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욥기 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1)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아마도 ‘대속자(代贖者)’일 것이다. 현대인들은 ‘십자가’와 ‘보혈’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구약 성도들에게는 ‘십자가’나 ‘보혈’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십자가’나 ‘보혈’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은 ‘대속자’가 존재함으로써 존재하게된 것이다. 즉, ‘십자가’와 ‘보혈’은 ‘대속자’라는 개념의 하위 개념인 것이다.
2) 성철(性徹) 승려(僧侶)의 삶과 임종(臨終) 시의 고백이 인구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전해지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를 ‘스님(僧님)’이라고 칭하지만 내가 그를 ‘승려(僧侶)’라고 칭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이 세상의 관점에서 보지만, 나는 내세(來世)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다. 세상적 관점으로 보면 그는 위대한 사람이고 큰 스님일 수 있지만, 내세적 관점에서 보면 그는 지옥에 떨어진 필부(匹夫)에 지나지 않는다.
3) 성철 승려는 일찍이 불교가 최상의 진리라고 믿고 큰 깨달음을 얻어 해탈성불(解脫成佛)하고자 즉 모든 번뇌(煩惱)에서 벗어나 부처(佛陀)가 되고자 1934년 23세의 나이에 부모, 형제, 처자(妻子) 다 버리고 출가하여 1993년 81세로 타계(他界)하기까지 오직 참선과 학문으로 일관하였다고 한다.
4) 그는 한때 8년간을 드러눕지 않고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초인적인 극기수행(克己修行)을 하기도 하고, 또 한때는 10년간을 사람의 근접을 막기 위해 암자 주위에 철망을 쳐놓고 오직 홀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큰 깨우침을 얻어 견성성불(見性成佛)의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8백년간이나 이어져 오는 조계종(曹溪宗)의 선법(禪法)의 법통(法統)인 ‘돈오점수(頓悟漸修)’를 비판하고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했다고 한다.
5) 그랬던 그가 임종 시에는 이런 고백을 했다는 것이다.
“내 죄는 산(山)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布敎)한 것은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救援)이 없다. 죗값을 해결(解決)할 자(者)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54년 동안이나 단절(斷絶)하고 살았던 딸의 이름을 임종(臨終) 시에 부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딸 필희야!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人生)을 잘못 선택(選擇)했다. 나는 지옥(地獄)에 간다.”
6) 그는 말년에 이르러 불교에서 가르치는 교리들이 모두 거짓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내심 말못하는 갈등으로 괴로워하며 방황(彷徨)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는 마지막 운명(殞命)하기 직전에 회한(悔恨)으로 몸부림치며 천추(千秋)의 한(恨)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7) 1993년 11월 5일 자 경향신문 5면에 보면, 그는 1983년 하안거 결제(結制)에서 말하기를 “내 말에 속지 말라. 나는 거짓말하는 사람이여!”라고 했다고 한다. 또 “대중이여 석가(釋迦)가 세상에 오심도 망상이요, 달마(達磨)가 서쪽에서 오심도 망상이라”고 했다고 하며, 1987년 석가탄신일 법어(法語)에서는 “사탄이여! 어서 오십시오.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로 거룩한 부처님입니다.”라는 충격적인 고백도 했다고 한다. 나의 기억으로도 “부처의 마음은 사탄의 마음이다.”라는 말을 성철 승려가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또 같은 날짜 조선일보 15면에는 그가 운명(殞命) 직전에 자신의 일생을 정리하는 28자의 한자로 된 열반송(涅槃頌)이 실렸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평생 남녀 무리를 속여 미치게 했으니
그 죄업이 하늘에 미쳐 수미산보다 더 크다.
산채로 지옥 불에 떨어지니 그 한이 만 갈래나 된다.
한 덩이 붉은 해가 푸른 산에 걸렸구나!”
승려 중의 승려요, 모든 불자(佛者)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다 받고 ‘우리 곁에 오셨던 부처’라고까지 칭송받는 그가 사실은 후회와 회한으로 가득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9) 누군가는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기도 하였다. 다음 카페 어느 곳에서 옮겨왔다.
고승(高僧)들의 수명(壽命)을 조사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한국 불교의 큰 스님이신 효봉 스님은 79세, 이청담 스님은 70세, 성철 스님은 82세, 법정 스님은 79세에 돌아가셨다. 이분들은 불교계의 고승들로 다 훌륭하신 분들이다. 그런데 90세를 넘기신 분이 없었다.
그러나 훌륭하셨던 개신교 목사님들 중에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은 99세, 영등포교회 방지일 목사님은 104세,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님은 96세, 경동교회 강원용 목사님은 90세에 돌아가셨다. 모두 90세를 넘기셨다.
고승들의 평균수명은 77.5세이고, 훌륭하셨던 목사님들의 평균수명은 97세다. 고승들과의 평균수명이 자그마치 20년이나 차이가 난다. 원인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사람이 건강해지려면 가장 많이 먹는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먹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가장 많이 먹는 것은 무엇일까? 공기이다. 공기는 잠잘 때도 먹어야 한다. 두 번째로 많이 먹는 것은 물이다. 그래서 좋은 공기와 좋은 물을 먹으면 세포가 건강해진다.
그런데 스님들은 깊은 산속에서 깨끗한 공기와 깨끗한 물을 마실뿐만 아니라 오염되지 않은 온갖 좋은 채소와 산나물과 약초를 먹으며 산다. 더군다나 108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선을 하며 무념을 유지한다. 곧 고요한 평안을 유지하며 108번뇌에서 벗어나 해탈한다.
그러나 목사님들은 공기도 좋지 않은 도시에 살면서 매일 새벽설교와주일설교와 수요설교를 준비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며 또 교인들로부터는 온갖 근심거리를 들으며 산다. 그런데도 목사님들의 평균수명은 고승들보다 20년이나 더 길었다. 4~5년도 아니고 20년이면 엄청난 차이다. 이것은 내가 풀 수 없는 의문 중의 의문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1993년 성철 스님이 내놓으셨다. 스님은 이런 유언을 남기고 떠나셨다(93.11.9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내 인생을 잘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이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죗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성철 스님이 ‘죄의 값’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셨다.
내가 금강경을 십여 차례 읽으면서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예수님의 가르침과 똑같은 말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강경에 없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죗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성철 스님께서 죄의 문제를 정확히 짚은 것이다. 자신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핵폭탄을 맞는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지은 죄를 잊어버린다고 잊힐 수 있을까? 죄를 짓고도 “내가 지은 죄는 기억나지 않아.” 이러면 자신이 “위선자”가 된다는 사실에 더욱 갈등하게 된다. 이런 갈등이 고승들의 수명을 단축시켰으리라 생각해 본다.
그러나 목사님들은 늘 회개하며 죄를 씻고 산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고승들과 다른 점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代贖)의 은혜를 믿고 날마다 지은 죄를 회개하며 살면 정신만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온몸의 세포까지 건강해진다고 나는 믿는다.