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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패테르부르크(러시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그 기원이 1703년으로 309년의 역사를 지닌 도시며, 세계에서 제일 면적이 큰 나라인 러시아 제2 도시로 인구가 460만명이다. 관광객이 연 2500만~3000만명에 이르는 세계적 관광 도시로 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문화ㆍ예술의 중심 도시다. 1917년 2월과 10월 볼셰비키 혁명 후 1918년 레닌이 수도를 다시 모스크바로옮겨가기 까지 206년간 제정 러시아의 수도로서 로마노프 왕조가 영화를 누리던 곳이다.
여름 궁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약 30여㎞ 떨어진 핀란드만 해변가에 위치한 "여름 궁전"은 러시아 황제와 귀족들의 여름 휴양지 '페트로 드보레츠(Petrodvorets)'에 위치하고 있다.
표트르 대제가 사망한 1725년까지 11년에 걸쳐 완성되었지만 현재의 바로크풍 장식은 겨울 궁전을 건축한 '라스트 렐리'에 의해 1745년부터 10년간의 공사로 만들어진 것으로 1752년에 증축하여 호화로운 궁전이 되었다고 한다.
면적은 302만 5,000평으로 144개의 분수와 7개의 공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트르 대제가 주로 여름을 보내기 위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여름 궁전'이라고 불린다.
궁전 정원은 넓은 공원으로 둘러싸인 여러 개의 궁전들로 구성되어 있다.
1709년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했는데 프랑스의 전제군주였던 루이 14세가 건설한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베르사유 궁전을 의식하여 그에 못지 않은 호화로운 궁전을 건설 하고자 하였다
여름 궁전은 매일 오전 11시 분수 가동식을 한다
겨울 궁전(에르미타쥐 국립박물관)
겨울 궁전은 상트페테부르크의 상징이기도하다. 이 초호화 궁전은 1,050개의 방과 2,000개의 창이 있는 세계 최대 궁전이라고 한다. 흰빛과 옥빛 금빛이 어우러진 컽모습부터 그 화려함을 느끼게 한다
겨울 궁전은 원래 이처럼 방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겨울궁전은 처음 표트르 대제 치세 때인 1711년에 지어진 이래 1732년에 더 큰 규모로 건축되어 있었는데 1741년 이복 사촌인 안나이바노브나 여제가 제위 계승자로 임명한 이반6세를 쿠테타로 타도하고 황위를 쟁취한 표트르대제의 딸 엘리자베따 여제가 오늘날의 '겨울궁전'을 건설했다고 한다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박물관이다.
연간 약260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가는 이곳은 연결된 여섯 개의 역사적인 건물들을 전시 및 보관실로 쓰고 있다
박물관의 본관으로 쓰이는 겨울궁전은 건축가 라스트렐리가 세운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러시아 건축물이다. 화려했던 로마노프 왕조의 거처로 사용되던 곳이다.
러시아 민속 공연도 보고
민속 공연 중간 휴식시간, 와인과 차를 맛보며 투어를 같이한 일행과 함께
바실리섬의 등대
저 멀리 바실리섬에 두개의 기둥이 있다. 등대 높이가 32m나 되고, 해전기념 원주 2개는 그리스 로마시대의 '해전기념 원주'를 본따서 원주를 빙돌면서 8개의 뱃머리로 장식되어 있다. 국가기념일에만 가스등을 켠다고 한다. 불을 밝히기 위한 기름 접시도 등대 꼭대기에 남아있다. 네바강에 유람선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성 이삭 성당
이삭 광장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성 이삭 성당은 황금 빛 돔에 자주빛의 굵은 대리석 기둥으로 웅장하게 서 있다. 성 이삭 성당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규모의 성당이다. 알렉산드르 1세 때인 1918년부터 니꼴라이 1세를 거쳐 알렉산드르 2세 때인 1958년까지 3대에 걸쳐 무려 40여 년 동안 50만명의 농민들을 동원하여 세계 최대의 성당을 건축하였다
표트르 대제 청동 기마상
데카브리스트 광장에 있는 표트르 대제의 청동 기마상은 1766년 프랑스 조각가 팔코네를 시켜 12년에 걸쳐 만들었는데 러시아 동상 조각의 명작으로 유명하단다
모스크바 (러시아)
오늘날 모스크바는 1918년 레닌이 수도를 다시 모스크바로 옮겨 러시아의 정치뿐만 아니라 인구, 공업 생산성, 문화, 과학, 교육 등의 면에서도 중심적인 도시로 러시아 최대의 도시이자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며,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도시다. 1991년 8월의 쿠데타에 의해 소련 공산당이 무너진 뒤에 소련의 공화국들이 이룬 독립 국가 연합에서도 많은 행정기능의 중추역할을 계속 맡고 있으며 러시아 연방 수도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면적 1,081㎢, 인구 1,200만명)
무명 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불꽃
크레믈린 궁 성벽 아래에는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전사한 수 많은 무명 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365일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다 이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감시 역할을 하는 2명의 경비병이 항상 지키고 있다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의 기마 동상
모스크바 국립 역사 박물관앞 광장에는 전쟁 영웅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의 기마 동상이...
붉은 광장
크레믈린 성벽 바깥쪽에 붉은광장이 만들어진 것은, 적이 침략해 왔을 때 시야를 가리는 건물을 없애 버리자는 것과 시가지에 화재가 났을 때 불똥이 크레믈린 안으로 튀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당시 크레믈린 주변의 건물들은 몇몇 교회를 제외하곤 대부분 목조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총길이가 695m이고, 폭이 130m로 넓이 약 73,000㎡에 이르는 러시아 최대의 광장인 ‘붉은 광장(Krasnaya Ploshchad)'은 원래 ‘크라스나야 플로사지’ 라고 불리었다.
고대 러시아어에서 ‘크라스나야’는 ‘아름다운’ 이라는 뜻을 가진 말 이었으나, ‘붉은’이란 의미도 함께 갖고 있다고 한다. 즉 '아름다운 광장'이란 뜻인데 현대 러시아어에서 '아름다운'이란 뜻은 사라지고 '붉은'이란 뜻으로 주로 쓰이면서 우리말로도 '붉은 광장'으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우측 건물은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색인 붉은 색의 건물로 국립 역사 박물관이다.
레닌의 묘
1924년 1월 21일 사회주의 혁명가인 레닌은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한 레닌은 러시아 공산당을 창설하고 10월 혁명을 주도했다. 소비에트 연방 최초의 국가원수인 레닌이 사망하자 그 뒤를 이은 스탈린이 레닌의 우상화 작업을 시작했고 레닌을 미이라로 만들어 붉은광장에 영묘를 만들어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성 바실리 성당
여러 색채의 양파 모양 지붕을 불규칙적인 형태로 배열하여 기묘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이 성당은 모스크바 이반뇌제로 불리는 이반 4세가 과거 200년간 러시아를 점령하고 있던 몽골의 카잔 칸을 몰아낸 것을 기념하며, 몽고족들과 싸우다 희생된 모든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러시아 건축가 바르마와 포스닉을 건축가로 임명하여 짓도록 한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다. 47미터 되는 팔각형의 첨탑을 중앙으로 하여 주변에 8개의 양파 모양의 지붕들이 배열되어 있으며 예배당을 형성하는 4개의 다각탑과 그 사이 4개의 원형 탑이 솟아 있어 총 9개의 탑이 있다.
굼(G.U.M) 백화점
러시아 최대 최고의 국영 백화점으로 붉은광장을 사이에 두고 크레믈린 궁과 길게 마주 서있는 중후한 멋진 건물로1889년부터 1893년에 걸쳐 건설된 건물이지만 1950년대 대대적인 수리를 했다.
굼 백화점으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중앙 분수대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는다
백화점 내부는 250m 길이의 건물 세 동을 구름다리로 연결할 만큼 웅장한 크기와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데 특히 중앙 통로 위 지붕은 아치형 유리 천장으로 자연채광을 통하여 밝은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3층 높이의 이 건물의 1, 2층에는 200여점에 이르는 최고급 외제산 상점들이 위치하여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톡에도 체인을 두고 있을 만큼 큰 규모와 양질을 자랑하는 곳이다. 특히나 모스크바는 세계적인 대부호들이 많이 사는 도시로 명품들의 명품을 구경할 수 있다
쿠타퍄 탑(크레믈린 궁 입구)
쿠타퍄 탑(왼쪽 건축물)밑에 있는 검색대를 통과하면 전 러시아를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인 크레믈린 궁에 입장.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러시아 역사와 문화의 총체라고 할수 있는데 고대 연대기에 의하면 수즈달 공국의 유리 돌가루끼 공(公)이 1156년 작은 볼로비츠키 언덕 위에 목책으로 요새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으로 크레믈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20여개의 종루탑을 가진 길이 2,235m, 두께3.5~6.5m의 높이 5~19m를 가진 강대한 성벽에 둘러싸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벽은 5각형의 형태로 주위는 2,200m터, 높이는 최하 5m에서 최고 20m 까지 이며, 모스크바 강이 성벽 한쪽을 끼고 흐른다.
트로이츠카야 탑(삼위일체의 탑)
트로이츠카야 탑은 1495-99년 알레비시오 프라지네에 의해서 건립된 크레믈린 궁전의 주 입장 망루이다. 망루가 ‘삼위일체의 탑’이라고 불리는 것은 종교적인 이유도 있지만, 크레믈린 위에서 볼 때 삼각형으로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탑의 높이는 크레믈린 성벽 망루인 20여 개의 탑 중에서는 80m로 제일 높다
트로이츠카야탑의 꼭대기에는 지름 3.75m의 루비색 예쁜 별이 달려있어 멀리에서도 잘 보이도록 금도금을 해 놓았다.
아르항겔리스키 사원(대천사 미카엘 성당)
아르항겔스키 사원은 대천사 미카엘 사원 이라고도 하며 우스펜스키 사원의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군대의 수호 성인 미하일 아르항겔을 모시기 위해 지은 사원이다. 미하일 아르항겔은 기독교에서 천사들의 우두머리인 대천사 가운데 한 명으로, 죽음의 천사이자 천상 군대의 지휘관으로 보고 있는 성 미카엘을 말한다. 설계자는 이탈리아인 알레비즈 주니어로 1505~1508년에 건립되었다. 역대 황제와 귀족의 유체가 안치된 곳이며, 총 48개의 관이 성당 곳곳에 놓여 있다.
이반 대제의 종루
크레믈린 중앙에 서있고, 높이 81m에 달하는 대종탑은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탑이다. 당시 모스크바에서는 이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건축가인 프리아친이 이반대제의 사후인 1505-08년에 걸쳐 본체를 세우고, 페트로프 마리가 1532-43년에 걸쳐 8면체의 종루를 더 이어서 완성하였는데, 1812년 나폴레옹 점령 시 소실된 이후 재건축되어 오늘이 이른다고 한다.
블라고베시첸스키 사원 (성모 수태 고지 성당)
모스코바 대공들과 황제들의 저택에 딸린 성당으로 이반3세 시대인 1485~1489년에 세워졌는데, 황제 가족들이 개인 예배를 보던 곳으로 러시아 황제가 태어났을 때 세례식, 명명식을 거행하였으며, 주로 어린 황제가 생활하고 교육하던 곳이라고 한다. 여러 개의 황금색의 양파 모양의 탑들은 타오르는 대지의 촛불을 상징 한다고 하며, 16세기 중엽 화재로 손상되었으나 이반 대제에 의해 복원 되었다
십이사도 사원
우스벤스키 사원 우측으로 보이는 것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12사도사원으로 5개의 은색 돔 지붕을 가진 사원이다. 1655년 완성되었으며, 1681년부터 현재의 12사도 사원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963년부터 17세기 미술작품들을 비롯하여 보석, 가구, 손으로 쓴 출판물 등이 전시되기 시작함으로써 생활사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우스펜스키 사원(성모승천 대성당)
우스펜스키 사원은 러시아 국보 제 1호로, 모스크바의 낙후된 건축기술을 당대의 서구유럽의 기술 수준 만큼 향상시키고자 했던 이반 3세의 야심에 의해 세워진 건물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명장 아리스토엘 피오라반디가 당시 명성 높던 블라디미르의 대 사원을 모방해서 설계했고, 1479년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5개의 황금색 돔 중에서 중앙의 커다란 돔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위의 4개 돔은 4명의 사도들을 상징 한다고 한다.
황제의 종
귀퉁이 한쪽이 떨어져 있는 거대한 종을 만난다. 높이 6.14m, 지름 6.6m, 무게 200톤의 이 종에는 금 72㎏, 은 525㎏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이반 마트린'과 아들 '미하일'에 의해 2년간의 작업 끝에 1735년 본체의 작업이 완료 되었는데 1737년 화재 당시, 진화 과정에서 누군가 달아오른 종위에 찬물을 끼얹어 급냉 시키는 바람에 종의 일부분에 균열이 생겼는데 이를 모르고 '안나 이바노프' 여제의 지시로 이 종을 종루에 올리려다 균열이 난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대통령 집무실
노란색 건물로 푸틴 대통령의 집무실이다. 그러나 러시아 대통령은 이곳 크레믈린에 살지 않는다. 백악관이나 청와대는 대통령이 집무와 생활을 함께 하는 곳이지만 러시아 대통령은 외부 관저에서 크레믈린으로 출퇴근 한다. 역대 러시아 지도자 가운데 레닌처럼 크레믈린에서 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관저가 따로 있었다고 한다.
아르바트 거리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인 뿌쉬킨, 레르몬토프, 뚜르게네프 등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면서 스탈린 양식의 거대한 외무성 건물까지 계속되는 아르바트 거리는 마치 우리나라의 대학로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현재 모스크바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이다.
러시아가 개방되어 각국의 상업 문물들을 얼마나 수용하고 있는지를 즐비하게 늘어선 상점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거리다. 흉내 한번 내 볼까 ! 폼이 비숫 한가요 ?
참새의 언덕
참새의 언덕에서 참새는 볼 수 없고 모스크바 시내 전경이...미하일 볼고프의 소설 "장인과 마르가리타"에 등장하는 언덕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러시아 혁명후에는 레닌의 언덕이라고 불리웠다가 다시 오래전 이름 참새의 언덕으로 환원 되었다
모스크바 국립 대학
'참새의 언덕'에서 바라보면 높이 240m의 30층 건물인 모스크바 국립 대학이 250년의 역사와 함께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1755년 러시아의 위대한 학자 '미하일 라마노소프'가 창설하였고, 1953년 고딕양식을 현대 고층 건물에 접목 시킨 소위 '스탈린 양식'으로 현재의 건물이 건립 되었다. 세계 15의 명문대학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건물이다. 약 8,000명의 교수와 3만명의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으며, 노벨 문학상의 '솔제니친'을 비롯 10 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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