운데 태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계 17정에서는 이 자에 대하여 무저갱의 사자라고 했습니다. 이 자의 활동에 대하여 계 13:3절에서 이르기를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능을 그에게 주었더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붉은 용으로부터 모든 권세를 위임받은 이 불법의 인물은 그가 가진 그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원래가 사탄은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1) 그런데 적 그리스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멸망하는 자들이란 원래가 마귀와 함께 멸망 받을 자로 세상에 태어난 자들입니다. 사탄은 누가 택자 인지, 누가 불택자 인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미혹의 대상을 설정하지 않고 아무에게나 손길을 뻗으며 짐승의 표를 주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모든 자들이 사탄에게 속하여 멸망 받기로 예정된 자들인 것입니다.
(2) 그러면 이처럼 멸망 받을 자의 대상에 대하여 10절에서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택정을 받지 못한 사람은 진리의 사랑을 거역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으므로 구원함에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3)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처럼 적 그리스도를 등장케 하시어 미혹의 영으로 역사 하시는가? 이에 대하여 12절에서 이르시기를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결론 : 진리를 거역하고 불의의 행실을 좋아하며 믿음을 거역하는 자들은 결국 재림하시는 주님에 의해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는 적 그리스도의 등장해 관한 바울의 이 같은 경종에 귀를 기우려 그 때에 세상에 나타날 불법한 자의 정체를 똑바로 보아 미혹 받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5 \ 2:13-17
(8) 굳게 서서 지키라
(데살로니가후서 2:13-17)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생각할 때 항상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사탄의 모든 유혹을 이겨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기 위해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1. 하나님의 부르심
바울은 13, 14절에서 복음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관하여 몇 가지 사실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택하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구원 받을 자들을 처음부터 예정하셨다는 의미로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택정 하신 것을 말합니다. 처음이란 말은 창세 전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실 그의 백성들을 미리 작정해 놓으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무대로 이 세상의 창조가 필요하셨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 사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종말의 하나님의 역사도 이 택한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2)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이미 완전히 거룩해진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생명이 중생으로 다시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이 거룩은 하나님의 법적 선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의가 내 의가 되어 내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런 법적 자격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다른 하나의 거룩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거룩입니다. 이것은 의를 얻게 되는 방법이거나 수단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이루어야 할 생활의 조건이며 성결의 과정입니다. 이것 역시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내 안에서 역사 해 주시므로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다음에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 진리를 믿게 하십니다. 구원을 이루는 일에는 진리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는데 하나님은 이 복음의 진리를 통해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에 대 16 \ 2:13-17
하여 고전1장에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성경이라도 그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빼 버리면 그 성경은 이미 진리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 택하신 자들에게만 성령을 통해서 진리를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오직 택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진리를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구원의 역사를 위해 바울은 그 복음으로 저희들을 부르신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주님의 양 무리들을 부르시는 목자 되신 예수님의 음성임을 알고 언제든지 어느 때나 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2. 굳게 서서 지키라
바울은 14절에서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들이요 그가 받을 유업을 함께 받을 하나님의 상속자들이며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옷 입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는 사람들이기에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15절에서 데사로니가 교인들에게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권고했습니다. ‘이러므로’란 말은 이런 까닭에 란 뜻으로 바울이 아직까지 그들에게 말한 이 모든 말씀으로 비취어 보아서란 의미입니다. 우리의 부르심이나 택하심이나 구원은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누구의 말이나 유혹에 흔들림이 없이 믿음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 동안 그들에게 말씀으로 증거한 것이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이란 바울이 편지로 그리스도의 교훈을 써 보낸 그 교훈을 지키는 생활을 하라고 한 권고를 말합니다.
결론 :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축원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위로와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런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기원했습니다. 이 아침에도 이런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의 역사가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7 \ 3:1-2
(9) 목회자를 위한 기도
(데살로니가후서 3:1-2)
가장 많은 계시를 주님으로부터 받은 능력 있는 하나님의 종,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당부한 기도 제목은 3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주의 말씀이 달음질하기를 위해,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영광스럽게 되기 위해서, 세 번째는 무리하고 악한 자에게서 구원받기 위해 기도하기를 부탁한 것입니다.
1. 목회자를 위한 기도의 필요성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헛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과연 그런 기도가 필요한 것인가? 의심할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런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성도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위해 반드시 기도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이 같은 기도는 주의 종들의 사역에 큰 능력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런 사실을 체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많은 교회를 향하여 자신에 대한 기도에 대하여 간곡히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 12장을 보면, 베드로가 복음을 위해 감옥에 갇힌바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두 군사들 틈에서 쇠사슬에 메어 누워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숫군들은 문 밖에서 삼엄하게 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천사가 옥중에 나타나 베드로의 옆구리를 차서 깨우며 급히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몸에서 쇠사슬이 벗겨지고 옥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런 역사는 어떻게 일어난 것입니까. 성경에는 베드로는 기도치 않았지만 교회는 그를 위해 간절해 하나님께 빌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교회의 기도로 옥에서 풀리는 기적의 역사를 체험케 된 것입니다.
2. 바울이 부탁한 기도의 제목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의 기도의 부탁이 세 가지로 나옵니다.
(1) 바울은 주의 말씀이 달음질하기를 위해 기도를 당부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달음질한다는 말은 빨리 주의 복음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전달되기를 원하는 그의 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주의 복음이 더 널리, 더 빨리, 더 많이 확산되기를 소망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면 어떤 길도 사양하지 않고 달려갔으며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18 \ 3:1-2
여기지 아니했습니다. 복음은 그 자체가 폭발적인 능력입니다. 그 속에는 사람의 심령을 변화시키고 확산시키는 놀라운 폭발력이 있습니다.
(2) 두 번째가 하나님의 말씀이 영광스럽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바울은 말하기를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일은 결실 함이 없다고 낙심하거나 구원받은 사람이 없다고 복음을 전했던 입을 봉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이 세상에 전파되는 것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3) 바울의 세 번째 기도 제목은 무리하고 악한 자에게서 구원받기 위하여 기도해 주기를 부탁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갇히면 그것은 우리들에겐 다시없는 영광이지만 그러나 손실을 보게 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데 거치는 장애물이 없게 해 달라는 기도를 부탁한 것입니다.
3.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바울은 2절 하반 절에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바울이 한 이 말의 뜻은 믿음은 모든 사람이 다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인간의 구원에는 매우 제한적이란 뜻입니다. 믿음은 인간의 자유 의지에 의하여 자기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복음을 자기 소유로 가지려고 그의 자유 의지를 발휘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자들이 이 복음을 받아 드릴 수 있도록 역사 하시기 때문에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참 보화입니다. 이 보화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보화를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기서 전도자의 전도하는 자세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복음을 전달받은 자가 복음을 거역했을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데 사람이 그를 믿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2) 우리는 오랜 기간을 두고 전도해도 결실이 적으면 실망함. 노아의 경우 120년간 전도 8가족만 구원,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전하든지 내 양은 내 말을 듣고 다 주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의 종들의 복음 전도를 위해 성도는 배후에서 쉬지 말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19 \ 3:3-5
(10)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
(데살로니가후서 3:3-5)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에게 우리 주님은 미쁘신 분이시니 그 미쁘신 주님께서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켜 주실 것이라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미쁘다는 말은 믿음직스럽다는 뜻으로 전적인 신뢰감을 나타낸 말입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그의 모든 성도들에게 신뢰를 받으실 만한 미쁘신 분이십니다.
1.미쁘신 주님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미쁘시다 는 말은 우리에게 언약하신 약속을 지키시는 일에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분의 약속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은 언제나 성도들에게 용기와 확신과 위로를 줍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확실한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미쁘신 예수님은 자신의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를 악한 자에게서 지켜 주실 것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바울의 확신
바울은 4절에서 그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명한 것을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주안에서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의 이런 확신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아름다운 신앙과 그들이 바울이 권고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에 전적인 신뢰를 보이고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명한 모든 말씀은 곧 주님이 주신 명령입니다. 바울은 그 모든 것들을 오직 주님의 계시에 의해 그들에게 명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깨닫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들이 그 명령에 따를 것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확신을 주의 인도하심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5절에서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한다는 말고 그의 확신을 나타낸 것입니다.
(1) 바울은 5절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한 말에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크고 위대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로 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사랑 20 \ 3:3-5
안에 들어간다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사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 들의 신앙생활의 승리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축복이 오직 그 사랑 안에서만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 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없이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기준이 됩니다. 순종이 없는 사랑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순종이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리 사랑을 외쳐도 그 사랑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2)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이 말은 ‘그리스도인 들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에 대한 인내를 배우라’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내의 말씀이라고도 말하는 이유는 인내하는 자만이 말씀의 결실을 맺으며 말씀의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 들에게 인내가 없으면 하나님의 약속을 바랄 수 없습니다. 히 10 : 36절에서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받으신 영광은 주께서 끝까지 그의 사역을 이루심에 인내하시어 그 결실을 맺었다는데 있습니다. 히 12 : 22절에서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달려가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면 그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해 줍니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고난을 이기고 그 영광에 이를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인내로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인내가 없이는 고난도, 핍박도, 시련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결론 :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임하시어 우리들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인내로 우리의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때, 우리의 구원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오 내 속에 임재 하시는 주께서 이루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빌 1 : 6절에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21 \ 3:6-18
(11) 그리스도인의 규모 있는 생활
(데살로니가후서 3:6-18)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따라야 할 규모 있는 행동에 대하여 경계하고 있습니다. 특히 6절에서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들에게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규모란 말은 본보기란 뜻입니다. 그리스도인 들은 마땅히 다른 사람에게 본보기로 자신의 행동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이라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이 보낸 서신으로 일러준 교훈을 의미합니다. 이런 것들을 지키지 아니하는 형제들에게서 떠나라고 한 것입니다.
1. 바울이 보인 규모 있는 생활
바울은 자신이 스스로 교회 앞에서 규모 있는 생활을 한 일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습니다.
(1) 첫째로 수고하지 아니하고 양식을 취하는 자에 대해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 중에 일하지 않고 먹는 게으른 자들에 대해 이처럼 경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경우를 예로 들었습니다. 바울은 ‘누구에게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했다’는 사실을 경종 했습니다. 바울이 이런 생활을 한 것은 아직 신앙적으로 어린 처지에 있었던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물질적인 폐를 끼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장애가 될 것을 우려해서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그런 누를 끼칠 만한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목회자는 복음으로 살아야 할 하나님의 일꾼들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의당 모든 생활비와 활동비를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초기에 그런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덕을 세운 것입니다. 모든 목회자들이 본 받을 만한 미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일하지 않고 먹는 자는 일종의 기생충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규모 없이 행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일하지 않은 이유는 주 재림의 긴박성 때문에 일하는 것도 배우는 것도 필요 없다는 경망스럽고 잘못된 종말관에서 온 것입니다. 또한 신비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 중에 구하면 주신다고 하신 일, 염려하지 말고 구하라고 하신 말씀 등을 잘못 오해 한데서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은 결국 교회에 누를 끼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신앙적인 나쁜 영향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류의 사람들에게 일하기 싫거든 22 \ 3:6-18
먹지도 말라고 엄히 책망하였습니다.
2. 게으른 자의 경우
일하기를 싫어하는 자는 게으른 자를 말하는데 이 게으른 자에 대한 교훈이 잠언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잠20:4절에서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기를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잠19:15절에서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나태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십계명에도 엿새 동안에 힘써 네 모든 일을 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들은 일을 하되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두 가지 생활 지침이 있습니다.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교회를 봉사하는 일에는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하나님은 게으른 자에게 명하시기를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하셨습니다.
잠12:27절에서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시128:2절에서 하나님의 축복이 어떤 모양으로 받느냐?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도에 행하는 자로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고 하셨습니다. 손의 수고가 없으면 하나님의 축복도 만들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에게 해야 할 일
바울은 14절에서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 같이 권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거나 순종치 않는 자들에 대한 우리의 처신에 대하여 그 사람을 지목하라고 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들과의 교제를 삼가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교제란 일반적인 교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로서의 교제로 이런 사람들과는 일정한 신앙적인 경계선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끄럽게 하라는 말은 그런 생각에 동조하지 말고 책선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람들과 곧잘 어울려 한 무리가 되는 경우조차 있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이나 생활이나 헌신이나 규모 있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질서와 평강의 하나님이시므로 우리의 생활에서 그런 열매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