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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지나 온 시간을 더듬어 본다.
개인 프로필 - Personal Profile - ( 2 )
38년간 공직생활을 하고 정년퇴직을 하며 지내온지 만 16년 시간이 지났다. 열심히 살아왔고
놀 줄도 알면서 여기까지 왔다. 흔적을 남긴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나를 되돌아보는 지금이다.
이곳에는 정년퇴직을 하고 blog를 개설한 날부터의 흔적들이 담기고 있다. 그 이전에 흔적은
별도로 모여져 서재에 쌓아두고 관리되고 있다. 프로필이 관리되여오다 헝클어져 뒤죽박죽이
되어 이제 다시금 이곳에 흩어졌던 blog 프로필 란을 신설, 2017.7.27.부터 다시 정리하였다
크게 이루어 놓은 것은 없어도, 사진을 취미 삼아한다는 게 폼나게 잘하지는 못하고 항상 부족
해도 처음처럼 진솔히살아오며 예까지 왔다. 내 나이 칠십다섯이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나도 늙으니까 아픈 것이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을 순리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 거다.
2021.7.27. 하기, 송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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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년도
[정년퇴직 그 후 16년]
나는 이 만큼 왔다.
기대지 말자,
다 주려고 말고,
다 받으려 말자.
2016. 01.05. 하기, 송정학
그대로의 민낯이다. 있는 그대로를 진솔하게 담자 (2016. 02.)
사진에 대한 익힘을 알려주는 젊은 교수를 만나 동호회를 만들었다. (경주 첨성대 앞 산에서 2016. 4.)
인간사 같은 건 내 알 바 아니다, 라는 듯 계절은 참으로 무심히 가고 옵니다. 그 뜨겁던 여름도 순탄치 않았던
가을도, 굵은 가을 빗줄기와 함께 멀리 떠난 듯합니다. 초 겨울의 차가움이 밀려옵니다. 위 사진은 8년 전쯤 되
는가 봅니다. 상경했던 아들과 함께 버스정류장에서 아버지께서 출근하시며 회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함께
찍었던 모습입니다. 그때 아버지께서는 택시회사에 출근하셔서 밤새도록 택시 배차를 하며 그 억센 운전기사들
격려하며 통제하는 직장생활을 하셨고, 받은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는 너희 어머니에게 다 드렸다고 늘 자랑을
하셨지요.두 분이 알콩달콩 구십 평생을 함께 하시며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은 행복했습니다.언제나
씩씩 하게 사셨고 아버님께서 보여주신 진솔함을 누구 보다 저는 이해합니다. 사진에 모습은 아버님 연세 여든
여섯 이셨던걸로 생각이 듭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아버지!
☎ 아버지와 함께 담겨진 사진을 컴 곳간에서 찾아낸 오늘이다 (2016.3.3.)
신경림 시인의 [당당히 빈손을] 이다.
나는 남산 디카사진반에서 옆에계신 김점분 강사(講師)의 지도를 받으며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2016.5. )
뿡알친구들이 윤기익 君의 철원 전원주택에서 모였다(2016.6.)
어머니는 골반이 골절되는 아픔을 180 여일을 견디시다가 2016.10.7.밤10시32분 만91세로 영면 하셨다.
15 년 여전에 미리 마련해 두었던 양평의 무궁화 공원묘원에 15평이였다. 원래는부모님 두분이 돌아 가
시면 매장묘로 하려고 했었는데 형제들이 숙의 끝에 15평에 묘지 땅에에 16위 가족 납골당을 만들었다.
어머님 돌아가신 날에 가족묘지로 조성하였다.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쓸 수 있는 聖域이 만들어진 것이다.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셨다. 만92세로 정신이 좋았다가 나뻤다가 한다.
잡수시는건 잘 드시는편이다.[2016.12.20.모습]
지난 여름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꼭 유난했던 더위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버님을 요양원에 모시고
허한 마음에 어머님은 늘 편안하게 앉아 이용하던 의자에서 딩굴어 넘어져 골반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도 쇠약하다고 못 받고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만91세의 연세로 지난10월7일 밤에 영면하셨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씀을 만 93세가 되여 요양원에 계시는 아버지께는 말씀을 안드리는게 좋겠다는
동생들 뜻에 따라 지금껏 말씀을 미루고 있습니다. 구지말씀드려 충격이 오지는 안겠는지 하는 생각이 앞
서고 있어서 입니다.몇일전에 뵙던날에는 음식도 목이 깔깔하다고 못먹겠다고 거부하고 미음으로 연명을
하시는데 영감으로 어머니가 편안히 저 세상으로 나를 두고 먼저 갔다는 것을 아시는지 도통 안부를 묻지
않고 내색도 않고 하루 하루가 모습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인간 공통의 비참함에 대한 공감도, 함께하는 것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연대도 없습니다.내 일이 아니라고
모른 척했던 것들이 결국엔 나의 것으로 내 앞에 돌아왔습니다. 늦은후회만 남았습니다. 그리하여 조금은
우울하게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이제11월을 맞습니다. 아버님을 좀더 편히 모시고 이제 곧
어머니 곁으로 정성을 다해서 바래다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더 많이 땀을 흘려야 하겠지요. 세상사 온갖
시름도 잠시 내려놓아 봅니다.그게 인생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야 철이 들었다며 자위하며 평온이 얻어
져 가고 있습니다.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는 대추는 태풍과 천둥, 벼락과 번개를 몇개씩 품고 이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는
다고 어느 시인은 말했지요. 지난 여름과 가을에는 고통의 흔적이 내 삶을 좀 더 단단히 여물게 했을거라
위안해 봅니다. 두려워 익지 않는 가을은 없습니다. 조금 먼저 편한함을 찾아 저 세상으로 떠나신 어머님
생각에 지금 제일 힘드실거라 믿습니다. 그래도 어머니 곁으로 가실 때 까지 힘 내세요. 누가 뭐래도 정말
아버님을 존경합니다. 지금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2016.10.29. 밤 11시45분 큰아들
2016년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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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도
경산시 남산면 반곡지에서 봄을 만났다( 2017. 4. )
동기생 중 대구에서 40 여년을 곁에서 토닥거리며 살고 있는 최수태君과 함께 (2017. 8)
손주 제훈이 제롱을 보고 오던 날 ( 2017. 5.)
텅빈 가슴
채워주는
기다림 애절할 때
홀연히 풀어낸
위로의 끈,
그것은 동행.
- 김희 [동행] 中
일본 북해도 여행 (2017.6.20~6.24 )
옆지기 생일이 오늘이다.꼬깃꼬깃 모아둔 배추잎 200개를 풀어 일본 북해도 여행을 함께했다. (2017 6.20.)
일본 북해도 여행 (2017.6.)
동기회의 참 일꾼 이필영 君과 함께 (2017. 8)
계명대학에 유학한 중국인 여학생 짱쯔 양과 게명대학 캠퍼스에서( 2017.10.)
팔공산 가을 길 (2017. 11.11)
2017년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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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년도
아버님께서(94세) 영면하셨다.이 세상을 떠나셔 어머님곁으로 가셨다(2018.1.6.)
내가 사진 배우며 설치며 직접 찍어둔 사진을 영정으로 남겼다
아버버님을 보내드리고 한 달이 지난 즈음쯤, 나는
양쪽 눈(目)을 백내장 수술을 해야했다. 노환이란다.많이 사용했나보다.(2018.2.1.)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에서 나와 옆지기 (2018.4.)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에서 (2018. 4.)
옆지기 생일케익에 경이가 불 밝힌다. 이제 2021년이면 육학년 구반이 된다.
태국에서 홍콩을 관광 후 중국 심천을 돌아보고 나오는 태국의 장년 부부와 딸은
대한민국의 나를 따뜻하게 반겨 주었다. 그리고 꼭 태국을 방문해 달라고도 했다. (2018.8)
마카오 탑 위에 올라 여행을 함께 했던 올해 중학생이 된 손녀와 아내 이다.( 2018.8.8 홍콩 여행중)
홍콩의 거리에서 인증샷(2018.8.6)
60여일 입원후 약물로 머리에 고였던 혈흔을 제거 못하고 대학병원에서 머리 수술 후
퇴원하여 찌들어 보였던 몰골로 격려해준 형님들 불러 저녁밥을 같이하였다.(2018.11.14)
나는 2018년 8월 26일 학교 지킴이 일을 하다가 갑자기 넘어졌다. 맨땅에 헤딩을해 기절 했던
것이다.마침 운동을 하러온 청년이 발견하여 나를 흔들어 깨워 일어났다고 했다.살아난 것이다.
그러나 하루지나 [머리속 경막 하출혈]이라는 진단을 받고 두 달여 큰 병원에 입원하여 약물로
치료를 받다가 머리속 경막에 고인 혈흔은 제거해야 한다는 진단에 수술을 영남대학 병원에서
받았다. 하늘이 나를 도왔다고들 했다. 머리를 다치면 통상10중 7,8은 스틱을 손에 쥐어야 하는
병신이 되고 바보가 될 수 있는 것인데 정상인으로 돌아왔으니 천운이라 했다. 70여일 동안을
아내의 극진한 보살핌이 아픔을 이겨낼 수 있었다. 아내에게 나는 아내 바보마냥 고마움을 전한다.
격려하고 찾아준知人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해 드린다. 人生에 고마움을 절실히 알게 해주었다.
하던 모든일 모두 놓으면서 감사결과 산업 재해 피해자로 인정받아 국가에서 모든 치료 해주고
합당한 보상도 받게 되었다.최선을 다해 근무했다는 것을 인정을 받게 된게 그나마 다행이였다.
( 2018.9. )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정말 먼 길을 돌아 이제야 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그렇게 아팠습니다.맨땅에 해딩을 하였고,
띵한 머리에 아픔을 약물로 치료할 수 있다는 의사 조치에 2개월을 입원을 했고 좋아졌다고
퇴원을 했는데 확인하려 대학병원에 진료를 신청 하였더니 머리 두피 속에 남아 있는 혈흔을
완전히 제거해야 된다며 10여일을 입원 해 머리 속 [경막 하출혈] 수술을 받아야 하는 어려운
치료를 받고 정상을 찾아 여러분 곁으로 왔습니다.
여름과 가을을 인내한 우리 모두는 겨울을 누릴 자격이 충분 합니다. 11월의 끝자락이 힌바탕
지나고 나면 겨울은 금세 깊어 질 것입니다. 근사한 가을이 가고 있고 멋진 겨울이 기다리는
이 시점에. [하기]는 여러분들에게 인사를 드립니다.칠십일여,아팠던 곳을 깨끗하게 치유 시켜
돌아왔습니다.아름답고 힘참을 갖이고 왔습니다. 이제 여러분 곁으로 달려 가겠습니다.
따뜻한 인사드리면서 열심히 사랑에 보답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8.11.23. 하기.송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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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기 님 ! !
80 일여 참고생 많았소. 머리카락 빡빡 자르고 어려운 머리 수술...머리속에
고였던 혈흔 다 뽑아내고 정상찾아 퇴원하고 건강한 모습 보여줘서 고마웠소.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식사도 잘 하였고 웃으면서 담은 표정 좋아서 보내
드립니다. 내 내 건강 관리 잘 하시게나. 잘 이겨내고 우리들 곁으로 당당
하게 왔으니 참,고맙고,감사하지요. 모든 이들이 당신을 버리지 않은 거요.
2018. 11. 25 .이 정 협
2018 년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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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2018. 8. 26 넘어져 머리 수술받고....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당당히 일어섰다. 그리고 다 놓아버렸다.
잘 이겨내고 왔다고 숲속을 함께 거닐면서 철이 형께서 사진을 만들어 주었다.(2019.2.4.)
수목원에서 디카회원들이 모였다. 내가 제 발로 걸어서
정상으로 왔다고 건강하게 함께 모여 엄청 기뻐해 주었다.(2019.3.22)
나 혼자 일본 도쿄 여행을 했다 ( 2019.5.26 ~ 5.29 )
일본 도쿄 신주쿠 거리 여행 (2019.5.26.)
일본 도쿄 여행 중 후지산을 등지고 서서( 2019. 5,28 )
갑종 229기 장교 임관 50주년 기념식 (2019.8.23.)
경주 황성 공원에서 (2019.9)
나는 참 좋은 사우(寫友) 최육남 형을 만났다.( 2019. 겨울)
언제나 나에 곁에서 꾸준히 나를 돌보아 주었던 허비,이정협 兄 (2019.12.19. 망년회)
2019,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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