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3일차>
여행이란, 같은 곳을 보고도 서로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행 중에는 언제나 모닝콜 시간보다 일찍 눈을 뜬다. 커튼을 젖히자 굵은 빗줄기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샤워를 끝내고 짐을 챙겨 버스에 싣어 놓고 호텔식 뷔페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한 후 오룡산으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오른다.
@우리 일행을 태우고 다녔던 압록강 여행사 버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단동시 인구는 약 250만 명이고 시 중심에만 약 70만 명이 거주하는데 그 중 약 20%정도가 한국말을 사용한다고 한다.
중국은 건물을 비롯하여 상점 간판, 자동차 등 도시가 붉은색과 황색 계열이 아주 많다. 한국에서 튀는 색으로 여겨 이들 색깔을 피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중국에서 빨간색은 복(福)을 상징하고 노란색은 재물(황금)을 상징하기 때문이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집들을 보면 우리나라와 달리 처마가 짧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통해 복이 깃든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아직도 중국 농촌의 재래 화장실은 이용하기가 곤혹스럽다. 지독한 냄새 때문에 파리도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오룡산(五龍山)
단동시를 품고 흐르는 압록강 유역에는 풍광이 뛰어난 관광지가 많다. 단동에서 봉황산을 오가면서 동쪽으로 보면 서울의 북한산이나 도봉산 같은 바위산이 눈길을 끄는데 이 산이 바로 오룡산이다. 단동시에서 북으로 17km 떨어진 오룡배(五龍背)에 위치한다. 오룡배는 온천이 유명하다. 조선시대에는 사신이 중국의 북경을 가기 위하여 평양·신의주를 거쳐 이곳 오룡배에서 온천을 하며 쉬어 갔다는 기록이 있다.
오룡산은 국가 AAAA급 여유구(旅遊區)로 자연경관이 뛰어나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이날도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병풍처럼 둘러친 기암괴석의 산봉이 잇닿은 오룡산은 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산 중턱에는 명조말기(1506~1521)에 개사하여 2000년에 다시 지은 면적 8000 평방미터 규모의 거대한 영봉선사(靈峰禪寺) 자리하고 있다. 특이하게 사천왕을 모신 천왕전이 있고 그 뒤편으로 대웅보전이 배치되어 있다. 수많은 전각들이 있는 큰 규모의 사찰이다.
영봉선사를 둘러 보고 다른 일행들은 정상을 향해 오르지만, 나는 우중 산행을 포기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버스로 돌아온다.
약 1시간 후 일행들이 우중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버스로 돌아왔다. 단동시로 이동하여 금강산공원 입구 잡화점에 들렸다가 '민속촌'이라는 간판을 건 한국식당에서 아구탕으로 따뜻한 점심식사를 한다.
북한의 명산 금강산(金剛山)과 동음인 단동 금강산 공원은 시가지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1905년에 지어진 91㎢의 종합공원으로, 경사가 완만하며 산 정상의 금강정까지 도로가 개설되어 차량으로 쉽게 오를 수 있고, 이곳에서 신의주 전 지역을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귀국하는 배 승선 시간까지 남은 시간이 애매하다. 호산장성(옛 박장성)을 다녀오기는 시간이 조금 부족하여 다음 기회로 미루고 압록강 단교를 관광하기로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가슴이 뛰었던 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역사적 현장을 볼 수 있다는 설렘 때문이었다.
압록강(鴨綠江) 2000리
압록강은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상류(백두산-중강진), 중류(중강진-만포), 하류(만포-용암포)까지 흐르는 한반도 최장(길이 총 820km)의 강이다. 원래 록수(綠水)라고 불렸으나 이후 수컷 오리 머리색처럼 푸르다는 압두록(鴨頭綠)에서 유래되어 오늘날 중국에서 는 '야루쟝(鴨綠江-압록강)'이라고 부른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압록강은 삼각주가 발달되어 섬이 많은데 그 수가 총 124개이며 그중 90%가 북한령이라고 한다. 1964년 김일성과 '조우언라이(周恩來)'가 국경협약에서 사람이 살거나 쓸모 있는 섬은 모두 북한령(대표적 섬은 위화도, 어적도, 검둥도, 마안도-한반도 최서안)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압록강의 국경은 강 중심이 아니라 강 수면으로서 강은 북한과 중국이 공유한다.
압록강 댐은 총 4개이며 태평만 댐과 운봉 댐은 중국소유이고 수풍댐과 위원 댐은 북한소유로 되어있다. 압록강에는 잉어, 붕어, 가물치, 뱀장어, 빙어, 은어 등 약 100여종의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으며 아직은 1급수로서 한반도에서 제일 깨끗한 강이다.
압록강공원
북한과의 국경을 흐르는 압록강 가에 있는 압록강공원은 2003년 강변을 따라 도로를 확장하고 시민 휴식시설과 춤추는 야경 분수대 설치 등 공원시설을 확충하고 무료가 되면서 더욱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압록강공원 우측에는 관광개발구가 조성되어 고급호텔과 레스토랑, 상가가 있다. 1992년에 단동 경제개발계획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주변에 데이트하는 연인들도 보이고 가족단위의 관광객도 보인다.
끊어진 압록강 다리 옆에는 철로와 도로를 겸한 길이 940m의 조중우의교(朝中友誼橋)라는 이름의 복선형 철교가 놓여 있지만 왕래가 거의 없다.
2001년, 북한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베이징행 국제열차를 타고 이 다리를 지나며 단동개발구의 발전상을 보며 놀라워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압록강 단교
고구려 평양성을 향하던 발해와 당의 사절단이 오가던 강. 일제강점기 당시 삶의 터전을 잃은 한국인들이 눈물을 떨구며 건너던 강.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나라 잃은 설움에도 해방을 꿈꾸며 넘나들던 강. 그 곳에 압록강 단교가 자리 잡고 있다.
압록강 단교는 압록강 다리 중에서 가장 일찍이 건설됐다. 자료에 의하면 일본의 조선총독부가 만주침공을 염두해 두고 철도사용을 목적으로 1909년 5월부터 시공하기 시작하여 3년 동안 연인원 5만 명을 동원하여 1911년 10월에 준공됐다. 길이 944m, 넓이 11m, 12연의 교량 중 신의주 쪽에서 9번째 중국 쪽에서 4번째가 개폐식으로 되어 90°회전이 가능하여 범선들이 통과 할 수 있었다.
일행들은 단교 위를 걸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동의 모습이 너무 대조적이어서 가슴 아프다.
어느 순간 엿가락처럼 휘어진 모습이 보이고 더 이상 갈 수 없다. 북한 땅이 손에 닿을 듯 지척이다. 강 너머로 바라 볼 수밖에 없는 분단의 현실에 가슴이 먹먹하다. 만주벌판을 달렸을 고구려인들과 이곳을 무대로 활동했을 독립 운동가들의 눈물이 보이는 듯하다.
이 다리는 6·25 한국전쟁 때 중공군의 남하를 막기 위한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돼 중국 단동과 연결된 절반만 남아 있다. 미군은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하여 북한 땅인 신의주 쪽을 폭파했다. 그래서 현재 신의주 쪽은 교각만이 남아 있고 단동 쪽은 철교와 교각이 그대로 남아있다. 압록강단교(鸭绿江断桥)라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은 역사보존을 위해 일부러 철거하지 않고 놔두고 있다고 하는데 반미 선전의 역사 유물로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1993년 6월에 단교를 수리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관광지로 부상했다.
압록강 단교 광광을 마치고 단동항으로 이동한다. 광장 오른편에 있는 농산물잡화점에 들려 아내가 부탁한 참기름과 땅콩을 구입하고 출국수속을 밟는다.
<여행4일차>
저녁식사 후 특별히 우리일행들에게만 선사에서 제공하한 맥주를 마시며 출항을 기다린다. 강풍주의보가 내려지고 풍랑이 거세 출항이 자꾸 늦어진다. 드디어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울리고 예인선에 의해 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단동항에서 밤을 새고 결국 다음날 아침 7시가 넘어 출항한다. 덕분에 선상 갑판에서 일출을 감상하는 행운을 얻는다. 크루즈 여행은 멋진 일출과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행기 여행에서 느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망망대해로 들어서자 거센 파도에 배가 요동치고 여기저기서 고통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멀미약을 복용해서인지 몸 컨디션이 좋아서인지 다행히 멀미를 하지 않아 편안한 여행을 즐긴다.
입항이 늦어져 점심식사로 카레라이스가 무료로 제공되지만 많은 승객들이 멀미 때문에 식사하는 인원은 적다. 지루하다. 텔레비전(한국방송이 나온다)을 보다가 쪽잠을 자다가 캔맥주를 벗 삼아 바다 풍경을 응시하기를 되풀이한다. 저녁식사가 무료로 제공되고 예정시간 보다 12시간이 지연되어 밤 9시가 넘어서 인천항에 도착한다.
결국 돌아오기 위해 길을 떠난다. 등산과 하산이 하나인 것처럼, 여행도 돌아와야만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그곳이 집이든, 연인이든, 자기 자신이든 우리는 돌아갈 대상을 향해 일부러 먼 길을 에돌아간다. 그래서 모든 여행자는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어린 애인 같다. 돌아오지 않는 여행은 인생뿐이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 살아 숨 쉬는 것도, 건강한 것도, 이렇게 추억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무엇보다도 돌아갈 수 있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매년 떠나는 해외여행이지만, 이번 답사여행은 멋진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여행은 어딜 가는가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가느냐 그리고 날씨가 큰 몫을 차지한다. 이번 여행은 함께 동행하는 너무 좋은 사람들이 있어 외롭지 않았고, 단동 여유국(旅遊局) 관계자와 현지 여행사가 베푼 화려한 만찬(晩餐)과 알찬 일정 등 너무 만족스러웠다.
좋은 기회를 제공한 희선팀장과 산찾사친구 그리고 동행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첫댓글 친구가 함께 하니 든든해서 좋았다우~
전문가 칼럼란이 또 요렇게 생겼으니 황태자글을 이젠 아주 쉽게 여기서 볼 수 있어 난 아~주 조아~
친구 덕분에 좋은 여행을 하고 와서 행복했다우..
종종 함께 하자구요^^
강先生거웠답니다.
이번 여행에 룸 메이트로 함께였는데 혹시나 실수는 없었는지 모르겠소이다
어찌 됐건 어느 여행지를 누구랑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그 여행이 다르게 느껴질텐데....
함께여서
담에 또 어디에선가 다시금 만납시다.
수고 많으셨어요
룸메이트로 하룻밤 좋은 인연으로 기억합니다...
다음 기회에 또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다음 기회땐 홀라당 벗고 입적하는일 없도록 관리 잘 하세요~. 코킴님....ㅋㅋ
황태자님 후기글 잘 읽고 보고 갑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기회 만들어 다음에 또 뭉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