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타뇰라(Montagnola), 헤세(Hesse)의 빛 문육자(前 중등학교 교사, 한국문인 회원) ![](https://t1.daumcdn.net/cfile/cafe/270D434B57EE0B451A)
자동차로 달려온 지, 열 하룻날, 스위스의 몬타뇰라에 도착했다. 우선 여행자 안내소에 들러 안내 받은 숙소는 팡숑(pensione)이었다. 숙소를 찾아 올라가는 길에도 ‘헤르만 헤세의 박물관으로 가는 길’, ‘헤르만 헤세의 집으로 가는 길’과 같은 이정표가 있어 처음 찾는 길손들에게도 낯설지 않았다. 그의 고향인 독일의 칼브가 가슴 설렘이었다면 일찍 이주(1919년)한 스위스의 루가노 지방 몬타뇰라는 눈부신 빛이었다. 작은 마을, 43년간을 멋진 정원사가 되어 정원을 가꾸며 글을 쓰고 겸허하게 자신을 채찍질한 헤세가 처음으로 지었던 바로크풍의 고풍스러운 저택 ‘카사 카무치’나 마지막까지 살았던 집, ‘카사 로사’ 위로 뚝뚝 떨어지는 고운 빛들이 헤세로 하여금 불혹의 나이에 첫 붓을 들게 했으리라. 자연의 선물이 위대한 작가의 손을 빌어 문학으로, 또는 마음 가는 대로 그린 그림으로 탄생하였음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눈부신 마을, 몬타뇰라는 헤세 영혼이 깃들어 있는 영감의 보고였다. 골목을 들어서면 알락달락한 지붕의 집들이 시선을 끌어당긴다. 좁고도 구불구불거리는 골목길의 정겨운 풍경들. 모퉁이를 돌아서면 화들짝 놀라게 하는 이름 모를 꽃들이 줄지어 펼쳐진다. 다시 눈을 들면 싱싱하게 열매를 올리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는 포도넝쿨들이 탐지다. 그 위에 다칠세라 가볍게 앉은 하늘, 멀리 내려다보이는 에메랄드 빛 루가노 호수까지 헤세의 손끝에서 맑디맑은 수채화로 피어났음을 볼 수 있음에 가슴이 뭉클해왔다. 몬타뇰라에서는 많은 작품들이 빛을 보는 반면 그의 고향, 독일에서는 히틀러 집권 기간엔 오히려 불온하다하여 ‘수레바퀴 아래서’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황야의 이리’,‘관찰’등이 인쇄되지 못한 때도 있었음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의 심오한 사상과 언어의 연금술은 더 이상 묻혀 있지는 않았다.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내놓은 ‘데미안’은 젊은이들의 바이블이 되었고 1943년에 출간된 그의 대작 ‘유리알유희’는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주었다. 몬타뇰라를 거닐며 생각에 잠겼다. 헤세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이곳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은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 개의 에피소드로 엮어진 단편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리 눈 여겨 보지 않는 책이다. 클링조어라는 화가를 통해 이글거리는 태양과 미묘한 색깔들을 세밀하게 표현한 것은 흠모하던 반 고흐를 생각했음이리라. 붉은 색과 노랑이 이 소설을 지배한다. 반 고흐가 잘 사용하던 색깔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바로 몬타뇰라의 빛이기도 하다. 잉글리시 레드, 시에나, 카드뮴 옐로, 크롬옐로, 나폴리 옐로,... ..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화려한 빛, 눈부신 색깔들은 카사 카무치에서 내려다보면 한 눈에 볼 수 있는 카니발이다. 루가노 호수의 눈부신 파리 블루의 색채까지도 한 몫을 한다. 죽음을 앞둔 클링조어가 마지막 여름을 불태우는 처절한 예술혼이 전율처럼 오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헤세의 정신이고 그의 문학이며 그림이고 어릴 때부터 길들여온 음악의 리듬이었다. 몬타뇰라는 헤세의 몸속 구석구석까지 붉은 포도주처럼 스며들어 그의 손끝에서 예술로 피어올랐다. 어디선가 정원을 가꾸던 그의 손길이 쓸어내고 다듬는 소리가 들려올 것만도 같았다. 저녁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사이프러스 나무가 열병식을 하는 성 아본디오(Abbondio)성당에서 은은한 빛처럼 퍼져 나오는 삼종三鐘이었다. 성당 맞은 편, 아본디오 성당의 묘지에 잠든 위대한 예술가의 그림자를 찾아 걸음을 옮기는 나를 몬타뇰라는 당사실처럼 고운 빛으로 그 앞까지 안내했다. 헤세가 추구하던 빛의 집합이었다. 그리고 그가 지냈던 곳마다 아름다이 가꾸어진 정원에 쏟아지는 해살이었다. 그는 몬타뇰라의 자연을 사랑한 화가였으며 마음의 울림을 노래한 시인이었고 처절할 만큼 열심히 살아온 영혼을 갈무리한 소설가였다. 그리하여 그가 남긴 위대한 빛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영원한 그리움으로 남아 메아리로 퍼져 갈 것이다. ........우리의 영혼을 통해 신의 빛은 창조하면서 행위 하면서 수천 가지 고통과 행복으로 변모한다네. 그리하여 우리는 그를 태양이라 찬미한다네. - 헤세의‘색채의 마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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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간만에 좋은 작품을 만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